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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 이제는 달라질까

[취재파일]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 이제는 달라질까
"어머님 얼굴이랑 목소리는 어떻게 할까요? 처음엔 안 나왔었는데."
"아, 괜찮아요. 그 뒤로 나 다 나왔는데 뭐."

지난 3월 17일, 5년여 만에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하기 전 어머니께 얼굴을 그대로 노출할 것인지 혹은 모자이크 처리를 해 드릴지, 그리고 목소리는 변조할지 여부를 여쭈었습니다. 5년 전 아들의 죽음을 처음 알리던 첫 인터뷰 당시엔 어머니 얼굴도 모자이크, 음성도 변조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제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의 죽음과 관련해서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고, 또 다른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과 함께 여러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등 관련 활동을 수년간 이어오면서 이미 당신 얼굴이 다 알려졌다며 어머니는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아들 고 홍정기 일병을 지난 2016년 군 복무 중 급성 백혈병으로 인한 뇌출혈로 떠나 보낸 어머니는 국가와 싸움을 이어 왔습니다. 2019년, 국가를 상대로 한 유족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심리 끝에 지난 2월 이례적으로 국가가 홍 일병 사망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지만, 국가는 이 화해권고마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의신청 마지막 날 결국 신청서를 접수한 국가는 소송전을 이어가겠단 의지를 내비쳤는데, 이날 오랜만의 인터뷰는 이에 대해 어머니의 생각을 여쭙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8뉴스 ▶[단독] 4년 소송했는데…'화해 권고'마저 등 돌린 정부
당시 취재파일 ▶4년 후 지금도 "부를 땐 국가의 아들, 아플 땐 당신의 아들?"
 

홍 일병 이름이 불린 법무부 브리핑…"병역 의무자 불이익 개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런 내용을 담은 SBS 보도가 나가고 한 달 여 뒤, 어머니는 다시 카메라 앞에 앉게 됐습니다. 법무부에서 홍정기 일병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국가배상법을 개정한다고 브리핑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4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병역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는 제도들을 찾아서 개선하고자 했다"며 브리핑을 시작했습니다. 개정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홍 일병을 언급한 부분은 그 가운데 두 번째였습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에 "제1항 단서에도 불구하고 제1항의 유족은 자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을 신설하겠다는 겁니다. 앞선 8뉴스와 취재파일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국군의무사령부가 법원의 화해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대표적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국가배상법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치겠단 것이었을까요.
 
국가배상법 제2조(배상책임) 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하 "공무원"이라 한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다만, 군인ㆍ군무원ㆍ경찰공무원 또는 예비군대원이 전투ㆍ훈련 등 직무 집행과 관련하여 전사ㆍ순직하거나 공상을 입은 경우에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ㆍ유족연금ㆍ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이 법 및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이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홍 일병이 순직했어도 유족은 순직에 따른 보상금을 받은 이상 별도로 위자료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게 재판에 임한 국가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결론은 헌법 제29조에서도 기인하는데, 여기엔 군인, 군무원, 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른바 '이중배상금지 원칙'입니다. 이날 법무부 브리핑은 헌법의 체계 안에서, 국가배상법을 개정해 유족들로 하여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바꾸겠단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개정에 이르게 되었는지, 직접 홍 일병을 언급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경과를 간단히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군에서 의무 복무 중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 유족의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의 화해권고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수행청인 (국군)의무사령부로부터 그 상황을 보고 받고,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입대한 청년이 안타깝게 돌아가신 상황이라는 점에서, 저희가 장관 주재로 여러 차례 긴급회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군경 '유족'이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현행 국가배상법의 명문 규정상 입법이 아닌 저희의 법 해석을 통해서는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고요. 그래서 화해권고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저희는 군경 유족에게 국가 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법률, 아까 말씀드린 이유에서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고 그럴 때가 됐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차제에 국가배상법을 개정해서 유족에게 독자적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을 추진하기로 했던 겁니다. (중략)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정신적 고통은 고인과는 별도로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 파병으로 인해 군인들의 국가배상 소송이 늘어나면서 국가배상법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별도로 청구하지 못하게 하는 해당 조항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대법원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자, 유신 정부는 개헌으로 이 규정 자체를 헌법에 포함시켜 위헌 시비를 차단해 버렸습니다. 한 장관은 "당시 대한민국의 국력을 기준으로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고려한 규정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대한민국 국력이 커진 점과 다른 사회적 참사 희생에 대한 경제적 배상과 형평성 등을 감안할 때 이제는 개정할 필요성이 크고 개정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역사적 배경과 달라진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이후 위헌론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헌법 조항 자체는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심판 등을 각하해 왔는데, 이 헌법을 손대지 않는다, 현재 헌법 체계 내에서도 유족의 권리는 보장하는 방식을 찾았다는 보충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헌법 제29조 제2항의 문구를 따져 봐도 유족은 이중배상금지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실제로 이 조항엔 '유족'이란 단어가 존재하진 않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은 국가배상법상 이중배상금지 조항의 적용범위를 축소해 위자료 청구의 근거를 마련했고, 이를 통해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 희생된 군경 유족의 권리를 확대하겠다는 설명입니다.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 이제는 달라질까

군인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이 이 국가배상법 조항에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군 복무 중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되면 순직 등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군인이 아닌 신분일 때는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금은 청구할 수조차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보상금은 받더라도 이런 추가적인 손해배상금, 위자료 청구의 여지가 아예 차단되면서 치료비나 남은 가족들의 삶 등에는(물론 아무리 많은 액수의 돈이라도 사랑하는 가족의 부상,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치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 조항 때문에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2015년 군 복무 중 잠을 자다가 영구 시력 저하를 얻게 된 한 군인 A 씨가 있었습니다. 옆 자리에서 잠을 자던 다른 사병 B 씨가 잠을 자다가 무의식 중에 A 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던 겁니다. 망막을 다친 A 씨는 이후 수술까지 받았지만 결국 눈의 시력이 영구 저하됐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B 씨는 수면장애를 진단받아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받고 복용 중이었는데 이때 부대 파견을 나오면서는 약을 가져오지 않아 약을 먹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A 씨는 이후 재해부상군경으로 인정받아 매월 보상금은 받게 됐지만, 국가를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군부대 내에서 장병들을 잘 관리하고, 수면장애가 있는 B 씨에게도 적절한 조치를 국가가 취했어야 한다는 게 A 씨 주장이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다. 바로 이중배상금지 원칙 때문에, 즉 재해부상군경 보상을 받았으니 손해배상은 청구 못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B 씨도 당시 사물을 구별하는 등 책임능력이 당시에 없었던 것으로 봐서, 국가뿐 아니라 B 씨에 대해서 청구한 손해배상 부분도 법원은 기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이는 판결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군 복무 중 사지마비가 된 사병이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아 보상금을 받았는데도 그 부모에게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지난 2017년의 대법원 판결입니다. 강원도 양구에서 군 복무를 하던 C 씨는 2010년 유해 발굴 작업 중 메스꺼움을 느꼈고 입대 전보다 몸무게도 상당 부분 줄어드는 일을 겪습니다. 항우울증제를 처방받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이후 군 병원에 이송된 C 씨는 결핵성 흉막염을 진단받고 치료를 합니다. 그래도 호전되지 않자 다시금 검사를 했는데 이후 결핵성 뇌수막염 진단을 받았고 이후 사지마비 상태에 놓이게 됐습니다. C 씨도 공상군경으로 인정을 받고 매달 보상금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C 씨의 부모가 국가를 상대로 '군의관과 병원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상태가 악화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재판에서, 법원은 이중배상금지를 이야기하며 청구를 기각하지 않고 일부를 인정하는 결론을 내립니다(1심에선 이중배상금지 원칙을 이유로 기각했지만 2심에서 이것이 뒤집혔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습니다). 재판부가 제시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국가배상법 문구를 보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사, 순직하거나 공상을 입은 본인' 혹은 '유족'이라는 겁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 뒤에 남겨진 가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보았을 때, '공상'을 입은 군인의 가족은 '유족'이 아니기 때문에, C 씨의 부모는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문구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말장난을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위헌적 소지가 있는 이중배상금지 조항을 피해 가기 위한 하나의 묘수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군 복무 중 시력이 저하된 군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군 복무 중 사지가 마비된(하지만 사망하지 않은) 사병의 가족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 여기에 홍 일병 사례까지 덧붙이자면 그 모호함은 더 커집니다. 부상이면 가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사망이면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번 법무부 보도자료에도 이런 상황이 법 개정의 근거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판결례는 '공상 군경 가족'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였는바, 공상 군경보다 희생의 정도가 큰 전사‧순직 군경 유족의 위자료 청구가 이중배상금지에 의해 불허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법무부 브리핑 소식을 접한 어머니는 소식을 반겼지만 마음껏 웃지는 못했습니다.
 
"법무부 장관님이 그래도 오늘 그렇게 발표를 해주셔서 그나마… (중략) 늘 이렇게 결정 나서 이번 고비 넘으면 될까를 지금 너무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사실은 또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저희 처지인 것 같아요. (중략) 법무부 장관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떤 결정적인 서류가 우리한테 들어와서 확정되기 전까지는 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게 저희들이 처한 현실이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로도 군을 믿어왔다는 어머니, 홍 일병 장례식장에 군 관계자들이 조문을 왔을 때도 그랬고 국방부와 함께 의료 체계 개편 관련 국회의원 주재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상식적인 방향으로 모든 것이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게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제가 법적인 부분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냥 저희는 상식적인 것, 도덕적인 것, 그런 잣대로만 세상을 살아왔지 자식 문제로 사실은 법원에 처음 이렇게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법의 상식이 왜 이렇게 우리들의 상식보다도 그 이하인가' 이런 생각은 사실은 많이 하고 있었어요. (중략) 국가 의무 따르게 키운 부모가 병역 의무 기피한 사람보다 자괴감이 들게 해서는, 이거는 나라가 잘못 작동하고 있는 거잖아요."

법무부는 해당 규정의 개정이 이뤄진다면 공포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면서 시행 이후 그 위법행위가 개시된 국가배상 사건부터 해당 조항을 적용하되 시행 당시 배상심의회 또는 법원에 계속 중인 국가배상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가배상법이 개정돼 유족의 고유한 위자료 청구 권리를 인정하게 되는 조항이 생긴다면 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진행 중인 국가배상 사건인 홍 일병 사건에도 적용이 될 거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브리핑 중 관련 질문이 나오자 "청구권 자체를 허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제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 주시고 그 사안의 당부에 대해서는 제가 여기에서 말씀드리지 않겠다"면서도 "다만 그 (사건이 결론 나기) 이전에 법률이 통과되고 개정이 된다면 저희 부칙에 따라서 그 사안에 대해서도 유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근거로 쓰일 수 있는 법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SBS의 지난 4월 보도에서 국가가 법원의 화해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보면, 하나는 지금까지 언급한 국가배상법이었고, 나머지 1가지는 바로 군의관의 과실 여부 관련이었습니다. 4년 여 소송이 이어지는 동안 국가는 당시 홍 일병을 진료했던 군의관을, 홍 일병 사망 이후 징계했다는 사실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SBS 보도 이후 홍 일병 유족 측 변호인은 재판부에, 보도에 언급됐던, 국가로 하여금 이 징계 관련 서류를 제출해 줄 것을 명령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5일 국군의무사령부는 군의관 2명에 대해 성실의무 위반으로 홍 일병이 숨진 지 약 8개월이 지난 시점에 각 감봉 3개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는 징계처분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 모든 변화를 안고 이제 다시 시작된 재판은 현충일을 4일 앞둔 6월 2일 오후 3시에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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