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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가 누구를 전문가라 부르는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이 총출동하는 'DC확장유니버스'의 최신작이자 마지막 영화 "플래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모든 문제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Not every problem has a solution)"

살짝 무릎을 쳤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고, 우리는 각자가 갖고 있는 무언가로 내리치면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든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따름이다.

교육과 입시 문제만 생각하면 '과연 답이 있을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입시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이슈들이 얽히고 설켜서 백약이 무효화돼왔다.

왼쪽부터 움베르토 에코와 바츨라프 스밀
   "장미의 이름"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9개 국어를 해독하며 '살아있는 도서관'이라 불리던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만 터지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오는 기자들 통에 괴로웠다며 내용불문하고 물어오는 그들에게 자신이 딱히 해줄 말은 없다고 "미네르바 성냥갑"이란 책에 썼다. 지식인이라 해도 집이 불이 나면 보통 사람들처럼 상식적인 수준에서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코만큼이나 박람강기를 자랑하는 환경과학자 바츨라프 스밀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라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용어는 이제 거의 무의미한 명칭이다. 입자물리학 전문가는 요즘 발표되는 바이러스면역학 연구 논문의 첫 페이지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지식의 이런 세분화로 공공 분야의 의사 결정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 현대인은 자신이 생명을 유지하는 원천인 각종 곡물과 채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도 잘 모른다. 지나치게 전문화, 분업화된 사회는 전문가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지거나, 거꾸로 전문가에 대한 혐오인 반지성주의로 흐르기 쉽다. 극과 극은 항상 통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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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과 관련된 교육 이슈로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결과적으로 많은 혼란이 초래되었다. 국가 지도자의 언행은 가벼운 것보다는 차라리 무거운 게 낫다. 하지만 대통령이 했다는 주장 자체는 어찌 보면 원론적인 발언일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이슈들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고차방정식인데다가, 문제를 풀어서 해답을 내놓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답을 내놓은 후의 실행이 더 중요한 문제들이다. 실행 '과정'이 그 해답을 진정한 해답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맞는 답을 내놓고도 실패할 수 있는 게 정부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정부가 해답이라고 내놓고 밀어붙여 온 정책들에 대해 그 해법과 추진 과정에 대한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많은 국민들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건 그 결과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은 운칠기삼, 좋은 의도에서 나쁜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나쁜 의도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민주적 방식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것들도 불행히도 존재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 꼭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과는 솔직히 알기 어렵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괜히 만들어졌을까. 지장, 덕장, 운장 중에 최고는 운장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가 운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

   결과와 과정 중에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CEO는 결과로 말한다. 프로야구 감독들도 자신들은 결과로 책임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과 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인생이란 결국 과정의 연속일 뿐이지 결과가 아니다. 결과는 뻔하고 똑같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가는 결과 자체보다 중요하다. 폭압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일회성에 그치지만, 과정은 지속적으로 사회(구성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며 학습한 사회는 추후에도 그런 방식으로, 즉 그런 과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것이다.

요컨대 결과가 중요하지만, 다음에도 좋은 결과를 내려면 과정이 중요하다. 일의 처리가 순리에 맞고 안정성이 있으며 한 사람에 좌우되지 않는 것이 좋은 과정이다. 사람 바뀔 때마다 휙휙 바뀌면 정책은 도돌이표를 찍는다. 엄청난 사회적 낭비와 불신, 반목, 관료 사회의 냉소는 바로 여기서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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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수능 혼란의 결과야 한참 기다려야 나올 테지만 어쨌거나 과정은 이리 되었다.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들이다.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 "입시에 대해서 수사를 여러 번 하시면서 (대통령이) 상당히 깊이 있게 고민 연구하시고 해서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었다. 굉장히 깊이 아시고 가장 핵심적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신 걸로 여러 번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여당 정책위 의장: 일각에서는 대통령께서 입시에 대해서 뭘 아시느냐는 식으로 폄하하고 있는데 헛다리 짚은 것임을 분명히 해둡니다. 대통령께서는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시면서 입시 부정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보셨고, 특히 조국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해박한 전문가이십니다."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20년 넘게 국책연구기관과 국회, 청와대, 행정부에서 교육부장관 2회 포함 교육 관련 최고위 공직에서 종사해온 인사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단 한번도 교육 관련 조직에서 일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한 수 배울 수 있.다. 꼭 반면교사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세계적인 석학도 시골 농부에게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듯이. 그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그러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비전문가에게 '특정 분야의 전문성에 대해' 배우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교육 비전문가로서 나는 여당의 정책위 의장이란 사람이 전한 대통령의 발언 취지 자체는 크게 틀린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냥 그렇게 담박하게 전하면 되지, 전문가라는 말은 왜 끌어들이는가, 입시 부정 사건을 수사하면 입시 전문가가 되는가? 그렇게 치면 검찰 공무원, 경찰 공무원, 감사 공무원, 기자도 다 특정 분야 전문가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수사 전문가이거나 감사 전문가, 취재 보도 전문가일 따름이다. 자기 일을 열심히 오래하다 보면 특정 분야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아지고 노하우가 쌓여 수사를 잘하고 기사를 잘 쓸 수 있을 뿐이다.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장에 나타나서, 농촌과 공장에 나타나서, 관광 단지에 나타나서 모든 문제에 대해 이른바 '현장 지도'하고 진짜 전문가인 현장 관계자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수첩 들고 받아 적는 뉴스를 볼 때마다 코웃음밖에는 안 나왔는데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런 풍경을 보게 될지 몰랐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생각나고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하던 달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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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성에 대해서라면, 뉴욕타임즈가 부고 기사에서 '머피의 법칙'만큼이나 유명한 이론이라고 평가한 '피터의 법칙'이란 게 있다. 캐나다 출신의 교육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로렌스 피터 교수가 1969년 발표한 동명의 베스트셀러에서 언급한 경영 이론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같은 수직적인 관료 조직에서 개인은 무능해질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특정 분야의 일을 잘해서 승진하면 다른 업무를 하게 되고 결국 직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무능해지는 수준까지 승진한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이론이다.

함부로 전문가라 말하지 말자. 또 전문가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무지렁이가 될 수 밖에 없는 현대 문명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바츨라프 스밀 교수의 말처럼 현대 사회의 문제는 그 분야 전문가만의 눈으로 모든 해법이 나올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현대 학문에서 고도로 전문화한 분야는 거의 불가해한 수준까지 발달해서,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30대 초반이나 중반까지 교육을 받아야 전문가 반열에 오른다.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교육을 받지만, 최적의 방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확인되었듯 마스크 착용 여부 같은 지극히 간단해 보이는 문제에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중)

그리고, 어떤 답이 당장 좋은 결과를 냈다고 좋아하지 말자. 그 답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언젠가 그 결과를 뒤집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유구한 세월의 흐름으로 어떤 결과든 하나의 과정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때야말로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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