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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집 나간 전어, 내년엔 돌아올 수 있을까

안 오른 식재료가 없는 요즘이다. 특히 유통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 사이에선 연일 배춧값이 기삿거리다. 추석 즈음 한 포기에 1만 7천~8천 원까지 올랐던 배추 가격은 9월 말이 되면서 조금 떨어졌지만, 지금도 시장에 가보면 한 통에 1만 원이 넘는다. 그나마 상태라도 실하면 좋으련만, 씨알은 작고 속은 썩거나 물렀다.

배추 가격 급등

이맘때 시장에 나오는 배추는 서늘한 강원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랭지 배추다. 지난여름 고랭지 배추 산지에는 더위가 빨리 찾아왔고, 비가 많이 내렸다. 세균성 전염병인 배추 무름병이 고랭지 배추 산지로 퍼졌는데, 병든 배추 품질은 떨어지고 수확량이 확 줄었다. 배추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마트도, 배추를 재료로 김치를 만들어 판매하는 포장김치 업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배추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춧값은 그야말로 '역대급'으로 뛰었다.
 
육지에서 배추가 '금(金)추'라면, 바다에선 전어가 품귀다. 제철 맞은 전어가 귀해져서, 요즘 킬로당 가격이 3만~3만 5천 원씩 한다. 예년보다 1만 원은 더 오른 가격이다. 국내 전어 주산지는 서해안이다. 생산량의 절반이 충남 서천과 그 주변 지역에서 나온다. 산지에서 가까운 충남 보령 무창포 해수욕장에서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전어 축제가 열리고 있다. 3년 만에 열린 반가운 축제 소식에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막상 전어 수급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없어서 비싼 거지, 일부러 비싸게 파는 게 아니에요"

전어_640

제철인데 전어가 왜 부족한 걸까? 산지로 전화를 걸어봤다. 
 
"전어 잡는 배들이 보통 소형 선박이 많은데, 올 8~9월에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조업 자체가 힘들었어요.
또 해수 온도가 올라가다 보니까 전어가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서 바다에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선박들은 조업하러 나가면 비용이 발생하거든요. 그만큼 가서 잡아 와야 하는데 못 잡고 조업해봐야 손실이니까
아예 안 나가버려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인 거죠". (산지 관계자)

최근까지 이어진 태풍의 영향,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어가 귀해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단에서 나오는 물건을 받아 유통하는 큰 업체들이 있어요.
업체들은 물량 확보 차원에서 전도금 형식으로 선단한테 돈을 지불하거든요.
그런데 현재 전어 시즌 중반에 왔는데, (전도금의) 10퍼센트도 회수가 안 될 만큼 물건이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다른 어종(숭어 등)을 잡거나, 도망가는 배들까지 있는 상황이죠". (산지 관계자)

정리해보면, 전어 물량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중간 유통업체들은 선단에 선급금의 개념으로 전도금을 보낸다. 그런데 전어가 너무 귀해서 어차피 바다에 나가봤자 잡히는 건 없고 기름값이나 그물값 같은 비용이 드니 선단이 아예 출항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중간 유통업체들은 전어 물량 회수가 안 되고, 미리 지급했던 돈만 날리게 된다. 바다 나갈 일이 없어진 선주들은 벌이가 없으니 고민하다 미리 받아 놓은 전도금을 챙겨 도망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을 전어 말고 여름 전어 되나

전어

한 일간지 기사("바다가 이상해져부렀어" 어민 한숨…가을 전어 '금전어' 됐다, 중앙일보)에 실린 어민 인터뷰를 보니 30년 전에는 11월 말까지도 전어를 많이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가을보다 오히려 여름에 전어가 더 잘 잡힌다. 한 대형마트는 지난달 말복 직후 햇전어 60만 톤을 확보해 할인 행사를 열면서, 수온이 상승해 난류성 어종인 전어 어장이 일찍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양식 전어가 유통되기는 하지만, 우리가 맛보는 전어는 기본적으로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다. 그래서 태풍, 바람, 기온 같은 자연 현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올가을, 11호 태풍 힌남노를 포함해 가을 태풍이 잇따라 한반도와 그 주변을 지나갔다. 이런 가을 태풍이 앞으로 더 자주, 더 세게 올 것이란 연구 결과가 있다. 전어가 사는 바다 생태계에 앞으로 더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어가 잡히지 않으면서, 요즘 산지 분위기는 매우 험악해졌다고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렸는데, 도망가는 배가 있을 만큼 지역 경제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우니 그 험악한 분위기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내년에도 가을 전어 맛보긴 쉽지 않아 보인다. 여름 전어라도 많이 잡히면 분위기가 좀 달라질까? 훌쩍 뛴 전어 가격만큼, 어민들이 느낄 답답함의 크기가 커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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