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정쟁 한복판에서 드러난 감사원의 집안싸움

명분도 실리도 다 잃어간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어제(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실세' 유병호 사무총장에 대해 특별감찰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 질의에 답을 하다 언급된 내용입니다. '실세가 감찰을 받게 됐다'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감사원 내부는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고 종일 술렁였습니다. 중립성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곪고 곪았던 내부 갈등마저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터질 게 터졌다"

어제 국회 생중계를 지켜본 한 간부는 "민낯이 드러났다"라는 관전평을 내놨습니다. 바깥에서 정치 중립성 논란으로 시달리는데 집안싸움마저 공개되자 "자꾸 이러니까 (감사원이) 욕먹는 거다"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습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어떻게 하다 감사원의 특별감찰을 받는 상황이 발생했을까요. 유병호 총장이 행동강령을 위반했다는 의혹의 발단은 감사원 내부 신고입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사진=감사원 제공, 연합뉴스)

유병호 총장은 취임 이후 확대간부회의 등에서 여러 차례 감사원 내 '악폐'를 청산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갈등 관계에 있던 감사원 K 과장 등 5명을 지난달(7월) 초 직위해제 하고 이들에 대한 감찰을 벌이고 있습니다. 감찰 명분은 기획재정부에 대한 봐주기 감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밝히겠다는 겁니다. K 과장 등은 PC 등에 대한 포렌식 절차까지 진행되자 변호인을 선임했고 억울하다며 최재해 원장 등에 일종의 SOS 면담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은 결국 최근 유 총장에 대한 행동강령 위반 의혹을 제기하며 감찰 카드를 꺼냈습니다. 유병호 총장의 감찰에 뿔난 K 과장이 감찰로 맞불을 놓은 셈입니다. 보기에 안타까운 집안 싸움입니다.

최근 불거지는 중립성 논란에 대해 감사원 내부에서는 "정치권이 너무 흔든다"라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이런 집안싸움만 놓고 보면 감사원이 정치권을 탓할 입장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내부 갈등은 최재형 감사원장 시절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감사 때부터 내부 이견이 생기며 갈등이 침전물처럼 급속도로 쌓여왔고 그러다 결국 다른 감사 사안으로까지 전이돼 터질 게 터진 것입니다. 단지, 유병호 총장의 의욕이 앞서는 바람에 그리고 본인과 대척점에 있던 K 과장이라는 인물을 감찰 타깃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조금 이른 시점에 터졌을 뿐입니다. 물론, 감사원 감찰담당관실이 '실세' 사무총장을 상대로 형식적인 감찰을 진행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는 합니다. '우리 (유병호) 총장님 무서워'라는 얘기는 이제 감사원 직원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내는 소재입니다.
 

'서열 1·2위' 최재해·유병호 불화설?

최재해 감사원장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내부 잡음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재해 원장이 국회에서 유 총장에 대한 특별감찰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걸 두고서도 뒷말이 많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서열 1위가 왜 굳이 서열 2위에 대한 감찰 사실을 인정했느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때 떠돌았던 '감사원장 패싱설'을 다시 소환하기도 합니다.

"감사원장께서 안 보이십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만 보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감사원장 패싱이 아닌가…"

지난달 13일, 감사원을 항의 방문했던 박범계 의원의 첫 마디였습니다. 유병호 총장이 차관급인 사무총장직에 파격 발탁되며 세간의 이목이 유 총장에게 집중되자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감사원장 패싱설'이 제기됐습니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채 '최재해 원장과 유병호 총장의 불화설'도 함께 떠돌았습니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서열 2위가 잠시 부각됐을 뿐인데 그렇다고 서열 1위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건 논리적으로 너무 건너뛰는 것 아니냐"라거나 "사무총장 성격상 잡음이 생겼으면 벌써 외부로 알려졌을 것이다. 두 분 사이에 잡음은 들어본 적이 없다"라며 패싱설이나 불화설을 일축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동시에 "두 분은 오래 같이 근무해서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안다. 장단점을 잘 아는 만큼 아직까지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걸로 안다"라며 최 원장과 유 총장의 갈등설에 대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 않고 다소 중립적으로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소문만 무성한 상태라,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러한 의혹이 설(說)을 뛰어넘을 만한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패싱설, 불화설은 내부 잡음이라기보다 내부에 잡음이 있을 거라고 판단하는 외부의 (합리적) 의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병호 "속도와 타이밍"…명분과 실리 챙겨야

감사원

감사원은 오늘(23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하반기 감사 안건들을 최종 확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는 또 한번 정국을 강타할 안건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시행된 통계 조사의 정확성 논란 관련 안건과 탈원전 정책 관련 안건(탄소 중립 등)이 그렇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때 빚어졌던 백신과 마스크 수급 부족 문제 관련 안건도 의결돼 감사원이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병호 사무총장도 감사위원회에 직접 출석해 여러 안건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도 진술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사원이 중립성 논란과 내부 갈등에도 감사를 이어가겠다는 명분은 "대한민국 공직 사회 곳곳을 진단하고 개선해 나가겠다"라는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 때문입니다. 평가는 어떨까요. 냉정합니다. 피감 기관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적발해 조사하는 감사원에 대해 '잘 하고 있다'는 후한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현 정부 감사원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문재인 정부 당시 불거졌던 의혹과 그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감사 : 일명 '코드 감사', '표적 감사'>라는 비판으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으로 하여금 감사원 감사에 반대할 명분만 잔뜩 안겨주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감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부 감사에는 보다 구체화된 명분,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까지는 명분 싸움에서 밀리는 모양새입니다.

감사에 착수하는 시점(타이밍)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꼭 지금 이 시점에 나섰어야 했는가'라는 평가가 이어질수록 감사는 힘을 잃고 부차적 논란만 야기할 뿐입니다. 특히 감사원이 집안 싸움 중일 때는 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감사의 동력이 자칫 꺾일 우려도 있습니다. 유병호 총장은 지난 6월 중순 취임식에서 감사와 관련된 '속도와 타이밍'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꼭 빨라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속도와 타이밍이 빨라야 한다는 데 함몰되면 자칫 감사의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우 유병호 총장이 취임한 지 두 달을 조금 넘긴 시점입니다. 무작정 빠른 스트라이크보다 느린 변화구가 정답일 때도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