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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벼랑 끝 전술'의 북한, 2022년의 생존 전략

[취재파일] '벼랑 끝 전술'의 북한, 2022년의 생존 전략
해외에서 북한 인사를 만난 사람이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왜 항상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거요?"

북한 인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번도 벼랑 끝에 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항상 벼랑 끝에 서 있었고 자칫 잘못하면 벼랑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북한 인사의 이 같은 답변은 국제사회의 이단아로 살아오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적절히 대변합니다. 국제사회의 규범을 무시하고 미국과 대치하며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고 있는 북한인만큼, 매 순간순간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인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김일성 일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핵 개발을 추진하고 인권을 유린하면서 초래된 것이지만, 2500만 북한 동포의 운명이 김일성 일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도 현실인 만큼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

벼랑 끝 전술, 현실적 대응 가능하게 하기도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그러나 철저한 현실주의적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벼랑에서 떨어져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정세가 유리할 때는 강압적으로 나오다가 정세가 불리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주변 정세에 맞춰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북한의 변신은 혈맹이라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됩니다. 중국이 북한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후원자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말을 항상 고분고분하게 잘 듣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도 감수하고 중국이 뭐라 하든 북한의 길을 가기도 합니다. 중국과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지만,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만큼, 때로는 중국과 냉랭한 관계를 감수하기도 합니다. 이 또한 북한판 '벼랑 끝 전술'의 일환입니다.

북, 중국 러시아에 부쩍 밀착

이런 북한이 요즘 중국과 러시아에 부쩍 밀착하고 있습니다.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에 중국이 민감하게 나오자, 미국이 '파렴치한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며 즉각적으로 중국을 거들었고, 리영길 국방상은 중국군 창건일을 맞아 중국 국방부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북한군과 중국군 간 '전략전술적 협동작전'을 강조했습니다. 전략적 차원에서 또 전술적 차원에서 북중 간 군사협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말인데, 앞으로 북중 합동훈련 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이밖에도 올 들어 북중 간 우호는 여러 층위에서 더욱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밀월 수준입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유엔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반대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공화국들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반대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포함해 5개 나라뿐이었고, 돈바스 친러 공화국들을 인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러시아와 시리아를 제외하고 북한뿐입니다. 전 세계 왕따 국가들의 대열에 당당히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탄두 살펴보는 북한 김정은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현실적인 선택은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으로 심화되는 미중 대결 구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화되는 미러 대결 구도를 북한은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러의 대결 구도는 당분간 계속 심화될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중국 러시아 하고만 관계를 강화해도 생존에 지장이 없다는 게 북한의 판단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이러한 판단은 나름대로 정확해 보입니다. 국제사회의 이단아로 계속 나아가는 한 번영은 힘들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중국 러시아 하고만 관계를 강화해도 최소한 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한의 이런 정책은 지난 5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중국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보상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대화 제의나 핵 포기 설득이 먹혀들 여지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정세의 추이를 지켜보는 게 현실적입니다.

다만, 정세는 계속해서 변하고 역사에는 예상하지 않은 변수들이 등장합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이렇게 장기적으로 저항하며 러시아를 곤혹스럽게 만들 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북한이 예상하는 미국 대 중러의 강고한 대치 구도, 이것이 예상치 않은 변수에 의해 휘둘릴 때 북한은 또 다른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입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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