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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가 아니라…'타인을 듣는 시간' [북적북적]

그저 우리가 아니라…'타인을 듣는 시간'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52: 그저 우리가 아니라…'타인을 듣는 시간'
  
'당신의 삶은 이러이러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라고 추측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단편적으로 노출된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부분을 알아보았다면, 그리하여 그의 삶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우선은 그 삶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그때까지의 나의 이야기, 그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나의 맥락은 잠시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이해, 혹은 찾아가기'에서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어가니 종종 접하게 됩니다. 출처가 어디라고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유태인 속담이라는 것 같습니다.(탈무드일까요?) 이 말이 자주 언급되는 건 저처럼 (어느 정도나 그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이 그러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어린 사람들이) 바라는 바일 수도 있겠습니다. 말 많은 것도 못 참을 지경인데 거기에 인색하기까지 하면 최악이다, 그런 말이겠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입을 닫고 지갑을 열면서 이와 함께 귀도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듣는 행위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특히 기자는 물론, PD들도 그렇습니다. 오늘의 책은 다큐멘터리 PD이자, 번역가, 그리고 책도 쓰는 김현우 작가의 <타인을 듣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버림으로써 우리가 탄생하는 자리에 이 귀한 책이 놓여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타인을 만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우리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김숨(소설가), <추천의 말>에서
 
이 책은 작가가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제작기면서 또한 논픽션 책들에 대한 서평이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와 그 책을 보거나 읽지 않았더라도 글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본 것 같은 기분과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 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재인용
 
"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세계에서는 같은 언어도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런 까닭에 타인과 나를 묶어서 함부로 '우리'라고 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이런 깨달음이 오웰을 전사로 만들었다... 나는 그런 깨달음이 곧장 선명한 정치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에 회의적이다. 다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해 보자면,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언어를 익힘으로써 나의 언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알아가는 그 과정이 성장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컨테이너선에서의 만남'에서
 
찬찬히 읽노라니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타인의 언어를 익힘으로써 나의 언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알아 가는 그 과정이 성장..."이라는 말, 새삼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고백건대 '요즘 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뭐든지 줄여버리는 트렌드는 어색하고 조금은 촌스럽다고 느끼는데 그런 제가 촌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시대를 못 쫓아가는 것이기도 하겠죠. 혹은 저는 표준말을 쓰고 어법에 맞게 문장을 써야 하는 기자이니 유행이라도 '틀린 말'을 쓸 건 아니라고 합리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럼으로써 그 말을 쓰는 이들과 은연중에 더욱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중의 커다란 한 가지를 포기해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예 난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또 그게 가능한 삶이라면 이 책에서도 말하는 '편안한 삶', 스스로 느끼기엔 알량하더라도 '권력이 있는 삶'일 수 있으니까요. 
 
"'연대'는 타인을 이해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그들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타인의 존재를, 그이의 고유한 세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이해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타인의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탓해야 할 것은 타인이 지닌 낯선 특징이 아니라 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편협함은 둔감한 사람, 혹은 둔감해도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혼돈'에서
 
"환대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에게 미리 적대적인 마음을 갖지 않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환대는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우선 타인에게 '당신을 해칠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피닉스의 경전철 안에서 조와, 나와,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노동자들은 서로를 환대하였고, 서로의 언어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서로를 도와주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단어에 굶주려 있었을지도 모르는 우리들 각자의 경험은, 그 순간만큼은 배고프지 않았다."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혼돈'에서
 
타인을 듣는다는 건, 그 타인이 누구인지부터 규정하는 게 먼저여야 할 정도로 간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평생 함께 살아온 부모나 배우자, 자식 또한 서로 온전히 이해지 못하고 멀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하물며 저마다 다른 입장과 기반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불가능한 미션에 저는, 당신은, 그들은 늘 도전하고 응전하며 대개 패배하거나 국지전의 짧은 승리를 맛보고 다시 시작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분명 작가가 만든 다큐도 보고 싶어질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출판사 반비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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