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더스페셜리스트] 때린 쪽이 더 아프다?…'제재'의 역설

요즘 유럽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상품, 바로 전기담요입니다.

폭등한 가스요금 때문이라는데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길을 막겠다며 서방이 제재를 가한 지 7개월.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유럽인들은 생활고에 아우성입니다.

정작 제재를 가한 쪽이 고통받는 상황,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서방은 러시아 경제가 곧 파국을 맞을 것이라 장담했지만,

[바이든/미국 대통령 : 푸틴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행위로 러시아는 경제적, 전략적으로 큰 비용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푸틴은 기세등등합니다.

올해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의 3배 수준, 사상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가뜩이나 국제 유가가 고공 행진 중이었는데, 세계 2위 수출국인 러시아를 죄니까 국제 유가는 더 올라갔고 러시아는 더 비싸게 석유를 판 것입니다.

그럼 제재를 했는데 어떻게 수출을 했을까요?

러시아산 49.9%, 다른 나라 것을 50.1% 이렇게 섞으면 러시아산이 절반 이하라서 형식적으로는 러시아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상표 갈이' 수출이 이어졌고, 미국 편을 들 리가 없는 중국, 또 실속을 챙기는 인도가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수십 배 늘렸습니다.

결국 올해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로 연간 3천억 달러, 약 387조 원을 벌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제재로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 총액 규모와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제재가 거의 무력화되는 셈이죠.

국제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는 조치도 효과가 떨어지게 됐습니다.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 대금의 일부를 루블화로 내도록 해서 폭락했던 루블화 가치도 서서히 정상화된 것입니다.

반복된 제재 속에 학습효과가 생긴 것도 이유입니다.

2014년 크름반도 강제합병 때도 EU는 러시아를 국제 결제망에서 퇴출시켰습니다.

그때부터 러시아는 자체 금융통신시스템을 만들었고, 가상자산 거래 비중을 늘리는 등 대비를 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신냉전, 그러니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느슨해진 제재 동맹이 한 이유입니다.

미국의 제재를 우려해서 러시아 군용 헬기 구매를 취소했던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최근에는 러시아산 원자재 수입,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러다 보니 제재의 역설, 비판도 나옵니다.

지난 100년간 174건의 경제 제재를 분석한 결과, 부분적이나마 효과가 난 경우는 3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정치인 석방, 인종 차별 철폐, 목표가 좀 구체적인 경우는 절반이 성공했고, 정권 교체나 민주화를 시도했을 때는 성공 가능성이 더 낮아졌습니다.

군사작전을 중단시키려 할 때는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단골 제재 대상국인 이란이나 북한도 결국 비핵화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를 그냥 둘 것이냐, 전쟁이 길어질수록 고민은 깊어집니다.

군사 제재는 경제 제재 이상의 비용이 많이 들고 시민의 희생도 크기 때문이죠.

결국 시간이 지나면 러시아 경제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철수하면서 실업률, 빈곤율이 오르고 있고, 마이너스 성장도 불가피합니다.

극한으로 치닫는 '치킨 게임' 양상 속에 전 세계 경제가 함께 침체되는 소모전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기획 : 정유미,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 신동환·김태훈, 영상편집 : 윤태호, CG : 임찬혁)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