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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조가 장부 등록해야 '조건부 세액공제' 소식에 노동계 "노동자 갈라치기" 반발 왜?

3개월 앞당긴 노조 회계장부 공시 정책

다소 딱딱한 단어들이 많아도 노동조합에 소속된 조합원들(어쩌면 많은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 읽어 볼 법한 주제입니다.
 
어제(5일)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가 '노동조합 회계 공시와 조합비 세액공제'를 주제로 한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다음 달부터 조합원 수가 1천 명 이상인 노동조합은 조합비를 언제 어떻게 썼는지 공시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시시스템에 등록된 노동조합 조합원에게만 보통 매 달 내는 조합비를 연말에 세액공제 해준다는 정책입니다. 특히 하위 조직인 기업별 노조뿐 아니라 해당 노조가 소속된 상급 단체도 회계 공시를 해야합니다. 대표적으로 양대 노조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겠죠.
 
노조 회계 결산, 매년 공시 의무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원래 정부는 올해 6월 관련 내용을 기초로 담은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6월 입법예고안은 내년부터(2024) 실시해 내후년에 2024년 1월에서 12월까지의 조합비를 세액공제해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발표된 보도자료는 그 시기를 당겨 노조가 올해 쓴 돈의 사용처를 적어도 10월 31일까지 등록하면 올해 연말 3개월분(10~12월)의 조합비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혜택'을 주는 기한을 왜 당겼는지 궁금해 고용노동부 관계자에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노동조합 회계가 투명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상당히 쌓여있어 정부가 관련 노력을 해왔고 가시적인 성과들을 내기 위해 시기를 조금 더 당겨 시행하게 됐습니다"
 
최근 일부 노동조합에서 공금 횡령사건이 발생하는 등 기성 노조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는 흐름 속에 노조 회계가 투명해야 한다는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라는 거대 양대 노총은 회계 장부를 3개월 빨리 공시시스템에 등록하는게 '노동 조합원과 노조를 가르기 위한 협박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1년에 11만 7천 원 돌려받던 세액공제 이제는 '조건' 붙는다

지난 6월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 개정 발표하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지난 6월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 개정 발표하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6월 달에 발표한 입법예고안은 내년 시행이 계획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조합비는 세법상 '기부금'으로 간주돼 자동으로 15%만큼이 세액공제 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연봉이 높은 편에 속하는 완성차 노조의 경우 매달 내는 조합비가 평균 6~7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12개월로 하면 78만원의 조합비를 내는데 자동적으로 11만 7천 원 정도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올해도 자동적으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어제 정부 발표로 10~12월분 즉 3개월분인 3만 원 정도는 만약 노동조합이 회계 공시를 하지 않으면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정부는 어제 보도자료에서 "노동조합(또는 산하조직)과 그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면 조합원이 올해 10~12월에 납부한 조합비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이 부여되는데"라고 적었습니다. 그냥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을 조건을 붙여 받을 수 있게 한 셈인데요. 이를 두고 양대노총은 자신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우선 한국노총의 입장문을 볼까요.
 
<한국노총 9월 5일 입장문>
정부가 노동조합이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시기를 앞당기는 시행령 개정안을 재입법예고 했다. 
직장인 연말 정산 시즌을 앞두고 다급하게 시행령 시행시기를 앞당긴 것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노동조합과 상급단체를 옥죄려는 의도이다. 특히, 1천 명 이상 노동조합 뿐만 아니라 이 노조가 소속된 연합단체와 총연합단체까지 시행공시를 하지 않을 경우 세액공제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1천 명 이상 노동조합들이 연합단체와 총연합단체 탈퇴를 부추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치졸하고 비열하다.  

민주노총도 비슷한 입장문을 냈습니다.
 
<민주노총 9월 5일 입장문>
노동부는 소득공제가 국민의 세금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 거짓선동을 하지만 소득공제는 조합원이 노동을 통한 소득중 일부를 세금으로 내고 이를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추가로 납부하거나 환급받는 제도다. 내가 낸 세금을 법에 의거해 돌려받는 것이다. 이를 회계공시와 연동시켜 차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노동부의 행위는 명백하게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갈라치기 위한 비열한 시도다.
 
조합원 갈라치기 시도라는 뜻이 무언인지 물었습니다.
 
한상진 | 민주노총 대변인
저 역시도 금속노조 조합원이고 매달 통상임금의 1%를 조합비로 납부하고 있고요. 하고 있는데 이게 급여생활자들한테는 13월의 월급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이게 상당히 큰 부분인데 '이제는 이것을 못 받아.' '노동조합이 법에서 정한 이런 것들을 정부 방침대로 안 해.' '그럴려면 세액공제 받으려면 노동조합 포기하거나 아니면 노동조합 압박해서 정부의 지침대로 따라가라고 해.' 이거를 신호를 주고 있는 건데 우리 현장의 조합원들은 물론 동요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봅니다.

노조는 또 산별 노조끼리의 분열도 부추긴다고 말했습니다.
 
한상진 | 민주노총 대변인
일단은 흔히 이야기하는 대공장 정규직들의 임금이 상당히 높죠.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소득 공제에 대해서 상당한 이해와 요구가 있습니다. 근데 핵심은 주로 고연봉자들 노동 조건이 좋은 노동자들에게는 이 부분은 되게 많은 반발과 저항, 치명타로 올 것이고 이런 것들을 유도해내는 것이다라고 밖에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논쟁 사안도 있습니다. 정부는 노조의 회계공시가 노동자로 하여금 재정정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해 노동조합 선택권·단결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노동조합은 2021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지만 지나친 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는 거죠.
 
<한국노총 입장문(07.24)>
-노동조합이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노동조합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의 자금을 원하는대로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은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됨(§683).
-노동조합의 운영에 대한 감독 조치는 남용을 방지하고 노조의 구성원 자신을 그들의 자금의 잘못된 관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경우에만 유용할 수 있으며, 당국에 의한 간섭이 위험을 수반할 수 있는 경우에는 협약 제87호 제3조에 위반됨(§710).
-정부입법안은 ILO 제87호 협약이 금지하고 있는 당국에 의한 노동조합 운영에 지나친 간섭에 해당하므로 명백한 협약 위반행위에 해당됨.
 

노조 "거부하기 힘든 정책이지만…"


한 노조 관계자는 "결국 산별노조의 정책 결정자들이 회계 공시를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정부가 이걸 예상하고 교묘하게 회계 투명성이라는 프레임을 노조에 씌웠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노동조합은 회계 공시 시행을 3개월 앞당긴 걸 올해 남은 하반기 발표할 여러 노동 개혁 정책들의 신호탄이라고 봅니다.
 
노동조합 관계자
"69시간으로 대표되는 근로시간 개편 문제나 성과급제를 강제로 밀어붙인다거나 하는 일련의 모든 것들이 노동자와 시민에 가장 밀접한 부분이거든요. 이것들을 이제는 하반기부터 단편적인 공격이 아니라 총체적인 노동 개혁을 가속화하겠다고 하는 출발점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는 대선 공약이었던 노동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앞으로 많은 명분을 쌓고 국민적 공감대를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노동조합은 투쟁을 선택하거나 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선택지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겠죠. 노조 우려대로 내부 의견 충돌도 있을 겁니다.  직장인으로서 노동자로서 노조 조합원으로서 2023년을 4개월 남겨두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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