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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자발찌로 걸어 잠근 시한폭탄, 우리는 언제쯤 안심할 수 있을까

지난 2012년 8월 20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전자발찌를 찼던 서진환이 3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잔혹한 범죄 자체로도 공분이 일었지만, 당시 여론의 화살은 부실한 전자감독 체계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가정주부를 살해한 서진환이 범행 13일 전 다른 여성을 성폭행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수법도 똑같았습니다. 이때도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습니다.
2012. 9. 11. SBS 8뉴스

경찰은 서진환을 체포하고 나서야 그가 전자발찌 착용자라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도 조사됐었습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이듬해인 2013년, 국가가 첫 범행 당시 제대로 대처했다면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을 거라며 국가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파기환송심까지 10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 끝에 지난달 1일, 국가가 유가족에게 약 2억 원을 배상하란 판결이 나왔습니다.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헌법상 의무"

법무부는 재상고를 포기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재상고 포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범죄 예방을 하지 못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겁니다. 한 장관은 그러면서 전자감독제도 보완도 약속했습니다. "'1:1 전자감독 대상자 확대', '전자감독 신속수사팀 발족' 등 대책을 마련해 운영 중"이라며 "지속해서 미비점을 보완해 범죄로부터 국민 보호라는 헌법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늘어가는 전자감독

그 의무, 지금은 정말 충실히 이행되고 있을까요? 대구보호관찰소 서부지소를 찾아 보호관찰관들과 직접 동행하며 확인해봤습니다.

대구 달성구 등 지역의 전자감독 대상자 81명 (성폭력 61명, 살인 10명, 강도 5명, 기타 5명)을 범죄예방팀 인력 10명이 돌아가며 24시간 감독합니다. 81명 대상자 중 3명이 1:1 전자감독 대상자입니다. 1:1 전자감독은 조두순과 같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 중 재범 위험성이 큰 대상자들에게 이뤄집니다. 결국 1:1 감독관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1인당 맡아야 하는 인원은 주간엔 11명, 야간엔 20명 가까이로 늘어납니다.

이렇다 보니 대구보호관찰소 서부지소 범죄예방팀원들의 눈은 항상 전자감독 대상자의 현 위치가 지도상에 나타나는 중앙관제시스템 모니터와 스마트폰에 가 있었습니다. GPS와 근처 와이파이값 등으로 정밀하게 표시되는 대상자들의 위치를 살폈습니다. 더 나아가 대상자들에게 일일이 확인 전화를 걸며 특이사항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밤에는 사무실보다 현장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음주 금지 대상자의 GPS값이 한 유흥가 술집으로 뜨자 현장에 나가 음주 측정을 바로 하기도 하고, 1:1 감독 대상자가 학교나 학원 등 미성년자가 많은 시설 근처로 가지는 않는지, 심야 외출 제한 대상자가 제시간에 귀가하는지 관할 구역을 계속 돌며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런 감시 외에도 대상자를 만나 상담하고 최근 동향 등을 파악하는 일도 중간중간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상자 대부분이 귀가하고 특이동향이 더 이상 없는 게 확인되어 한숨 돌릴 때쯤, 시곗바늘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사무실로 돌아와도 업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상자 동향에 대한 보고서 작성, 행동 패턴 분석 등이 이어졌습니다.
 
"근무 패턴이 빠듯하게 돌아가는 부분이 있죠. (야간 당직은) 보통 일주일에 2~3번 정도 들어갑니다. '주간, 야간, 비번(주야비)' 근무라 하루 잠깐 눈 붙이고 또 다음 날 출근하는…."
- 서동인 대구보호관찰소 서부지소 범죄예방팀 실무관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

이른바 '특별준수사항'이라고 불리는 맞춤형 준수사항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보호관찰관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맞춤형 준수사항은 앞서 언급된 외출 제한 외에도 채팅 앱 사용 금지, 관공서 출입 금지, 특정 범죄 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으로 대상자의 특성을 고려해 각기 다르게 적용되어 있습니다. 지난 2018년 126건이었던 맞춤형 준수사항 추가 및 변경 신청은 지난해 687건까지 늘었습니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지는 않았는지, 치료는 잘 받고 있는지 등 일일이 확인할 게 5배가량 늘어난 겁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놓치게 되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늘 불안감 우려 이런 건 늘 존재하죠.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이라서 언제 터질지 알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까 늘 퇴근해도 마음 한쪽이 무겁습니다.
- 최성우 대구보호관찰소 서부지소 범죄예방팀 계장

재작년부터 본격 도입된 신속수사팀이 도입되면서 준수사항 위반 전자감독 대상자들에 대한 수사를 즉각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범죄예방팀 직원들은 덕분에 호전적으로 대하는 대상자들도 많이 줄고, 야간 업무 부담도 조금 줄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신속대응팀 역시 인력이 빡빡하긴 매한가지라 감독 및 예방 업무를 함께 맡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대구보호관찰소 본소와 서부지소의 인원을 다 합쳐도 16명에 불과합니다. 16명이 대구·경북 지역 전체 약 1만 9천918k㎡를 전부 관할하는 건데, 산술적으로 1명이 서울 면적 2배에 가까운 범위를 맡아야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준수사항 위반자들에 대한 신속한 사후 사법 처리는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물 샐 틈 없는 24시간 감독'을 수행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직원 1명당 감독 대상자 10명' 목표라지만

이처럼 격무에 시달리는 건 대구보호관찰소뿐만이 아닙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나마 대구보호관찰소 서부지소는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자감독 전담 직원 1인당 관리 인원은 올해 1월 기준, 17.5명에 달합니다. 지난 2008년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감독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직원 1명 당 대상자는 3.1명이었으니 6배 가까이 늘어난 셈입니다. 전자감독 대상 범위가 넓어진 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9년 미성년자 대상 유괴 범죄, 2010년에 살인, 2014년에 강도 범죄까지 대상이 넓어졌고 2020년부터는 가석방 대상자까지로 감독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전자감독제도 직원 1인당 대상자

혹시 전자감독이란 제도 자체가 이 정도 인력으로 유지하는 게 한계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외국과 비교를 해봤습니다. 전자감독 전담 직원 1인당 관리 인원을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 7명, 영국 5명, 덴마크 4명, 오스트리아 3명 등 수준이었습니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이 1인당 관리 인원을 10명 안팎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실제로 법무부도 그 정도까지 수치를 낮추는 걸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목표, 5년 전 1인당 관리 인원이 19.3명일 때부터 정부가 반복해온 이야기입니다.

전자감독제도 직원 1인당 대상자

스토킹도 전자감독…가능할까?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당장 나아지기 어려워 보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앞서 언급된 1:1 전자감독 대상의 확대가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사실상 온종일 한 대상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거라서 범죄 예방 효과는 클 수 있지만 관건은 역시 인력입니다. 2019년 8명 수준이었던 1:1 전자감독 대상자가 올해 1월 75명까지 늘었습니다. 전국 전자감독 인력이 323명(신속수사팀 제외)이니 전체 23%가 1:1 감독에 투입되고 있는 겁니다. 그만큼 다른 보호관찰관들이 감독해야 하는 대상자 수가 늘어나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1:1 전자감독대상자의 79.5%가 5년 넘게 전자발찌를 차야 합니다. 20년이 넘는 인원도 4%. 대상자가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신당역 살인 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자까지 전자감독 대상 범위에 넣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정과제 점검회의 참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신당역 사건 이후에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고 스토킹 범죄자도 전자발찌를 채우도록 하고 그리고 온라인 스토킹도 처벌하는 내용의 입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1 전자감독과 신속수사팀을 강화하고 지자체 CCTV를 연계하는 것을 확대해서 전자감독을 더 강화하는 것을 진행하고 있고.
- 한동훈 법무부 장관 (2022. 12. 15 제1차 국정과제 점검 회의)

스토킹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는 게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 만일 실제로 도입될 경우 현재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문가들은 특정 대상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스토킹 범행의 특성상 1:1 전자감독과 같은 집중 관리가 불가피할 거라고 말합니다. 이상범 변호사(JY법률사무소)는 "일반적인 스토킹 범죄는 불특정한 타인에게 저지르는 다른 범행들과 차이가 있다."며,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고 있는 경우도 많고, 생활 범위가 가까운 경우도 많아 대체로 1:1 전담 마크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 허덕이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장기간 전자발찌를 차야 하는 1:1 전자감독 대상자는 늘어나는데, 여기에 스토킹 범죄까지 추가되면 버틸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안심할 수 있을까

보호관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고 관리감독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하루 이틀 이어진 게 아닙니다. 도입 초기는 물론 최근까지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이어져 왔습니다.
 
현재 1천30명의 성범죄 전과자가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데, 이들을 관리하는 보호관찰관은 102명에 불과한 것도 문제입니다.
- 2012. 8. 22. SBS 8뉴스

현재는 보호관찰관 1명이 19명가량 담당하다 보니 제대로 된 보호관찰이 불가능합니다. 법무부는 직원 1명이 맡는 인원을 선진국 수준인 10명 선으로 낮추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2018. 1. 25. SBS 8뉴스

하지만 지난 2021년에 증원된 보호관찰관은 80명, 2022년에는 32명에 그쳤습니다. 법무부가 요청한 인원의 3분의 1, 또는 그 미만 수준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 현장 인력이 최선을 다한다 한들, 현재로선 국민들에게 시한폭탄들이 전자발찌로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 듣기 좋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정책 방향과 발맞춘 예산과 인원 보강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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