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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벽돌, 방패에 야구방망이까지…'각자도생' 내몰린 편의점 사람들

"요즘 같아선 너무 무서워서 일을 하면서도 내가 다른 것을 뭘 해야 되지 않을까 항상 매일매일 생각해요."

서울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선경 씨(52세)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6년 동안 편의점을 운영해왔다는 박 씨를 이토록 두렵게 만든 일은 무엇일까요? 이 사연에는 서민의 서러움과 정부의 '뒷짐'이 얽혀 있습니다.
 

호신용품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들

박 씨의 편의점 계산대 옆에는 나무 몽둥이와 종이로 감싼 묵직한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종이와 테이프로 감싼 덩어리는 반으로 쪼갠 벽돌입니다. 호신용으로 가져다 놨는데, 혹시 편의점을 방문한 손님들이 보면 놀라지 않을까 염려해 종이와 테이프로 감쌌다고 하는군요.

박선경 씨가 구비한 몽둥이와 종이로 감싼 벽돌
인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장 모씨 부부는 얼마 전 '호신용품 패키지'를 구매했습니다. 전기충격기와 캡사이신 스프레이, 호신용 방패로 이루어진 이 상품은 20만 원 정도로 꽤 값비싼 용품이지만 주저 없이 샀다고 합니다. 계산대 아래에는 전직 은행 경비원에게 받은 '경찰 곤봉'도 매달아 놨습니다.

장 모 씨 부부가 구비한 호신용품 패키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SBS가 취재를 하면서 접촉한 전국의 편의점 운영자와 아르바이트생들은 여러 종류의 호신용품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야구방망이부터 망치나 쇠파이프, 심지어 제초용 나이프까지 방송에 내보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용품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스프 편의점 (사진=연합뉴스) 스프 편의점 (사진=연합뉴스) 스프 편의점 (사진=연합뉴스)
편의점 계산기에는 대부분 긴급 호출 버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3분~5분 사이에 경비업체 직원 또는 경찰이 해당 편의점으로 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불안에 떠는 걸까요. 사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불안의 시작…감사원의 감사와 보건복지부의 단속

2019년 4월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 4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감사원의 지적을 받습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 4(담배에 관한 광고의 금지 또는 제한)
① 담배에 관한 광고는 다음 각 호의 방법에 한하여 할 수 있다.
1. 지정소매인의 영업소 내부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광고물을 전시(展示) 또는 부착하는 행위. 다만, 영업소 외부에 그 광고 내용이 보이게 전시 또는 부착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편의점 바깥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게 전시하거나 부착하면 담배 광고를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당초 청소년들을 흡연에서 보호하기 위한 취지의 법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편의점들의 담배 판매대는 계산대 바로 뒤에 설치되어 있어 가게 바깥에서도 보이지요.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어 법은 2011년에 제정되었지만 10년 가까이 유명무실한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갑자기 감사원이 지적한 것입니다.

보건복지부가 계도 기간을 거쳐 2021년 7월부터 편의점들에 대한 단속을 시작하자 편의점 업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납니다. 복지부가 편의점 업계에 전달한 문건의 한 부분을 볼까요?
 
<담배소매인 영업소 내 불법 광고물 판단 기준>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불법 담배 광고를 한 제조자 등에게 1년 이하의 영업 정지 처분, 불법 담배 광고에 대한 시·군·구청장의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은 소매인에게 1년 이하의 영업 정지 처분 가능

징역과 벌금뿐만 아니라 영업 정지까지 당할 수 있어 편의점 업계는 서둘러 가게 바깥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편광필름 부착과 광고물 위치 조정 또는 제거, 불투명 시트지 등의 방안이 논의됐는데, 시간과 비용에 쫓긴 편의점 업계는 가장 간단한 '불투명 시트지 부착'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2022년부터 전국 거의 모든 편의점들이 유리창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이게 됐습니다.
 

담배 광고 막자고 한 건데…엉뚱한 부작용

그런데 이걸 붙이고 보니 엉뚱한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주이건 아르바이트생이건 대부분 비슷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습니다. '진상 손님들에 의한 신체적 정신적 폭행'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취재를 위해 여러 편의점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한밤중 이상한 손님 때문에 두려움에 떨거나 실제로 폭행을 당해 다친 기억들을 갖고 있더군요. 이런 트라우마가 있는 와중에 가게 유리창을 불투명 시트지로 둘러쌓아 버리니, 두려움이 더욱 커지게 된 것입니다. 서울 상봉동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지운 씨의 이야기입니다.

"손님 하고 트러블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들어오셔서 도와주시기도 하고 무슨 일이냐 이렇게 물어봐 주시기도 하는데 이제는 이런 것(불투명 시트지)으로 시선이 차단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불가능해져서 아무래도 더 두렵게 되고 위협이 되는 거죠."

이런 분위기에서 2월 2일 경기도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학생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습니다. (▶ 관련 기사) 그리고 6일 뒤인 2월 8일에는 급기야 인천 계양구 편의점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관련 기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편의점이었는데, 야간에 홀로 근무하던 30대 아들이 살해당한 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50분이나 지나서 발견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지닌 과거의 안 좋은 기억에 불투명 시트지로 시야가 가려지면서 생겨난 불안감, 그리고 이에 더해 실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말 그대로 공포감을 경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되자 각자도생하는 심정으로 저마다 호신용품을 구입하고 구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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