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2022년 올해 세계의 10대 뉴스 가운데 1, 2위를 다툴만한 건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 것이다. 아직 전쟁의 향방이 오리무중인 상태로 발발 이후 반 년이 훌쩍 지나 전쟁 초기보다 세계의 관심도는 다소 떨어진 상태지만, 개전부터 지금까지 전쟁의 진행 상황을 돌이켜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저궤도 위성 통신망 '스타링크starlink'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지도 확 끌어올려
머스크는 당시 스타링크의 서비스 지역이 아니었던 우크라이나를 서비스 지역으로 바로 설정하고, 위성 신호를 잡을 수 있는 단말기도 지원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실행력이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업로드하는 전쟁의 참상이 스타링크로 복구된 인터넷 망을 타고 세계 각지로 알려졌고, 우크라이나 군도 스타링크를 러시아를 향한 반격에 유효하게 활용했다.
약 3개월이 지난 6월 7일,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통해 스타링크 단말기 1만 5천 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며, 하루 이용자 숫자가 15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페도로프 부총리의 트윗을 참고했음에 틀림없다. 물론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스타링크 단말기의 일부는 미국의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부담하긴 했지만 이 역시 머스크의 계산 속에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단말기 비용의 상당 부분을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과 폴란드 등의 지원으로 충당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그렇다고 머스크가 스타링크 인프라를 전장이 된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사실 자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최근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스타링크 운영 비용을 미국 정부와 협상하려는 의도를 시사하며 이른바 '간'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이 예상 외로 장기화하면서 머스크도 주판알을 튕겨보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의도적인 차단,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인한 통신 기반 상실 등을 이유로 인터넷 인프라가 침해를 받은 지역에 스타링크를 긴급 투입하는 대안은 이제 글로벌 환경에서 일반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지난 1월 해저 화산 분화로 통신 인프라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던 통가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를 거쳐, 최근 반정부 시위가 하루가 다르게 격화하고 있는 이란과 군부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며 정보 유통을 통제하고 있는 미얀마가 그렇다. 2019년 첫 스타링크 위성을 쏘아 올리고 2020년 북미 지역을 시작으로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스타링크가 2022년 올 한해를 지나면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지도를 끌어모은 셈이다. "인터넷이 필요해? 그럼 스타링크지!"
사람들의 자유로운 연결을 막으려는 인터넷 시대의 '열린 적들'에게 머스크는 분명 껄끄러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중국이 불편한 심경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타링크에 한해서 머스크는 일종의 '인터넷 전도사' 같은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은 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머스크가 '사업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머스크는 이윤을 좇는 사업가다. 그것도 저돌적이며 탐욕스럽고, 게다가 천재적인.
스타링크, 대체 뭔데
저궤도상의 각 스타링크 위성은 주변의 가까운 위성들과 광학 신호를 통해 연결되며, 실시간으로 신호가 가장 강하게 유지되고 속도가 빠른 경로를 찾아 데이터를 전송하게 된다. 지구는 자전하므로 지상의 한 지점에서 스타링크 위성 1개와 연결되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 최초 연결된 위성이 접속 범위에서 벗어나도 그 뒤를 따르는 다른 위성을 이용해 끊기지 않는 통신이 가능하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연결을 이어가며 인터넷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낮은 궤도에 위성을 띄우면 위성 하나하나가 담당하는 지상의 면적이 극단적으로 좁아지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위성을 띄워야 한다. 여기서 스페이스엑스의 팰콘 발사체가 진가를 발휘한다. 팰콘 로켓은 지구 저궤도에 화물(payload)을 '뿌리고' 다시 귀환하기 때문에 스타링크의 소형 위성을 여러 번 대량으로 '살포'하는데 적임자다. 지금까지 팰콘 발사체는 한 번 발사에 스타링크 위성 50~60개 정도를 한꺼번에 궤도에 올렸다. 지난달 5일 기준으로 스페이스엑스의 팰콘9 발사체는 모두 63회에 걸쳐 위성 3,043개를 저궤도로 운반했는데, 이 가운데 한 발사체(팰콘9 Block5 B1058)는 지금까지 14번 재사용(재발사)됐다. 현재로선 전세계에서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스타링크 사업은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우주 탐사비용의 절감을 목표로 개발해 온, 재활용이 가능한 팰콘 로켓만이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독점'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를 커버리지로 하는 스타링크 서비스를 위해 스페이스엑스는 단계적으로 1만 2천 개, 최종적으로는 무려 4만 2천 개의 스타링크 위성을 쏘아올리겠다고 미국의 통신 규제당국에 밝힌 상황이다.
2021년 타임(TIME)의 '올해의 인물', 21세기 최고의 '문제적 인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가 세상에 내놓은 '상품' 가운데 스타링크는 가격대가 가장 싼 축에 든다. 상품을 고르는 데 가격과 성능, 그리고 그 둘의 합리적 조합인 '가성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건 불변의 사실이지만, 일단 여기까지 읽은 독자 여러분은 스타링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간단한 투표를 마련했다.
Q. 머스크의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 한 번 써 볼까?
① 써볼 만 하지 않나?
② 에이, 그걸 왜 써?
저궤도에 빽빽하게 뿌려질 위성은 그렇다치고, 지상에서는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현재 스타링크가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지역은 미국, 캐나다(북극권 제외), 유럽 일부 국가와 호주(북서부 제외), 뉴질랜드와 남미 일부 국가다. 여기에 지난 10월 11일부터 가까운 일본에서도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다. 일본의 경우 가장 큰 혼슈(本州)에서 도쿄를 기준으로 북쪽, 즉 동일본 지역의 대부분이 서비스 권역이고 홋카이도(北海道)도 혼슈와 가까운 남단(하코다테 일대)은 서비스가 가능하다.
스타링크 서비스가 이미 시작된 지역에 사는 이용자들이 유튜브나 SNS에 스타링크 사용기를 올려놓고 있는데,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한 번쯤은 봤을 수도 있겠다. 기본적으로 작은 접시형(또는 장방형) 안테나를 하늘이 보이는 곳에 설치하고, 안테나 케이블을 공유기(라우터)에 연결한다. 공유기에 전원을 공급하면 안테나가 작동을 시작해 상공을 지나는 위성을 찾는다. 위성과 연결되면 공유기를 통해 와이파이 전파가 뿌려지고, 이걸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 스타링크는 안테나와 이를 세울 수 있는 스탠드, 전원 공급 장치, 공유기를 묶어 '하드웨어 키트'로 이용자에게 판매하고, 매달 이용료는 별도로 받는다.
일본의 경우 스타링크 키트는 7만 3천 엔(우리돈 70만 원 정도), 월간 이용료는 만2천3백 엔(약 11만7천 원)에 책정됐다. 사전 예약한 고객에게 우선적으로 스타링크 키트를 발송하고, 가입자는 1개월 무료 체험 기간을 거쳐 유료 이용자가 된다. 기본 가입조건은 스타링크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역 내의 거주자가 자신이 등록한 주소지에서만 접속이 가능한 방식(레지덴셜)인데, 여기에 월 3천 엔(약 2만 8천 원)의 옵션을 추가하면, 본인의 스타링크 기기를 주소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캠핑족이라면 트렁크에 앞서 설명한 하드웨어 키트를 담아 가면 된다. 물론 캠핑장에서 전원을 공급받을 방법은 미리 생각해 둬야 하는데, 대개는 차량 충전이 가능한 대용량 모바일 배터리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가입자들에게 최근 배송된 스타링크 키트를 보면 북미의 신규 가입자들과는 달리 위성 접속용 안테나가 사각형이 아닌 동그란 원형으로 제공되는 걸 알 수 있다. 원형 안테나는 초기에 생산된 것들인데, 제작 단가가 높아 최근 북미에는 이보다 조금 작고 네모난 장방형 안테나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 상륙 초읽기?
국내 위성통신업계에 따르면, 스페이스엑스 관계자가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해 정부와 비밀리에 접촉한 데 이어 10월 현재 복수의 기간통신사업자와 스타링크 사업 진출을 놓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이스엑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법인 설립을 통해 사업에 진출하는 직접적인 방식을 선호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에 필요한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위성과 지상 사이 통신에 사용되는 주파수의 사용 허가, 간섭과 혼선 방지 대책 등 적정성 검토 등에 수 개월 이상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뻔한데 아직 등록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 1분기 내 사업 시작이 가능하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링크가 내년 1분기 안에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면, 아마 일본에서처럼 현지 통신사업자를 통한 '재판매'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에서는 현지 기간통신 2위 사업자 KDDI를 공인 리셀러로 지정해 스타링크 키트를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재판매 사업자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진출한다면 기간통신사업자 신규 등록을 거칠 필요가 없어 빠른 서비스 개시가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재판매를 하더라도 스타링크라는 서비스 자체에 대해서는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스페이스엑스와 제휴하는 재판매 사업자, 즉 하드웨어 키트의 판매를 대행하고 요금 정산을 해줘야 하는 국내 사업자는 주로 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보호 정책과 안정적인 공급 능력, 서비스에 대한 분쟁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스페이스엑스는 이미 한국의 일부 사업자와 위성통신 테스트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링크, 국내 영향은?
우선 스타링크의 속도가 관건이다. 현재 상용 서비스 지역에서 스타링크의 일반 사용자는 최대 100Mbps(초당 100메가비트 전송)의 다운로드, 20Mbps의 업로드 속도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네트워크 속도를 측정하는 앱을 운영하는 업체 Ookla가 조사한 스타링크의 속도를 보자.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다운로드만 표시했다.
지난해부터 팰콘9 로켓이 정기적으로 발사되면서 저궤도에 깔리는 스타링크 위성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5G 이동통신망의 다운로드 속도는 최고 평균이 432.7Mbps다. 빨라졌다는 스타링크보다 4배 이상 빠른 셈.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오픈시그널이 지난 6월 조사한 수치다. 스타링크가 위성을 더욱 촘촘하게 띄워 궁극적으로는 최대 1Gbps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비약적인 속도 증가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이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인 비용. 가장 최근에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내의 잠재적 이용자가 스타링크 서비스에 큰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워 보인다. 스타링크 키트를 구매하는 초기비용도 문제지만 월 10만 원을 훌쩍 넘는 요금이면 국내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5G 서비스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쓰고도 남는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한참 떨어지는 것. 웬만한 '얼리 어답터'가 아니라면, 또 산간 도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타링크를 현실적인 인터넷 연결의 수단으로 선뜻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머스크는 왜?
2015년 머스크가 떠들썩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저궤도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가 화성에 이주했을 때 필요한 광대역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스타링크 위성의 안테나가 언젠가는 지구 궤도 밖을 향할 것이라는 거창한 계획의 시작을 알린 것이었지만, 인류의 화성 이주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다. 적어도 화성에 지구의 인터넷을 연결해야 할 필요성이 생길 때까지 머스크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 속도와 비용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예민한 우리에게 당장 스타링크가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머스크의 스타링크 사업은 꾸준히 '커버리지'를 확대하고, 한편으로 글로벌 이슈의 흐름에 훌쩍 올라타기도, 여차하면 가차없이 뛰어 내리기도 하면서 계속 뉴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관심 또한 머스크에게는 훌륭한 비즈니스 소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