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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피하지 못한 여혐

"온라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

노벨평화상을 받은 한 여성의 사진입니다.

언뜻 그럴 듯 해 보이는 이 사진이 사실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하고 있는 귀걸이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그녀의 얼굴에 남성의 신체 부위를 합성한 '사이버 테러'를 한 것입니다.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 합성 사진. 사진을 그대로 싣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일부 수정을 거쳤습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의 이야기입니다.

레사는 현지시간 28일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2022 세계미디어콘퍼런스' 기조연설을 하던 중에 이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습니다. 그녀는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를 운영하면서 두테르테 전 필리핀 정권의 폭력과 비리를 폭로해 온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두테르테의 지지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왔는데 이날 한 장의 사진을 예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런저런 농담을 섞어가며 가볍게 꺼낸 사진이었지만, 그 의미까지 가볍게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레사는 자신이 정부 비판 기사를 쓴 뒤 '못생긴 여자, 개, 뱀'이라는 막말이 따라왔고, 성폭력과 살해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기조연설 중인 마리아 레사

레사만의 일은 아닙니다.

여성 언론인에 대한 온라인 폭력 문제는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레사의 발표 자료를 재인용하겠습니다. 국제언론인센터(ICFJ)가 유네스코(UNESCO)와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언론인 73%는 온라인 학대를 경험했습니다. 25%는 살해 협박과 같은 신체적 위협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 20%는 자신을 겨냥한 온라인 폭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오프라인 상의 공격을 경험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폭력이 온라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레사는 그래서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사실보다는 증오와 분노를 우선 확산하는 것이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라는 것입니다.

여성 언론인에 대한 온라인 폭력 실태 조사 결과 (마리아 레사의 발표 자료)

이 취재파일을 읽는 분들 가운데 이 글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겁니다. 욕먹을 것 걱정하기 전에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지적입니다. 새겨듣겠습니다. 다만 그런 이유로도 사이버 테러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통용 가능한 상식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단 하나뿐입니다. 온라인에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회피하면, 현실 세계에서도 회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필리핀 증건거래위원회의 래플러 법인 인가 취소 유지 통보 자료

레사는 또 이날, 밤 사이 필리핀 당국으로부터 사실상 매체 운영을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밤잠을 설쳤다는 그녀는 매체의 문을 닫지 않을 것이며 필리핀 당국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해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맞춰나가고, 조정하고, 살아남고, 또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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