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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축구 국대는 군사훈련부터?…뜨거운 논란

'14억 명 중에 뽑았는데…축구는 안 되는 이유' 이번엔 해법 찾을까?

카타르 월드컵이 막바지를 향해가는 와중에 중국 축구협회의 내년 국가대표 훈련 일정이 현지 매체 보도로 알려지자마자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설날에 해당하는 내년 춘절 이후에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소집하고 해외 전지훈련도 한다는 내용입니다.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라인업을 구성하고 수준 높은 평가전을 여러 차례 치르면서 내년 아시안컵부터 잘 준비한다는 이야기지만 정작 주목받은 건 '군사 훈련'이었습니다. 중국 축구협회가 '엄격한 관리와 강도 높은 훈련'을 강조하면서 소집훈련 초반부터 '군사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삭발하고 특수부대 훈련…과거에도 있었지만


'정신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며 군사훈련에 찬성하는 의견도 있지만 중국 축구팬들의 전반적인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번에 처음이 내놓은 방안이 아니고 과거에도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을 준비하던 중국 대표팀은 2007년 12월 광저우의 신병교육대에 선수들을 입소시켰습니다.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완전 밀폐형 군사훈련을 실시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 호주, 이라크, 카타르와 같은 조가 됐는데 꼴찌로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겁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2018년 10월에는 무려 55명의 25세 이하 국가대표 상비군을 뽑아 군사훈련에 참여시켰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 대비가 명분이었습니다. 선수는 물론 코치들까지 삭발 수준으로 머리카락을 짧게 깎았고 군복을 입고 약 1달 동안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중국 프로축구 시즌이 진행되는 중이었지만 해당 선수들은 의무적으로 차출됐습니다. 중국 축구협회는 "팀 정신과 결속력을 강화하고 국가의 명예를 위한 투쟁에 신념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정신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중국 인민해방군 특수부대 소속 교관들이 훈련을 맡았습니다.

(리사이징) 정영태 취재파일

한 달 뒤에는 19세 이하 (U-19) 대표팀 36명도 3주간의 군사훈련에 참가했습니다. 중국 U-19 축구대표팀이 2018 아시아축구연맹 U-19 대회 조별리그 3위로 예선 탈락하자 대회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안돼 선수들을 훈련소에 집합시킨 겁니다. 이번에도 역시 '체계적 훈련과 정신력 강화'를 내세웠지만 결과는 역시 좋지 못했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중국은 아시아 최종예선까지는 갔지만 B조 6팀 중 일치감치 하위권에 맴돌았고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특히 약체로 평가되던 베트남과 경기에서 1대 3으로 패배하면서 예선 탈락이 최종 확정됐는데, 이 경기는 최근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이 치른 경기 가운데 가장 치욕스러운 경기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군사훈련으로 실력 향상된다면, 월드컵 우승도 가능"


과거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의 군사훈련 당시에도, 프로축구 시즌 중에 선수들을 소집해 시대에 맞지 않는 훈련 프로그램을 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되겠냐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사훈련으로 축구 실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면, 월드컵 우승도 멀지 않았다", "군사훈련은 북한이 최고인데, 북한 축구는 세계적 수준이냐?"는 조롱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사실 중국 국가 대표팀의 군사훈련 참여는 축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탁구나 배드민턴 중국 대표팀도 짧은 군사훈련에 참여한 적이 있고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종목에 따라서 일부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이른바 '극기훈련 캠프'에 참여하는 것은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축구대표팀의 군사훈련에 중국 축구팬들이 이렇게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건 "군사훈련이 문제가 아니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책이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중국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이었던 리톄 숙청설이 이런 논란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 중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군사훈련 입소 사진. '중국몽 축구몽' 이라는 붉은색 구호가 눈에 띕니다.

중국 남자축구 대표팀 전 감독 숙청설…비판 여론 '희생양'?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아시아 팀들의 선전이 한창이던 지난달 말 리톄 전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엄정한 위법 혐의'라고만 알려졌고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감찰 조사의 주체는 중국의 중앙사정기관인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의 기율 검사팀과 후베이성 감찰위원회라고 밝혀졌습니다. 중국에서 중앙기율위의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재기가 어려운 '숙청'으로 간주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중국 대표팀 미드필더로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리톄는 2020년 1월 대표팀 사령탑이 됐습니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부진을 거듭하자 예선 도중인 지난해 12월 물러났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톄에 대한 감찰 조사 사실이 공개된 것 자체에 어떤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축구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돌릴 '희생양'으로 리톄가 지목된 것 아니냐는 겁니다. 감찰 조사 사실이 공개된 뒤 보름 가량 지났지만 구체적인 혐의가 무엇이냐는 물론 공안당국에 체포가 된 건지 아닌지 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리톄 관련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미 여러 사람이 관련돼 있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인 겁니다.

벤투 감독 영입설?…마르첼로 리피, 파비오 칸나바로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벤투 감독이 중국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된다는 설이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중국 매체들이 한국 언론 보도를 인용해 소개하고 있을 뿐 중국 축구협회의 공식 발표는 없는 상태입니다. 벤투 영입설에 대해서도 중국 축구팬들의 반응이 마냥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누구를 감독으로 불러도 소용없다. 감독 문제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과거에도 '마르첼로 리피'나 '파비오 칸나바로' 같은 유명 외국 감독이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을 맡은 적이 있지만 중국 축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축구팬들은 '리톄 전 감독 숙청설'을 다시 거론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근본 원인을 해소하지 못하면 누구를 감독으로 불러오더라도 중국 축구 발전은 어렵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2026년 월드컵…아시아 출전권 확대가 중국 축구에 기회 될까?


중국 남자 축구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래도 중국 팬들의 축구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올해 카타르 월드컵에는 방역 정책 때문에 많은 중국 팬들이 월드컵 경기장 직관에 나서지 못했지만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만 해도 6만 명의 중국인이 직관을 위해 러시아에 방문했습니다. 비록 중국 대표팀이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월드컵 자체를 즐기려는 인구가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열정적인 중국 축구팬들은 4년 뒤 다음 월드컵은 다를 수 있다며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는 2026년 열리는 이른바 북중미 월드컵에는 본선 진출 팀이 48팀으로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시아 축구연맹에 배정된 본선 출전권이 8.5장으로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월드컵의 최대 스폰서가 된 중국의 본선 진출을 위해 피파가 배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광고판을 유심히 지켜본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완다, 하이센스, 비보, 멍니우 등 중국 대기업 4곳의 광고가 끊이지 않고 나왔습니다. 영국 컨설팅업체 글로벌 데이터에 따르면 이들 중국 기업 4곳이 피파에 후원한 금액은 13억 9천500만 달러로 미국 기업들의 11억 달러를 크게 넘어섰습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큰 손'이 된 겁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정영태 취재파일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 대표팀의 본선 진출 가능성을 확신하기보다는 걱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한국과 일본, 사우디, 이란, 호주 같은 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 강팀들이 8.5장 가운데 4~5장을 가져간다고 보면 나머지 3.5~4.5장을 놓고 다른 나라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랍에미리트나 이라크, 레바논 같은 중동팀이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베트남 등도 현재 중국 팀의 전력으로는 결코 얕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기존의 4.5장 출전권 체제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건 그렇다 쳐도, 8.5장으로 확대되는 다음 월드컵에서조차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축구굴기, 중국몽 축구몽'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기가 더 민망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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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 명 중에 가려 뽑았는데…왜 축구는 안될까?


한때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은,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뿐"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었습니다. 올림픽만 하면 종합 순위에서 늘 1,2위를 넘보는 중국이 왜 남자 축구만은 실력 향상이 안되냐는 의문에 여러 종류의 분석도 이미 나와 있습니다. 유소년 축구 기반이 약하다거나, 축구계에도 뿌리 깊은 연줄 문화인 '꽌시'가 작동한다거나, 중국 프로축구의 연봉이 너무 높아 국내 선수들이 굳이 해외 리그에 진출해 실력을 키울 생각을 안 한다 같은 내용들입니다. 분석도 다양한 만큼 해법도 가지각색인데, 2026년 월드컵에서 중국팀의 본선 진출 가능성이 그나마 가장 높아진 건 분명합니다. '14억 명 중에 가려 뽑아도 축구는 안 되는 이유'…이번에는 제대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다만 중국 축구팬들은 적어도 '군사 훈련'은 그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사진=바이두,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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