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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대졸 초임, 일본보다 60% 높지만…일자리 병들었다

일자리 님비 "내 거 건드리지 말고 네 거 나눠 줘!"

[깊은EYE] 대졸 초임, 일본보다 60% 높지만…일자리 병들었다
"과로사 조장하나?"
"노동자를 개처럼 부리자는 수작이다."
"화이트칼라만 좋은 주52시간제"
"초과근로 수당 못 받아 먹고살기 힘들다."

영세 사업장에 한해 주 52시간보다 더 일할 수 있도록 한시 허용한 제도를 다시 연장하는 것을 포함해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놓고 벌어진 댓글 공방들이다.

우리에겐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민족'이라는, 자부심이라기보다는 트라우마처럼 각인된 정체성이 있다. 실제로 산업화 초기와 고도 성장기에는 노동력 착취로 근로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근로시간을 사업장 특성에 따라 다시 늘리자는 방안에는 대체로 부정적인 댓글이 많다.

한국의 일자리 구조는 처한 위치에 따라 이해관계가 너무 다르다. 모두가 자기 관점에서만 쳐다보다 보니 근로시간 연장 방안에 대해, 한쪽에선 미쳤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항변한다.

미쳤다는 쪽은 '최장 근로 트라우마'가 각인된 시민이거나 대기업 근로자일 가능성이 높고,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는 쪽은 중소기업의 경영인이나 근로자일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많은 중소기업들의 경우, 사장들은 납기 맞춰야 하는데 근로시간 제한 때문에 그걸 못한다고 아우성이고, 근로자들은 근로자들대로 초과 근로 수당이 줄어 소득이 감소했다며 불만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소득 높은 대기업 직원들의 몫이고,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저녁에 굶주린 배를 움켜줘야 하는 셈이다.
 

9:1의 기울어진 운동장

한국의 일자리 구조는 9:1의 절대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좋은 게 9면 더할 나위 없으련만 그 반대다. 대기업과 공공 부문 정규직으로 구성된 좋은 일자리는 10%에 불과하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으로 이뤄진 열악한 일자리가 90%다.

10%에 불과한 좋은 일자리는 강력한 힘을 가진 노조의 등에 업혀 끊임없이 임금과 복지를 늘리면서 나머지 90% 일자리와의 간극을 갈수록 벌리고 있다.

한국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은 일본은 물론 어지간한 선진국보다 더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자료를 보면, 물가를 반영한 구매력 평가 환율을 적용할 경우, 국내 5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대졸 초임은 지난 2019년에 이미 4만 7,808 달러로, 일본 1,000인 이상 기업의 2만 9,941 달러에 비해 무려 60%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체 일자리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내지는 비정규직 일자리들은 여전히 바닥을 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경총 자료에서는 10인 미만 영세사업체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280만 8,000원인데 비해, 300인 이상 대기업은 568만 7,000원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전체로는 대기업 평균의 60%를 밑돈다. 우리와 비슷한 제조 강국인 독일과 일본의 중소기업 임금 수준이 대기업의 90% 선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그 차이가 너무 크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부족한 역량 때문에 중견·대기업으로 커나가지 못하는 중소기업 자체의 문제다. 또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불공정한 기업 생태계가 이유일 수도 있다. 그와 더불어 10%의 기득권 일자리와 그들의 이익만을 대변해온 강성 노조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일자리 님비'로 일자리 간 격차 더 커졌다

'일자리 파이'는 원론적으로 두 가지 방법에 따라 만들어진다. 하나는 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인데,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 적정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자리를 창출할 수는 없기에 그 수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하나는 「일자리 나누기」로, 근로시간 혹은 임금 및 복지 비용을 나누는 것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주52시간제 도입이라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좋은 일자리의 쪼개기 효과를 기대했다. 그 배경에는 가뜩이나 높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근로자들이 상습적인 연장 근로를 통해 근로시간을 독점하면서 많은 수당을 챙겨오던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기대와 반대로 오히려 일자리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근로자의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응당 그 시간을 보충할 다른 사람을 고용해야 할 텐데 반대 결과가 나타난 것은 왜일까.

다소 민망한 해석이지만 기존 10% 좋은 일자리의 근로 조건이 너무 느슨해 생산성이 이미 바닥이었기에, 근로시간을 단축해도 종전과 같은 일을 하는 데 무리가 없었고 따라서 더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 많다.

결국, 남은 일자리 나누기의 방법은 임금과 복지 여력의 나누기다. 안타깝게도 또 걸림돌이 있는데 여기서도 상위 10% 집단과 그들을 대변하는 강력한 노조가 지금까지 '님비 근성'을 드러내 왔다는 것이다.

강력한 교섭력을 무기로 일자리의 질을 높여온 10%의 그들 역시 90% 일자리 상황이 열악하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알긴 아는데 내 거 건드리지 말고 네 거로 도와줘라!"는 식으로, 정부와 기업이 그 부담을 온전히 떠맡길 바라왔다.

정부는 정부대로 일자리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기업 역시 근로자와 상생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한정된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면 다수는 배를 곯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내 것만을 챙기기에 급급하던 10%의 근로자들과 노조가 '일자리 님비'를 극복해야 할 때다.

고철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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