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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0라운드 99번'에서 두산 주전 외야수까지…안권수의 인생 이야기

[취재파일] '10라운드 99번'에서 두산 주전 외야수까지…안권수의 인생 이야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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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영 선수에서 야구 선수로

일본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난 안권수가 처음 접한 운동은 수영이었습니다. 실력도 좋았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소년체전에까지 참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안권수가 진짜 하고 싶은 운동은 따로 있었습니다. 도쿄돔 근처에 살았기에 가족들과 자주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가곤 했던 안권수는 '고질라' 마츠이 히데키에 매료됐고, 야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안권수

"저는 솔직히 어릴 때부터 계속 야구가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제가 수영을 너무 잘하는 거예요. 빨리 수영을 그만두고 싶어서 부모님들한테 말씀드렸는데, 메달을 따면 그만둬도 된다고 해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50m 자유형 은메달을 따고 나서야 수영을 그만둘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안권수는 자신보다 먼저 시작한 동기들을 빠르게 따라잡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으로 단련된 근육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와 송구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발이 늦은 탓에 결국 포기해야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어렸을 땐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가 투수를 하잖아요. 저는 근데 야구를 늦게 시작해서 외야수밖에 못해서 힘들었어요. 외야수에 다른 잘하는 선수가 있으면 제가 뛸 자리가 없어지니까.. 그런 부분이 좀 힘들었습니다. 3루수가 멋있어서 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해봤습니다 (웃음)"

 

2. '팔굽혀펴기 왕자'의 탄생

시간이 갈수록 안권수의 야구 실력은 빠르게 늘어갔습니다. '손수건 왕자'로 유명한 사이토 유키가 나온 야구 명문 와세다실업고에 진학한 것도 모자라, 1학년 때부터 주전을 꿰찼으니 안권수가 얼마나 전도유망한 선수였는지 알만합니다. 모든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의 꿈인 고시엔에서의 추억은 여전히 안권수의 눈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주제였습니다.

"고등학생때는 야구를 잘했습니다 (웃음) 그런데 고시엔에서는 좀 힘들었습니다. 위장염 때문에 병원에서 누워있다가 시합을 나갔었거든요."

하지만, 안권수는 경기에선 펄펄 날았습니다. 15타수 6안타로 맹타를 휘두르며 고시엔 무대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이런 안권수의 활약에는 독특한(?) 비결이 있었는데, 바로 매 타석에 들어서기 전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역예선을 하기 전에 감이 너무 안 좋아서 계속 고민을 했거든요. 근데, 중학생 때 코치님이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하면 방망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 게 생각난 거예요. 그래서 한 번 해봤는데 결과가 좋아서 계속 하게 됐습니다."

'팔굽혀펴기 왕자'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그 나름의 유명세를 떨쳤던 안권수를 다시 고시엔 무대에서 볼 수는 없었습니다. 고3 시절 서도쿄 지역예선에서 타율 0.573으로 맹타를 휘둘렀지만, 결승전에서 그해 고시엔 우승팀인 니치다이상고를 만나 분패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고교 시절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야구 명문 와세다대학교에 무사히 진학하게 된 안권수에게 남은 야구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습니다.

 

3. 야구선수에서 회사원으로

1학년때부터 와세다-게이오 정기전과 도쿄6대학리그에 나설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안권수는 돌연 야구를 그만둡니다. 안권수는 담백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냥 재미가 없었던 거죠. 야구가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야구하고 싶어서 와세다대학을 갔던 건데 선후배간의 문제도 있었고, 야구 말고도 다른 해야할 것들이 많더라고요. 거기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도 컸습니다. 지금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는 유격수 모기 에이고로 선수가 저랑 동기인데, 그 선수가 야구하는 모습을 보면 '아, 못 이기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안권수는 끝내 야구라는 끈을 놓지 못했습니다. 클럽팀 활동을 시작으로 배트를 다시 잡은 안권수는 2013년 독립리그 생활을 시작하며 '프로 선수'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와 무사시 히트 베어스 팀에서 뛰며 돋보이는 성적을 냈고, 일본 프로야구 NPB에 드래프트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성적이 너무 안 나왔어요. 3학년 때는 학업이랑 야구를 같이 했었고, 4학년 때 잘 했어야 했는데… 신고 선수로도 갈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요.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장 야구로 밥벌이를 하기 힘들어진 안권수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습니다. 안권수는 카나플렉스라는 건축회사에 입사해 사회인 야구 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4년 동안 낮에는 회사원으로서 일을 하고, 이후 남는 시간에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데이터 입력하는 일을 했어요. 보통 야구선수 출신들은 공장에서 뭘 만든다거나 하는 단순 업무를 많이 하는데, 저는 회사 업무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주로 컴퓨터 앞에서 일을 했습니다. 좀 특이한 케이스이긴 했어요."
 

4. 생각지 못한 기회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점점 희미해질 때쯤, 안권수에게 생각지 못한 기회 아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한국 프로야구 KBO에 도전할 찬스가 생긴 겁니다.

"독립리그에서 운동할 때 같은 팀에서 뛰었던 한국인 후배가 있었는데, 걔가 KBO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을 알아보고 있다는 거예요. 걔한테 몇 가지 물어봤는데, 저도 한국인이니까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트라이아웃에 신청하게 됐어요."

2019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안권수

국적은 한국이었지만, 재일교포로 태어나 일본에서만 자란 탓에 인사말 몇 마디를 빼면 한국어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안권수에게 KBO 트라이아웃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안권수는 과감히 나섰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할 트라이아웃에서 정작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트라이아웃 한 달 전에 옆구리가 찢어져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했거든요. 트라이아웃 하는 날이 왔고, 어쩔 수 없이 하긴 했는데.. 배팅이랑 수비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주루하다가 결국 아파서 넘어져버렸습니다. 아, 이것도 내 운이다 싶더라고요."

며칠 뒤 열린 2020 신인 드래프트 지명에서 안권수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래프트 당일, 카나플렉스 야구팀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던 안권수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관광 삼아 겸사겸사 한국에 간 김에 드래프트장에 가셨던 거 같아요. 전화로 아버지가 제가 두산에 지명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2020년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 10라운드 99번.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이름이 불린 안권수의 한국생활은 그렇게 극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두산 안권수

 

5. "홈런 하나 치고 싶습니다"

입단 후 첫 두 해 동안 주로 대주자와 대수비로 1군 경기에 나섰던 안권수는 올해 마침내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월 4일까지 72경기에 나서 타율 0.304를 기록하며 고감도 컨택 능력을 과시하고 있고, 수비에서도 보살 5개를 기록하며 확실한 주전 외야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팬들의 뜨거운 육성응원을 들으면 한국에 온 것이 실감 난다는 안권수는 곧 한국에 와 자신이 야구장에서 뛰는 모습을 지켜볼 아내를 생각하며 더욱 힘을 내고 있습니다.

안권수

"규정타석을 꼭 채우고 싶고, 타율은 3할 3푼 정도 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홈런 많이 쳤는데 아직 홈런이 없어서.. 홈런도 일단 하나 치고 싶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거의 한 마디도 못했다던 그의 한국어 실력은 2년여 만에 몰라보게 늘어있었습니다. 스무 살 남짓한 어린 동기들과 부대끼며 야구와, 그리고 익숙지 않은 환경과 열심히 싸워왔을 그의 한국 생활이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 살.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처럼, 안권수의 야구 인생도 그러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10라운드의 기적…문성주 · 안권수의 인생역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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