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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떠들썩했던 감사원…문 정부 안보라인 겨눴다

"중간 발표, 피감사자 방어권 보장에 주의해야"

[취재파일] 떠들썩했던 감사원…문 정부 안보라인 겨눴다
2년 전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 관련 사건에 대한 처리 과정을 넉 달간 조사한 감사원 사무처는 모두 20명을 수사해달라며 어제(13일)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서와 참고 자료 등을 보냈습니다. 이 수사 요청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임명한 최재해 감사원장이 최종 결재했습니다. 최 원장이 결재한 20명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 핵심 안보라인이었습니다. 감사원 사무처 관계자는 "중대한 위법 행위가 발견돼 묵과할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서훈‧서주석‧박지원‧이인영‧서욱…안보 컨트롤타워 총체적 난국

서훈-박지원-서욱-이인영

감사원 사무처는 2년 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이대준 씨의 죽음을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서주석 전 1차장, 강건작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 3명이 수사 요청 대상입니다. 감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9월 22일 17시 18분 국방부로부터 이 씨가 서해상에서 발견된 정황을 보고 받았습니다. 당시 이 씨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응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최초 상황평가회의'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감사원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국가위기관리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합니다.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 정황도 일부 있었습니다. 국방부는 "통일부 소관"이라며, 통일부는 "국정원에서 추가 상황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는 명분으로 사건 초기 대응에 사실상 손을 놨다고 감사원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자세는 온 데 간 데 없었고 너무 안이했습니다. 감사원은 이러한 정황에 비춰 이들의 수사 요청서에 직무유기 등 죄명까지 적시한 겁니다.

국방부도 가세합니다. 국가안보실로부터 지시를 전달 받은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 씨 피살과 관련된 정보를 차단하고 나섰습니다. 직원으로 하여금 밈스(MIMS : 군사정보체계)에 올라온 관련 첩보 등 60건을 차단 또는 삭제하도록 한 겁니다. 서 전 장관 측은 관련 기밀을 제한되게 공유하자는 취지로 정보를 차단했을 뿐 기밀을 삭제하거나 없앤 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국정원 역시 23일 새벽 3시, 관련 자료 46건을 삭제한 정황이 감사 과정에서 포착됐습니다. 

이인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24일(목) 사건 인지 시점을 은폐(조작)하는 데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감사원 수사 요청 대상에 올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통일부가 최초로 인지한 시점은 22일 18시인데도 23일 01시로 수정해 국회 등에 보고했습니다. 이인영 전 장관이 23일 01시 관계장관회의에서 이를 인지했다는 이유라고 감사원은 보고 있습니다. 통일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려 꼼수를 썼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입니다. 감사원은 이인영 당시 장관이 이러한 과정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해경의 경우, 자진 월북 가능성이 낮은 자료 등은 의도적으로 제외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선박에 남겨진 슬리퍼가 이 씨의 것이라고 하거나, 이 씨가 도박에 돈을 탕진했다는 등의 내용도 발표했는데, 감사원은 이것만으로 월북 동기를 단정할 수 없음에도 해경이 사생활을 통해 자극적인 내용 등을 발표했다고 봤습니다. 실험 결과를 왜곡한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 등의 표류 예측 결과는 남서쪽으로 나왔는데, 이 씨가 인위적으로 노력을 해서 자진 월북했다고 몰아갔다는 겁니다. 자연 표류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러한 결과는 제외해달라고 해경은 요구한 것으로 감사원은 파악했습니다. 감사원은 조사 과정에서 한 해경 관계자로부터 "당시 해경청장이 핵심 증거들에 대해 '난 안 본 걸로 할게'라고 말했다"라는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안보실, 초기에 문 전 대통령 눈과 귀 막았나

감사원, 문재인 전 대통령

감사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유병호 총장 주도로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 조사를 추진하며 감사원의 정치 중립성 논란에 불을 붙여 놓고 왜 그랬을까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대준 씨 실종 신고 당일인 9월 22일(화) 최초 보고를 받은 건 18시 36분으로 파악됩니다. 감사원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청와대 내부망을 통해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를 실시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때 보고서 상신은 이뤄졌지만 문 전 대통령이 해당 보고서를 수신했는지 여부가 감사 과정에서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사원이 보기에는 문 전 대통령이 최초에 제대로 인지했는지 여부가 일단 불확실했던 상황입니다.

이후 국가안보실은 22일 밤 10시, 이 씨가 피살된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튿날인 23일(수) 새벽 1시에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도 문 전 대통령에게 이 씨의 피살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아침까지 추가 첩보 확인 후 보고할 테니 보안을 유지하라'고 회의참석자들에게 지침도 내렸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했지만, 새벽 5시에도 문 전 대통령이 보고받은 보고서에는 이 씨의 피살‧소각 사실이 또 누락됐습니다.

감사원은 문 전 대통령 서면 조사를 통해 이러한 정황들을 교차 확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무례하다"라고 반응해 조사는 불발됐습니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이 해당 사건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는 직접적인 정황이나 물증이 부족했기 때문에 감사원은 문 전 대통령을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다만, 감사원은 문 전 대통령이 이후 이 씨 피살과 시신 소각 사실을 보고 받은 후에도 '불확실하다'라는 취지로 언급했던 점에 비춰 검찰에 송부한 수사 참고 자료 또는 추가로 보낼 자료에 문 전 대통령의 연루 정황을 포함시킬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떠들썩한 감사원"…피감사자 방어권 보장에 주의해야


아시다시피 감사원의 수사 요청이 곧바로 검찰 수사 착수로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이미 검찰이 수사 중일 수도 있습니다). 감사원의 판단이 검찰 수사에 참고 요소는 될 수 있겠지만 아직 감사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감사 결과 보고서로 확정도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감사원 사무처의 수사 요청만으로 범죄 혐의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니까 피감사자들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라도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법조인들은 '감사원은 감사를 왜 저렇게 떠들썩하게 하느냐'라며 비판적인 반응도 보입니다. 떠들썩한 감사원과 달리 상대적으로 검찰은 조용하게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감사원 내부에서조차 "정치 검찰 얘기보다 정치 감사 얘기가 더 많이 들린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감사원의 감사 자료는 검찰 입장에서 새롭지 않거나 참고 자료 정도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제(13일) 검찰이 서욱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는 상당히 무르익었다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제 검찰 수사는 서욱 전 장관 윗선으로 볼 수 있는 당시 국가안보실을 겨냥하는 수순일 것입니다. 검찰은 의외로 꽁꽁 싸 매고 있습니다.
 

감사 이끈 유병호…감사원 내부 온도 차이

감사원-유병호

감사원 사무처는 서해 피격 사건 처리에 대해 지난 넉 달 간 감사를 하며 감사 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했습니다. 대상도 많고 범위도 방대해서입니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감사원 사무처와 감사위원들의 생각이 달랐고, 감사원 사무처 내부에서도 생각이 달랐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무리한 정치 감사'라는 외부의 시선이 감사원 내부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부담을 지우고 있는 건 사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미 감사원의 중립성이 논란이 돼 있는 만큼 그간 중립성이 곧 자부심이었던 사무처 일부 직원들의 불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여 가고 있습니다. 사무총장과 감사원장에게 직접 말을 꺼내기 어려울 뿐입니다.

감사위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원장의 결재를 거쳐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마찰이 있었다는 소문도 무성합니다. 감사원 사무처 입장에서는 중간 결과 발표, 관련 보도자료 배포는 감사위원회 의결 사항이나 사전 보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감사원 내규에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반면, 감사위원들의 생각은 또 다른 것으로 전해집니다. 감사위원들의 동의를 거쳐 중간 발표를 정하고 보도 자료 내용도 조절하자는 겁니다. 감사원장 권한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감사원 내규만을 근거로 감사위원의 존재를 무력하게 만든다면 감사위원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볼 멘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정치 감사 논란 속에 감사원 사무처는 결국 칼을 빼 들었습니다. 서해 피격 사건 당시 국가 위기 관리를 스스로 포기하다시피 했던 공무원 20명의 범죄 의심 행위를 국민들께 소상히 공개했습니다. 위법한 행위가 있다면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건 모든 국민들이 공감합니다. 국민적 의혹이 큰 사안이라는 점에도 많은 국민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다만 아직 감사위원회 의결 절차가 남아 있어 일부 사실 관계가 바뀔 여지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감안하고 봐야 합니다.

이번 감사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새벽에 관련 뉴스를 접한 뒤 상시 공직 감찰 형태로 최재해 원장의 결재를 받아 감사에 착수한 건입니다. 조직 내·외부에서는 누군가를 겨냥해 '감사원의 감사 기능이 특정 개인의 전유물은 아니다'라는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뜻은 알겠는데 방식이 너무 투박하다'라며 안타까워하는 의견도 들립니다. 모두 유병호 총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입니다. 유병호 총장은 왜 이런 쓴소리가 이어지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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