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폴란드 후속 계약도 희망적…10월 폴란드 전차병들 온다

지난달 27일 폴란드에서 현대로템의 K2 전차와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 그리고 한국항공우주의 FA-50 경공격기 등 K 방산 총괄 합의(framework agreement) 체결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습니다. 알맹이 없는 가계약인 데다 폴란드가 구매하겠다는 K-무기의 가격만 따져도 최대 40조 원에 달합니다. 어지간한 국가의 1년 국방비입니다. 아무리 러시아라는 대형 안보 위협을 감안해도 폴란드의 경제 규모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컸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간 그제(27일) 새벽 1시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가 폴란드 정부와 구속력 있는 1차 이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K2 전차 180대와 K9 자주포 212문을 합쳐서 57억 6천만 달러 상당입니다. 우리 돈 7조 7천억 원으로 현대로템 몫이 4조 5천억 원, 한화디펜스 몫이 3조 2천억 원입니다. K2의 경우 첫 수출인데 1차 계약만으로 한국 방산 단일 수출 최고액의 기록을 깼습니다.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 그리고 국방부, 방사청의 공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출 성사의 경우 음지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국가안보실입니다. 인수위 때부터 폴란드 K-방산 수출을 재촉해 초고속 수주의 성과를 이끌었습니다. 안보실과 국방부, 업계에서 2차 이행 계약도 희망적이라는 전망이 일제히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방산 수출 순위에 일대 지각변동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우리 국방부와 방사청은 1차 이행 계약의 대체적 내용만 밝혔는데 폴란드 국방부는 상세 내역을 즉각 공개했습니다. 폴란드 국방부는 "K2 180대와 K9 212문 등 1차 물량 중 K2 10대와 K9 24문은 연내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K-기갑전력의 신속한 실전배치를 꾀하는 것입니다.

폴란드의 적극성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폴란드 국방부는 "오는 10월 전차병들을 한국 육군에 파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K2 전차 운용 훈련을 받기 위한 조치입니다. 폴란드 국방부는 "한국에서 훈련을 받고 귀국하면 K2 전차는 이미 폴란드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현대로템 공시에 따르면 K2 전차 180대의 이행 계약 기간은 2022~2027년입니다. K9 자주포 212문의 이행 계약 기간은 2022~2026년입니다. 이 기간 해당 물량 전체와 함께 교육훈련, 보급 패키티, 탄약 등도 폴란드에 유상 제공됩니다.
폴란드 국방부는 벌써 2차 이행 계약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국방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6년부터 K2PL 전차 820대의 양산이 시작됩니다. K2PL은 K2의 폴란드 현지 생산 버전입니다. 이번에 계약한 180대의 K2와 별도의 물량입니다. 후속 군수지원까지 합치면 현대 로템은 짧게 잡아도 10년 치 먹거리를 확보했습니다. 폴란드 국방부는 "장기적으로 폴란드-한국이 차세대 전차를 공동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K9 자주포는 총괄 합의와 1차 이행 계약 사이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차 물량이 48대에서 212대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2차 물량과 양산 일정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1차 48대의 당초 계획이라며 2023년까지 국내 생산분을 수출하고, 2024년부터 2차에 진입하는데 1차가 212대로 늘어남에 따라 2차 계획 개시 시점은 2026년 전후로 늦춰집니다. 폴란드 국방부는 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K9 전체 도입량도 648문인지 672문인지 다소 혼란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K2와 K9 모두 2차 이행 계약 체결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입니다. 모 방산업체 고위 관계자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2차 이행 계약을 위한 협상을 한다", "대략적 윤곽은 벌써 확정됐기 때문에 협상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상반기만 해도 우려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단히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2차 계약 체결도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평가했습니다. 안보실 핵심 관계자는 "2차 성사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우스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은 1차 이행 계약 체결식 당일 "석 달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협상을 시작했고, 두 달 전 나토 정상회담에서 대통령들끼리 협력을 논의했으며, 한 달 전 총괄 합의에 서명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행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형 무기 판매에서 이런 수준의 속도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많은 이들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입니다.

해당 업체들은 물론이고 국방부, 방사청이 전면적으로 뛰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 총괄 합의 때와 이번 1차 이행 계약 체결식 때 업체 대표들과 국방부 전력자원실장, 방사청 고위직들이 현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뒤에는 국가안보실이 묵직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폴란드 K-방산 수출을 중요 아젠다로 올리고 업체와 국방부, 방사청을 독려해 조기 수출을 추진한 것입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폴란드 수출을 지원했다", "나토 정상회담에서 폴란드 수출을 주요 의제로 올려 정상끼리 대강의 합의를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이 비판을 많이 받고 있지만 국가안보실의 국방 부문은 제 몫을 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