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입시에서도 <문과 침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입시전문기관의 분석입니다.특히 수학 영역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현상이 발생하면서 '확률과 통계'를 택한 소위 문과생이 불리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22학년도에 이어 2023학년도 수능시험까지, 2년 연속 선택과목별 유불리, 통합수능의 공정성이 논란이 되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각 대학이나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과 논의해 개선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문학이 저는 결코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첨단 과학으로 갈수록 그래서 그런 면에서 사실 문-이과 통합도 된 거고. 그런 면에서 이제 앞에서 문제 제기를 하신 수능에서 그런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도 해소하려는 노력을 당국이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고 보거든요…. 구조적인 문제 같은 거는 결국은 대학 당국이나 또 대교협이랑 협의를 해서 입시 과정에서 조금 그걸 해소하는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SBS 인터뷰, 지난해 12월 22일)
하지만, 장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9년 수시모집 공정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서울 16개 대학의 정시모집 비율을 40%로 끌어올릴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당시에는 교육부 차관이 각 대학에 전화를 돌려서 논란이 될 정도로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이번엔 대교협을 통한 간접적인 압박을 펴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처장 간담회에서도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한 뒤 논의하자는 뜨뜻미지근한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주호 장관의 SBS 인터뷰 이후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직 여론이 들끓는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일까요? 대교협이 각 대학에 보낸 공문을 한 번 보시죠.
많은 경우, 정부의 정책 목표를 각 대학의 전형 요소에 반영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지원금입니다. <고교 교육 정상화 기여 사업> 등 대학 지원 사업에 "문-이과 통합수능의 취지를 반영했느냐"라는 평가 문항을 넣으면 가장 간단한 거죠. 하지만, 교육부는 <고교교육정상화 기여 사업>이 2년+1년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새로운 조건을 걸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지원금을 당근으로 쓸 수 없단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문-이과 통합수능으로 인한 부작용을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걸까요.
문-이과 장벽, 아예 허물거나 더 높이거나
먼저, 지원 자격에서 문-이과 장벽을 없앤 곳들이 나타났습니다.
서강대는 2024학년도(올해 고3 입시)부터 선택과목에 관계없이 인문사회/이공계열 학과 진학이 가능하다고 발표했습니다. 미적분.기하 같은 수학 선택과목을 듣지 않아도!! 과학탐구가 아닌 사회탐구를 선택했더라도!! 이공계열 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는 거죠. 서강대는 통합수능 시행 이전인 지난 2019년, 선제적으로 문-이과 통합 지원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자신 있게 장벽을 없앴다고 강경진 서강대 입학사정관은 설명했습니다.
성균관대에서도 2024학년도부터 수학 선택과목과 관계없이 이공계열 지원의 문을 열어놨습니다. 다만, 탐구영역의 경우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혀 '과학탐구 응시자'라는 장벽은 남겨뒀습니다. 이공계열 지원에 수학 미적분·기하를 필수로 지정한 학교가 2023학년도 입시의 경우 60곳이었는데, 오는 4월에 확정되는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에선 이를 포기하는 학교가 적잖이 나올 거 같습니다.
사회탐구/과학탐구 선택 유불리를 보완하는 변환표준점수 등을 활용해 오히려 문-이과 교차 지원의 장벽을 공고히 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통합수능 첫 해부터 교차 지원으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유명 사립대의 한 인문계열 학과는 정시모집 인원의 40%가 한 학기만에 휴학계를 던지면서 발칵 뒤집혔습니다. 모두 과탐 선택자였습니다. 재도전을 택한 이들이 복학하지 않을 경우, 이 학과는 한 학년 전체 모집 정원의 30%가 빠진 채로 3년을 견뎌야 합니다.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고, 학과 운영에 큰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정적 측면뿐 아니라 평소 관심 분야가 아닌 학과를 입시 전략상 택한 학생의 경우, 이해도가 크게 떨어져 수업을 따라오기도 힘들다고 교수들은 호소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문-이과 교차 지원이 쉽지 않게 벽을 쌓겠다는 겁니다. 통합수능 첫 해 교차 지원으로 쓴맛을 본 대다수의 대학들이 2023학년도부터는 '변환표준점수'라는 방패로 무장하고 전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체, 왜, 국어 · 수학 영역에 공통+ 선택형 구조를 도입했나요
하지만 우리나라 입시에서 절대 가치는 공정성입니다. 과목 선택권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데요, 당시 통합수능안을 설계한 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는 이런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요? 모집단의 성적이 나의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 표준점수의 한계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을 텐데 말입니다.
교육부 한 간부는 2018년 도입 당시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당시 학교 현장이나 입시에서 '문-이과'는 불변의 프레임이었고, 과거 수능에서 이과생들에게 수학 선택과목을 적용했을 때는 이렇게 부작용이 크지 않았다는 거죠. 위의 보도자료에 문-이과 통합수능과 함께 고교학점제에 대한 밑그림이 함께 제시되는 걸 보면, 당시 교육당국이 정책 목표를 선택과목별 유불리 해소, 즉 공정성보다는 학생의 선택권에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 입시 전문가는 제도적으로 수능 시험 자체는 학생 선택권을 존중하도록 길을 터줬는데, 대학의 이기심이 제도를 망쳤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공계 교수들이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를 필수로 지정하면서 문이과 통합수능의 점수 체계는 물론 본질이 왜곡됐다는 거죠. 컴퓨터공학과 지원자가 <확률과 통계>에 흥미를 가져도 고등학교에선 선택할 수 없게 만들어놓는 구조가 됐으니까요. 물론 대학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지만, 모든 과목을 고등학교에서 끝내고 오지 않아도 대학이 가르치면 되는데, 교수들이 이런 수고를 회피하면서 벌어진 참사라는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