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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 '공식 부인'하더니…턱 밑 가시에 냉가슴?

미국이 중국을 최대 패권 경쟁국으로 지목한 이래 양국 간 경쟁은 외교, 안보, 경제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폭발력 작은 게 없지만 역시나 가장 위태로운 건 안보 분야입니다. 그 최전선은 타이완 해협입니다. 최근에는 바다와 그 위 상공에서 양국의 함정들과 군용기들이 충돌 직전까지 가는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천조국'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중국과의 물리적 충돌은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중국 타이완 해협 상시 순찰 압박

중국도 미국을 상대로 아직 역부족이라는 걸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타이완 해협에서만큼은 미군을 직접 압박하는 강공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관철시키기 위한 조치이지만 동시에 미국이 '공해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중국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턱 밑인 남중국해에서 정찰기와 이지스함 등을 동원해 중국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는 데 대한 반발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턱 밑 가시'…쿠바


미국과 쿠바 국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어느 나라 건 약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지정학적으로 타이완이 중국의 취약점이라면 쿠바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위치도 비슷해서 타이완은 중국의, 쿠바는 미국의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양국의 해군 기지를 포함한 전략적 요충지에 인접해 있습니다. 중국은 타이완이 중국의 일부라며 이에 개입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고, 미국 역시 지난 1962년 구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하자 같은 반응을 보인 바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이 쿠바를 활용해 대미 첩보활동을 시도한다는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입니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중국이 왜 아직까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이 의문에 답을 던진 게 월스트리트저널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미국 본토와 가까운 쿠바에 도청 기지를 건설하기로 쿠바와 비밀 합의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이 쿠바에 도청 기지를 세우고, 중국은 그 대가로 현금이 부족한 쿠바에 수십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원칙적 합의했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보도 후 중국과 쿠바는 이를 즉각 부인했습니다. 중국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른 나라를 헐뜯는 것은 미국의 상투적인 수법이고,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는 것은 미국의 전매특허"라며 "미국은 세계 최강의 해커 제국이자 명실상부한 감청 대국"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쿠바도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완전히 거짓되고 근거 없는 기사를 냈다"며 "우리에 대한 금수조치와 봉쇄를 정당화하려는 기만이자 명백한 오류"라고 주장했습니다.

중요한 건 미국의 반응이었습니다. 사실이라면 파장이 작지 않을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도 후 브리핑장에 나온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해당 사안에 대해 "중국과 쿠바가 새로운 형태의 스파이 기지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그 기사를 봤지만, 정확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걸로 알려졌습니다. 미 정부 당국이 사실상 공식 부인한 거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중국, 2019년 쿠바 내 정보수집 시설 업그레이드"


하지만 이틀 뒤 나온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는 이를 뒤집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미 당국자를 인용해 쿠바 내 중국 스파이 시설 문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내려온 문제라고 전했습니다. 로이터 통신도 역시 당국자를 인용해 이는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문제라면서 중국은 2019년 쿠바에서 정보 수집 시설을 업그레이드했고 이는 정보 기록에 잘 남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 당국자는 트럼프 전 행정부가 해당 사안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시도를 했다면서도 "충분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고 더 직접적인 접근이 필요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중국이 기지 건설 후보국으로 고려 중인 각국 정부와 미 당국이 외교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중국의 속도를 늦췄다고 평가한다", "중국은 그들이 원했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휴일 동안 나온 기사여서 아직 공식 브리핑을 통해 미국 정부의 입장이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실제로 중국이 쿠바 내 정찰 기지를 운영한다고 미국이 인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 정부를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입니다. 최근 비밀 문건 유출 논란에서 보듯 미국은 자국 정보기관이 외국에서 도청하는 걸 법으로 허용하는 나라입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중국 같은 경쟁국은 물론 동맹국들까지 도청하는 마당에 타국의 첩보활동 자체를 문제 삼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영공 침범으로 중국이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지난번 정찰 풍선 사태와는 성격 자체가 다른 까닭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국기 (사진=AP, 연합뉴스)

미국 내 전문가들도 중국이 '미국도 중국 인근에서 군사·정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쿠바 기지 건설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은 인도·태평양 역내 평화와 안정을 이유로 남중국해 상공과 타이완 해협에서 군사·정찰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 관계에서 명분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명분이 다는 아닙니다. 쿠바 내 중국 정찰 기지가 사실로 확인돼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미·중 간 갈등이 또 어떤 양상으로 확대될지, 그로 인한 불똥이 우리에게 어떻게 튈지 알 수 없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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