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혁신보다 기득권?"…20년 묵은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 무산될까

[취재파일] "혁신보다는 기득권"…20년 묶은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 또 무산되나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 법사위 상정 또 불발


특허청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 전문가로서 특허청장이 된 이인실 특허청장은 지난달 18일 출범 100일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지식재산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기술패권시대에 혁신을 통해 국가 기술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하려면 지식재산분야의 선진화가 필요한데, 지식재산분야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특허침해소송에서 기술분야에 밝은 변리사가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서 소송을 대리할 수 있도록 변리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7번째로 우주선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는데 대한민국의 우주분야 특허출원도 세계 7위라면서, 특허출원 순위는 한 국가의 기술과 경제발전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7년까지 5년 안에 일본을 제치고 대한민국을 특허출원 글로벌 3위 국가로 도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허 출원이 1% 증가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0.65% 증가한다며, 지식재산분야의 도약을 통해 경제성장률도 0.16%p 더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인실 특허청장이 이뤄내겠다고 다짐한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는 또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지난 5월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겨진 변리사법개정안은 지난 6일 법사위 심의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변리사들의 특허침해소송 공동대리를 촉구하고 있는 대한변리사회는 오는 10월 말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면 법사위 심의 안건에 올라가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지만 상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 법안 발의경과

지난 2020년 11월 변리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 등 14명은 "현행법에 따르면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심결취소소송이나 권리범위 확인소송과 달리 민사법원에서 이뤄지는 특허침해소송 등에서는 법률 해석상의 차이로 소송 대리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에서 소송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변리사는 소송에서의 역할에 한계가 있으며 이는 소송당사자의 효과적인 권리구제에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변리사로 하여금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민사법원에서의 소송에 대하여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법률을 명확히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호사들의 모임인 대한변호사협회는 "특허침해소송 대리는 소송의 제기부터 변론, 판결선고 이후 상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포함하는 포괄적 대리행위로써 단지 기술적 전문성 만을 가진 변리사가 이 같은 포괄적 소송대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무모한 입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변리사법 개정안은 현행 변호사법과 변리사법, 민사소송법 등의 상호 체계 정합성을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는 국내 민사법체계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위헌·위법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를 허용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법원의 지식재산권 민사사건 평균 심리 기간 (자료 : 대한변리사회)

일본은 변호사의 기술적 대응 부족을 특허침해소송 지연의 원인으로 보고 지난 2003년부터 변리사들도 변호사와 함께 특허침해 소송 대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허의 무효 여부가 특허침해소송에서 가장 중요한데, 고도의 기술적 사항을 심의하는 특허의 유무효를 따지기 위해서는 변리사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본은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를 허용한 이후 특허 등 지식재산권 소송의 평균 심리 기간이 25개월에서 15개월로 10개월 단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변리사의 특허침해 소송 대리 필요성이 제기되자 지난 2006년 11월 당시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최철국 의원 등 12명은 특허침해소송에 대해 변리사와 변호사가 공동 대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변리사법 개정안은 소관 산업자원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변호사협회 등의 반대로 법사위원회에서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대리 허용을 골자로 한 변리사법 개정안은 19대와 20대 국회에서도 잇따라 발의됐지만,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지난 5월12일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를 통과해 세 번째 법사위 심사를 타진하고 있지만 변호사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대부분인 법제사법의원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법사위 법안 심사 편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심의는 소속 상임위에서 정책적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거친 법안에 대해 법안의 체계와 자구 심사만을 하도록 국회 편람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 변리사법 개정안처럼 사회적 갈등이 있는 법안들에 대해서는 정무적 판단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반대하는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리사 공동소송 대리는 선택권 확대"…KIPJA 특허소송 선진화 콘퍼런스


특허, 디자인, 상표, 영업비밀, 저작권 등 지식재산에 관심이 있는 전현직 언론인들의 모임인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Korea Intellectual Property Journalist Association)는 지난달 30일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MIP)과 함께 '특허소송제도 선진화 방안'에 대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지식재산 관련단체와 기업의 지식재산 담당자, 학계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특허소송을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증거와 과학적 논리에 입각한 재판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참여와 증거 수집을 위한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조발제에 나선 최현정 대한변리사회 공보이사는 "특허침해 소송의 주요 쟁점은 심결취소소송과 동일한 데도 우리나라에서 변리사에게는 심결취소소송의 대리는 허용하고, 특허침해소송의 대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이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불허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단독 대리와 기술 판사 도입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유럽통합특허법원(Unified Patent Court)을 내년 출범한다. 유럽에서도 한때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노키아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37개 지식재산기업연합이 '특허 경험이 부족한 일반 변호사보다 변리사의 소송 수행 능력이 월등하다.'고 주장해 결국 변리사의 소송 대리가 허용됐다. 영국은 1990년대부터 실시한 수요자 위주의 사법개혁에서 변리사의 특허소송대리 권한을 확대해 소송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개인과 중소기업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 허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기조 발제자인 전희정 대한변호사협회 특허변호사회 이사는 "특허침해소송은 법률 전반에 대한 전문지식과 종합적인 법 해석 능력이 요구되는 전형적인 민사소송으로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만이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 기술적 전문성 만을 가진 변리사가 포괄적 소송대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무모한 입법이다. 현행법에 마련된 '전문심리위원' 제도가 변리사의 진술권 및 의견 개시 방법을 보장하고 있고, 재판부도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신중히 판단하고 있다. 복잡한 기술 이슈는 변론 기일을 활용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사실인정 영역에서도 '변호사와 기술전문가의 협업'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 허용에 반대 의시를 밝혔다.

이에 대해 정차호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변리사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소송에 참여하는 것과 대리인으로 참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전문가는 제3자로 객관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지만, 대리인은 의뢰인을 위해 싸워주는 사람이다. 지금도 변리사가 특허 소송에 참여하는데, 소송에 참여하면서도 대리인으로 이름을 못 올리는 것은 윤리적이지도 않다. 특허소송을 하게 되면 의뢰인들은 변리사를 먼저 찾고, 변호사를 나중에 찾는다. 공동소송대리가 허용되면 변리사가 변호사를 추천하거나 선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대형 로펌 변호사보다는 실력 있는 중견 변호사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대형 로펌은 반대하더라도 중견 변호사들은 찬성해야 하는 사안이다."라며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 주최 '특허소송 선진화 방안' 웨비나

기업들이 모여 지식재산분야의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한국지식재산협회(KINPA: Korea Intellectual Property Association)의 이용관 사무국장은 콘퍼런스에서 "특허침해 소송에 대한 변리사의 공동 대리 방안은 강제가 아닌 수요자의 선택적 사항이다.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으로 원론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용관 사무국장은 "대리인 선임은 소송 비용과 시간, 합리적 결과 측면에서 누가 더 조력자로 적합한 가의 문제이다. 특허소송은 기술적 요소나 전문성이 중요하다. 소송법 관련 이론이나 실무에 밝은 변호사와 특허나 기술적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 변리사가 서로 도와 윈-윈 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바람직한 제도라고 본다. 변리사의 단독 소송 대리도 아니고 공동대리인만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4천여 명의 지식재산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지식재산네트워크(IPMS) 노경섭 운영위원은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 허용 여부 논의의 핵심은 법률 소비자의 입장이 돼야 한다.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 지금도 현장에서는 변리사가 뒤에서 조언을 하는 방식으로 소송에 참여한다. 기업입장에서 특허침해소송은 기술의 영역이라 변리사가 필요하다. 일본이나 유럽도 변리사의 특허침해 소송 대리를 허용한다. 변리사의 특허침해 소송 대리는 세계적인 추세다. 이런 움직임은 특허 소송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에 따른 공정한 재판 위해 '미국식 디스커버리제도' 도입 시급"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 도입에 대해 기조발제에 나선 전희정 변협 특허변호사회 이사(법무법인 희승 변호사)는 "특허소송은 증거가 원고와 피고는 물론 제3자에게 있다. 소송의 결과가 제3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커서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한 정확한 재판을 하기 위해 미국식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를 도입해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자동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 대웅제약의 메디톡스 소송 등 점점 더 많은 우리기업 간 특허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되는 것도 미국에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특허법도 증거수집을 위해 자료제출명령제도와 구체적 행위 태양 제시 의무 등 일부 디스커버리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자료의 소지를 부인하거나 자료를 인멸, 훼손 또는 허위로 제출할 경우 확인하고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미국식 디스커버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경섭 지식재산네트워크(IPMS) 운영위원은 "디스커버리가 없다면 미국의 소송 제도는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디스커버리를 통해 불법행위 사실을 입증하고, 실제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디스커버리를 시행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라고 말했다.

이용관 한국지식재산협회(KINPA) 사무국장은 "반도체 소재나 장비업체를 중심으로 미국식 디스커버리제도의 조기 도입에 대한 우려가 크다. 부품이나 소재, 장비업체들의 국제적인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디스커버리제도를 시행할 경우 국내 기업에 대한 소송이 빈발하고,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피고가 될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우려도 크다."며 미국식 디스커버리제도 도입에 앞서 심도 있는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P 선진국현황

'고비용 저효율' 대한민국 법조계…"기득권 내려놓고 혁신해야"


지난 2월22일 대한변호사협회 주관으로 열린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방향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김원근 미국 변호사는 "대한민국의 재판 제도에 익숙해진 한국의 변호사들은 국제사회에서 설 땅이 없다."며, 본격 재판에 앞서 소송 당사자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식 디스커버리제도의 도입을 역설했다.

김원근 변호사는 "한국의 증거수집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제도는 판사가 주도하는 한국과 달리 원고와 피고 양측의 변호사 주도로 이뤄진다. 양측이 자유롭게 증거를 교환하고, 서로 다툼이 있을 경우에만 판사가 개입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소송에서 패소하고, 변호사 면허가 취소되는 엄중한 처벌이 뒤따른다. 미국식 디스커버리제도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내야 하는 법원 공탁금과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소송에서 패소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비용을 모두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죄를 지은 사람이 소송에 나서지 못하게 하고, 선량한 피해자의 부담은 줄인다. 1심에서 모든 증거를 내놓고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끝내는 만큼 재판을 효율적으로 하고, 불필요한 항소와 소송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한국의 소송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특허소송 손해배상 건수와 배상액 (자료 : Lex Machina, 수수료 이자 제외)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 '특허소송 선진화 콘퍼런스'의 사회를 맡은 카이스트(KAIST) 지식재산대학원 박성필 교수는 "특허소송 선진화 방안에 대해 원고와 피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형 로펌과 중소 로펌 사이에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시장과 수요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 서로 공감하는 영역도 많았다. 다국적 기업이 점점 더 많아지는 국제화 시대에 한국 사법 제도가 선진화하고 한국에 가면 공정하고 정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확산하면, 한국의 법률시장이 확대되니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법률서비스 시장이 선진화 되면 관련 서비스업이 발전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질 것이다. 반면 제도가 시대 발전에 따르지 못하면 한국의 법조계는 도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중요하고, 대한민국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사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혁신'을 이뤄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 있다.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은 사회적 신뢰, 혁신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특정 계층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사법제도에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 볼 일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