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사 다양성은 인사권자 입장에서는 익숙함과의 결별이다.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으로 대표되는 소위 배짱 맞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는 사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하는 건 불필요한 논의를 줄이는 방법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동질적 인사의 효과는 즉각적이다. 반면, 다양한 인사의 효과는 느리게 나타난다. 때로는 효과가 가시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5년 단임제의 한계 상 효과가 느린 다양한 인사보다 동질적 인사가 더 선호될 수 있는 구조적 제약이 있는 셈이다. 인사 다양성을 요구하는 야당, 시민사회 등도 '당론 투표', '끼리끼리 문화'의 포로가 되어 있는 만큼, 인사 다양성에 대한 요청이 위선적으로 비칠 수 있다.
인사 다양성, 실패 최소화를 위한 안전판
지난해 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많게는 2배 이상 오른 주택 가격 때문에 곳곳에서 "미쳤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 상황. 하지만, 그 사람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직 시장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 정책의 내용과 방향성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년 여가 지난 지금, 정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 사람의 확신에 찬 입장 표명은 주변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이 없었던 결과가 아닐까. 부동산 시장, 나아가 주택 시장에 대한 관점이 동질적인 사람으로만 권력 핵심부가 구성돼 대통령을 비롯한 주류적 시각에 대한 이견 제기를 질식시킨 결과가 아니겠느냐 말이다. 문재인 정부 핵심부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됐다면, 그래서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금처럼 처참하게 실패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참모의 충언에 바뀐 윤 대통령의 인사 원칙
최근 이런 인사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 윤 대통령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여성을 지목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윤 대통령의 이런 변화는 여성 등용 필요성을 강조하는 여론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더욱 직접적인 변화 계기는 대통령실 한 참모의 조언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윤 대통령이 박병석 전 국회의장 등 의장단과의 만찬에서 나눈 이야기를 서면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서 젠더 문제를 언급한 김상희 전 국회부의장의 발언에 " 최근 공직 후보자들을 검토하는데 그 중 여성이 있었다. 그 후보자의 평가가 다른 후보자들보다 약간 뒤졌는데, 한 참모가 여성이어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누적돼 그럴 거라고 하더라.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직 인사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시야가 좁아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 더 크게 보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윤 대통령 발언의 2가지 함의
이런 상황은 하나의 한계와 하나의 과제를 동시에 제기한다. 윤 대통령에게 외부자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 등의 비판은 크게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한계와 대통령실 참모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야 한다는 과제다. 참모들의 쓴소리는 여론을 반영하겠지만, 여론보다 이를 전달하는 대통령 참모들의 쓴 소리가 윤 대통령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런 스타일을 볼 때,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을 권력 요직에 등용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 대해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응답은 '적재적소 인사', 즉 '능력주의'다.
검찰 편중 인사 비판에 다시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
검찰 내부만의 문제라면 소위 '윤석열 사단'의 전진 배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다르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의사 결정은 국민들의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사람은 경험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검찰청법에선 사라졌지만, 여전히 '검사동일체 원칙'이 살아 있는 곳이 검찰이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검찰의 조직원들은 상명하복 원칙을 습속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윤 대통령이 중용하고 있는 전직 검사들은 대부분 소위 특수통이다. 둘러서 가기 보다는 직진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검찰 편중 인사 우려 불식을 위한 참모들의 과제
이런 우려와 걱정은 실패를 최소화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 아니냐는 염려로 귀결된다. 윤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였던 '조국 수사' 당시, 대검찰청의 참모가 특수통 일색이 아닌 다양한 구성이었다면 사태는 사뭇 다르게 전개됐을 거라는 전망도 이런 염려와 맥이 닿아 있다. 윤 대통령이 후속 인사에선 이런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변화를 위해 참모들의 어깨가 다시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