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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백악관 vs 공화당, 부채한도 싸움 누가 이겼나

[월드리포트] 백악관 vs 공화당, 부채한도 싸움 누가 이겼나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하원의장이 담판 끝에 마련한 부채한도 합의안을 놓고 미국이 시끄럽습니다. 부채한도 인상은 채무불이행을 막기 위해 의회가 해야 할 헌법적 의무라며 조건 없는 인상을 요구해 왔던 백악관으로서는 민주당과 지지층에게 약속을 못 지킨 셈이 됐고, 공화당은 공화당 대로 당내 강경파로부터 제대로 된 예산 삭감 없이 민주당 정권에게 부채한도만 풀어줬다는 비판을 받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됐습니다.

백악관-공화당, 얻은 것-잃은 것

바이든 대통령, 공화당 부채한도 협상 실패

사실 합의 발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누구도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는 없다며 이번 합의가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매카시 의장은 합의안에 민주당이 원했던 건 포함되지 않았다며 공화당의 완승임을 주장했지만, 당내 보수 강경파인 프리덤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합의안 반대를 공개 선언하는 등 그의 주장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합의안의 내용은 무엇이고 과연 누구의 승리로 봐야 할까요? 매카시 의장은 최종 법안이 마련되자 본회의 표결 전 72시간의 숙려기간을 갖겠다며 이를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재무 책임 법안'(Fiscal Responsibility Act of 2023)이라고 이름 붙인 99쪽 분량의 법안에는 백악관이 요구해 온 부채한도 해결과 함께 공화당이 주장한 재정 지출 삭감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먼저 현재 31조 4천억 달러, 우리 돈 4경 1천7백조 원에 묶여 있는 부채한도를 오는 2025년 1월 1일까지 2년 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쉽게 말해 한도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뜻으로, 이 기간 동안 미 연방 정부는 한도 규제 없이 돈을 빌려 쓸 수 있게 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건 내년 대선과 직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에서 정부여당이 표심을 잡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책성과를 내는 겁니다. 정책 집행에는 당연히 막대한 돈이 듭니다. 미 연방 정부는 그간 세수에 비해 세출이 많은 적자 재정 구조를 오랫동안 이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수만으로는 경제 활성화나 복지 등 정책 집행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백악관이 대선기간 부채한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입니다.

이번 합의로 백악관은 적어도 2024년 대선 때까지는 부채한도 문제로 또다시 돈 줄이 막히는 걸 피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단순히 한도를 늘리는 대신 한도 적용을 유예시켰는데 공화당 내에서는 사실상 부채를 무제한 늘릴 수 있게 해 준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협인 만큼 백악관이 내준 것도 있습니다. 국방을 제외한 다른 분야 재량 지출을 줄이기로 한 겁니다.

합의안은 비국방분야 2024년 회계연도 지출을 동결하고 2025년 회계연도도 최대 1%만 증액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2025년 회계연도 후로는 따로 예산 상한선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국세청에 해당하는 IRS 자금을 삭감한 것도 공화당의 승리로 평가됩니다.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가 IRS 인력과 장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IRS를 무기화해 세수를 늘리려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바이든 정부의 이런 행동이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늘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공화당이 IRS를 약화시키려는 건 부자들 세금을 덜 내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해 왔습니다. 사실 법에 없는 억지 세금을 물리는 게 아니라면 왜 IRS의 장비와 인력을 보강이 문제가 되는지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또 쓰지 않고 남아 있는 코로나 19 구호 자금 약 280억 달러가 환수됩니다. 민주당이 공을 들인 복지 정책의 집행도 까다로워져서, 특정 성인의 경우 일을 해야 급식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푸드 스탬프의 근로 요건이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상당히 저항이 심했던 사안이어서 강경파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채무불이행 위험에 '양보' 택한 미 정치권

미국 부채 한도 협상

현지 언론에서는 부채한도 문제를 풀고 내년 회계연도 지출도 올해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민주당의 승리로, 반면 국방분야를 제외한 내년 회계연도 재량 지출을 삭감하고 증세의 주요 수단인 IRS 강화 예산을 감액한 건 공화당의 승리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는 타협'이란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는 없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치킨 게임'으로 치닫던 부채한도 문제를 놓고 백악관과 공화당이 타협한 건 왜일까요?

잘 알려져 있듯 '채무불이행' 위험 때문입니다. 실제 채무불이행까지 가지 않더라도 파국으로 갈 수 있다는 위험이 커질 경우 미국 경제를 넘어 세계 경제까지 붕괴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오바마 정부 부채한도 협상이 그런 예입니다. 당시 채무불이행까지 가지 않았지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미국과 유럽, 아시아 주식시장까지 요동쳤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미 정치권에게도 재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법안에 대해 미국인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야합으로, 지지하는 쪽에서는 타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양측이 파국을 막기 위해 합의점을 찾았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내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뭔가 서로에게 양보안을 제시하고 접점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미 정치권의 건강성이 일정 부분이나마 확인된 셈입니다.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 대결이 반복되는 우리 정치권에서 이를 어떻게 볼지…문득 궁금해집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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