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속옷서 침 성분 나와도 추행 무죄"…'갸우뚱' 1심 판결 깬 'Y-STR 유전자'

[취재파일] "속옷서 침 성분 나와도 추행 무죄"…'갸우뚱' 1심 판결 깬 'Y-STR 유전자'
친한 이웃이었던 세 가족과 함께 떠났던 여행은 악몽으로 변했습니다. 지난 2018년 봄, 9살 A 양 가족은 이웃들과 함께 휴양림으로 2박 3일 가족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A 양 어머니는 딸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47살 남성 B 씨와 단둘이 있다가 텐트에서 나오는 걸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평소 A 양은 B 씨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습니다.

A 양 어머니가 "삼촌이랑 뭐 하고 놀았냐" 묻자 A 양은 부끄러워 말을 못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재차 묻자 A 양은 혼내지 않을 거냐고 물었고 A 양 어머니가 그러겠다고 하자 "사랑을 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A 양 가족은 여행을 중단하고 그길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A 양 부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A 양은 아랫배 주변의 통증을 호소했고 A 양 가족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인 해바라기센터를 찾아갔습니다.

법원 재판-법정, 판사

2019년 6월, 대전지검은 13세 미만의 아동을 추행한 혐의(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로 B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B 씨가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A 양의 신체에 접촉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검찰은 판단했습니다. B 씨는 추행 행위 자체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A 양의 속옷에서 B 씨의 침 성분이 검출됐다는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1심이었던 대전지법 형사8단독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 양의 속옷에서 B 씨의 타액(침) 반응이 나타났고 피고인의 것과 일치하는 DNA가 검출됐지만 약한 양성반응이라 그 양이 많지 않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A 양은 최초 경찰 조사 당시에도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는 등 속옷을 만지는 습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 당시 B 씨가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줬을 때, 혹은 손등에 긁힌 상처 부위를 핥았을 때 묻은 침이 다른 경로로 피해자의 속옷에 묻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풍선 입구 부분이나 B 씨 손등에 묻은 약간의 침 성분이 A 양의 손을 거쳐 속옷에 묻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면봉 DNA검사

A 양 가족은 납득할 수 없었고 검찰은 항소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 과정에서 1심 판결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가 나왔습니다. 대검찰청 DNA 감정실에서입니다. 대검 DNA 감정실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교차 검증하는 2차 감정 기관입니다. 국과수 감정을 보충, 보완하거나 오류를 바로잡는 역할도 합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속옷 1개 부위만 감정한 것을 확인한 검찰은 속옷 27개 부위와 바지 19개 부위 등 모두 46개 부위에 대한 정밀 감정을 다시 진행했습니다. 대검 DNA 감정실은 총 17개 부위에서 B씨의 'Y-STR DNA형'을 검출했습니다. Y-STR DNA형이란 일종의 유전자로,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Y 염색체의 짧은 염기서열 반복 구간을 의미합니다. 이 Y-STR DNA형은 아버지와 아들, 형제 등 동일한 부계끼리만 일치하기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여러 용의자들 중 DNA형의 주인이 누군지 찾는 데 자주 활용됩니다. 결정적으로, B 씨의 Y-STR DNA형이 발견된 부위 중 7개 부위에서 정액 반응이 양성으로 확인됐습니다. 8개 부위에선 침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객관적인 증거가 드러나면서 2심이었던 대전지법 제1형사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재판부는 "B 씨의 DNA형이 검출된 곳 중에서 다수의 타액(침) 양성 반응이 나온 점과 특히 정액 양성 반응까지 나왔다는 검증 결과는 피해 사실에 대한 (A 양의)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풍선 입구 부분이나 손등에 묻은 침이 A양의 손을 거쳐 속옷에 묻었을 가능성에 대해선 "여러 차례의 전이를 거치며 속옷의 여러 부위에서 타액(침) 양성 반응이 나타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객관적 증거가 밝혀졌음에도 A 양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반성하고 있지 않다. 평소 A 양은 B 씨를 믿고 좋아하며 잘 따랐는데 B 씨는 이런 인적 신뢰를 이용해 A 양을 강제추행한 것으로 잊히지 않는 큰 상처를 주었다"고 질책했습니다.

B 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