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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드림스 톰 트루"…톰 크루즈의 '미쳐야 미친다'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78

"영웅본색"과 "첩혈쌍웅"같은 홍콩 느와르의 대성공을 발판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오우삼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2"를 연출하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주연이자 제작자인 톰 크루즈가 600미터 높이의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달랑 케이블 선 두 개만 매달고 맨몸으로 직접 올랐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스팅 차 촬영장을 찾았던 스필버그 감독도 "왜 톰 크루즈가 스턴트도 없이 절벽에 매달려 있냐?"고 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2000년,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할리우드 CG 수준은 참으로 놀랍구나'하며 마음 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계적인 스타 배우가 목숨 걸고 저렇게 위험한 스턴트를 직접 할 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2"에서 톰 크루즈가 맨몸으로 절벽에 매달려있는 장면
솔직히 나는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다. 40층 높이의 상하이 빌딩에서 뛰어내리고("미션 임파서블3"),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의 외벽을 오르고("고스트 프로토콜"), 시속 400km로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리는("로그네이션") 스턴트 연기를 톰 크루즈가 직접 한다는 사실이.

그런데 미션 임파서블 6편 격인 "폴 아웃"의 메이킹 영상을 본 뒤부터는 그냥 믿기로 했다.

달려가던 톰 크루즈가 건물 옥상 사이를 멀리뛰기 하듯 힘껏 점프한다. 그러나 건물 사이가 너무 멀어 건물 벽에 하반신이 부딪히면서 발목이 꺾여 부러진다. 그런데! 옥상 위에 카메라가 있다는 걸 아는 톰 크루즈는 발목이 부러진 채로 기어이 벽을 기어 올라가 카메라 앞으로 뛰어 지나간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 형은 '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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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1986)"같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로 스타덤에 올라서 그렇지, 톰 크루즈는 사실 연기도 빼어나다. 옛날 말로 성격파 배우를 해도 잘 했을 것이다. 얼마 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의 개봉에 발맞춰 열린 톰 크루즈 기획전에서 내가 인생 영화 중 한편으로 꼽는 "매그놀리아(1999)"를 다시 봤는데, 톰형은 역시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쳐보였다. 한마디로 스턴트가 아니라도 충분히 성공할만한 천생 배우다.

"매그놀리아"에서 픽업 아티스트로 나왔던 톰 크루즈
실제로 톰 크루즈는 마틴 스콜세지("컬러 오브 머니" 1986), 올리버 스톤("7월4일생" 1989), 스탠리 큐브릭("아이즈 와이드 셧" 1999), 폴 토머스 앤더슨("매그놀리아"), 스티븐 스필버그("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 등 많은 명감독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연기도 끝내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가끔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연기파 배우 톰 크루즈'를 빼앗아 간 것 같은 아쉬움이 들 정도다.

톰 크루즈는 "오블리비언(2013)"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스턴트만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턴트 장면을 직접) 하는 거다. 어떻게 내가 관객을 액션에 몰입하게 할지, 어떻게 이야기에 빠지게 할지가 관건이다. 나는 항상 이런 관점에서 역할에 접근한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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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촬영 자체가 '임파서블 미션'이다. 영화적 과제가 현실적인 과제라는 점이 이 시리즈 최대의 매력이 됐다. 톰형은 약간의 마조히스트적 성향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목숨 걸고 영화를 찍는다. 한때 개콘의 인기코너 '불편한 진실'의 유행어가 떠오른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데드 레코닝"에서도 톰형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나도 팬이지만 기대 자체가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노르웨이의 까마득한 절벽을 모터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다 그대로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는 스턴트를 한다.

톰형의 이 목숨 건 스턴트가 나오는 장면은 불과 10여 초. 시리즈의 7편인 "데드 레코닝"은 미션 임파서블 프랜차이즈 사상 최장인 2시간 43분의 러닝 타임을 갖고 있다. 2시간 43분은 9780초, 그러니까 톰형은 영화 전체의 약 1/1000 밖에 안 나오는 순간을 위해 목숨을 건 것이다.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모터바이크 연습을 위해 귀마개를 끼면서 톰형이 말한다.

"항상 귀마개를 합니다. 내 비명을 듣지 않으려고요(웃음)"

본인은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은 심장이 떨린다. 하지만 톰형이 운에 맡기고 이런 스턴트를 하는 게 절대 아니다. 관객들의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

톰 크루즈가 노르웨이 절벽 씬 10여 초를 위해서 한 연습은 스카이 다이빙 500회 이상, 모터 크로스 점프 13,000회에 이른다. 이 정도 하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또 영국의 한 채석장에 연습용 세트를 지어놓고 수도 없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연습과 카메라 동선, 프레이밍, 포커스를 체크 했다. 그리고 본 촬영인 노르웨이 절벽 점핑도 많을 때는 하루에 6회까지도 촬영했다.

노르웨이 절벽에서 모터바이크를 타고 뛰어내리고 있는 톰 크루즈 / 롯데엔터테인먼트
"미션 임파서블3"부터 벤지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사이먼 페그의 말이다.

"톰은 정말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그래서 꼼꼼하게 사전 준비를 하죠. 모든 것은 스턴트에서 다 계획이 된 겁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거죠…물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일어나기도 하죠. 그래서 항상 신경이 곤두 서 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서 톰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찍었을 때 저희는 정말 무서웠거든요." (내한 기자회견)

톰형은 이런 준비를 벼락치기 시험 공부하듯 영화 촬영 몇 달 앞두고 갑자기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평생을 준비해왔다. 헬기와 비행기 조종 면허가 있고, 전투기도 타봤다. 수년 간 스카이 다이빙을 해왔고 아주 어릴 때부터 바이크도 타왔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관객들에게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톰형은 노르웨이 메이킹 필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가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관객! (the audience)"

톰 크루즈는 배우로서뿐 아니라 제작자로서 동료 배우들을 이끌고, 훈련시키며,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탑건:매버릭" 때도 그가 일정을 짜가며 후배 배우들의 전투기 탑승 훈련을 시켰다. 톰 크루즈는 동료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순간(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뽑아내려는 프로듀서이자 열정을 찍는 사진가다. 그는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가 물량이나 CG, 스턴트가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스턴트는 스토리텔링을 향한 저의 열정이고, 모험을 향한 열정이고,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열정입니다. 저는 영화라는 예술에 제 인생을 바쳤습니다." (내한 기자회견 중)

"데드 레코닝"에서 빌런으로 나오는 한국계 여배우 폼 클레멘티에프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참여한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드림스 톰 트루(dreams tom true)"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지 않고서는 다다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기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영화에 미쳐있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것은 동시대인으로서 행운이다.

톰 크루즈 이후에는 이런 배우, 이런 영화는 나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몇 달 몇 년 연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평생을 바쳐야 가능한 일, 한 배우가 인생을 걸고 해온 결과물을 우리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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