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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타이완서 재건된 톈안먼 '수치의 기둥'…"난폭한 수단이 기억 지울 수 없어"

어제(4일) 저녁 타이완 타이베이 장제스 기념관. 이곳에 모인 수백 명은 작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타이완 '화인민주서원협회(華人民主書院協會)는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 추모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1989년 6월 4일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 100만 명을 탱크 등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입니다. 중국 정부는 사망자가 241명이라 밝혔지만, 실제로는 1만 명에 달한다는 해외 기관 보고서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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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서 재건된 '수치의 기둥' (출처 : 타이완 연합보)

어제 타이완 집회의 초점은 홍콩에서 철거된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me)'의 재건이었습니다. '수치의 기둥'은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 시위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각상입니다. 높이가 8m, 무게 2t에 달하는 이 조각상의 윗부분에는 '6월 4일'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64개의 고통스럽고 뒤틀린 얼굴이 있습니다. 조각상 밑에는 '6.4 도살(屠殺)', '노인이 어떻게 모든 젊은이를 죽일 수 있나'라는 큰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덴마크 작가 옌스 갤치옷이 제작해 1997년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에 기증했고, 지련회가 홍콩대학에 전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2일 밤 홍콩대는 이 조각상을 기습 철거했습니다. 당시 홍콩대는 홍콩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사회 회의를 소집했고 작가가 와서 가져갈 때까지 '수치의 기둥'을 다른 곳에 임시로 옮겨 놓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 타이완 시민단체는 이 조각상을 재건하기로 했습니다. 작가의 허가를 받은 뒤 모금 활동을 벌였고, 3D 프린터로 3미터 높이의 복제품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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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대에 설치됐던 '수치의 기둥' (출처 : VOA)

타이완 연합보 등에 따르면 갤치옷 작가는 조각품의 재등장을 직접 보기 위해 타이완에 올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오지 못했습니다. 대신 영상을 통해 그는 6월 4일을 애도하고, 홍콩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수치의 기둥'은 타이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피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낮 직접 돌아본 베이징 톈안먼 광장은 적막 했습니다. 관광객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처럼 광장 주변에는 공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습니다. 톈안먼 광장은 지난해 12월 인터넷 예약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방역을 이유로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15일까지 당일 예약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3일 직접 예약을 해보려 했지만, '정보 검증 실패'라며 예약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외신 기자들의 톈안먼 광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톈안먼 광장 관리 당국은 외신 기자는 외교부나 베이징시 외사판공실 등을 통해 먼저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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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톈안먼 광장

지난달 베이징대학교와 베이징사범대 등에서 학교의 과도한 방역 정책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톈안먼 33주년을 앞두고 있었고, 베이징대는 민주화 시위의 발상지이기도 했던 만큼 중국 당국은 긴장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홍콩 매체 명보 등에 따르면, 33주년에 앞서 중국 정부는 본토의 많은 인권운동가와 학자들의 국제 전화를 통제했고 중국 소셜미디어의 사용자가 닉네임 등을 바꾸는 것을 막았습니다. 또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에서 '89위안', '64위안'을 송금하려면 송금하려고 하면 "나중에 다시 시도하라"는 안내문이 떴습니다. 결국 베이징은 예년처럼 침묵 속에서 33주년을 보냈습니다. 앞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톈안먼 사태 희생자 가족의 진상조사와 사과, 보상 요구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자 "1980년대 말 발생한 그 정치 풍파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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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집회가 열리던 빅토리아 공원 (출처: 홍콩 명보)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의 중심지였던 홍콩에서도 침묵은 강요되고 있습니다. 홍콩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아래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면서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톈안먼 추모 집회를 열어왔습니다. 하지만,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던 빅토리아 공원은 어제 철저하게 봉쇄됐습니다. 홍콩 정부는 3년 연속 추모 집회를 막아왔습니다. 민주 진영이 거의 전멸한 상황에서 올해는 집회 신청도 없었습니다. 어젯밤 일부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거리로 나왔지만, 바로 체포되거나 다른 곳으로 강제로 이동됐습니다. 홍콩 명보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어젯밤 11시 30분 기준으로 최소 6명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와 관련해 체포됐고, 장난감 탱크가 든 상자를 들고 있던 한 전직 구의원도 검문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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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톈안먼에서 탱크를 막아선 민주화 시위 참가자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홍콩에 대한 통제를 급속도로 강화했습니다. 홍콩국가보안법이 제정되면서 민주 진영과 시민 사회 인사들이 대거 투옥됐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반강제식으로 해산됐습니다. 홍콩 시내 톈안먼 추모관은 문을 닫았고, 다른 민주화 시위나 활동처럼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집회도 보안법과 코로나19방역이라는 이유로 금지됐습니다. 지난해까지 6월 4일 추모 미사를 열었던 천주교 홍콩교구도 국가보안법 위반 우려 때문에 결국 올해는 미사를 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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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 페이스북

이제 타이완은 중국 양안 가운데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이 됐습니다. 어제 타이완의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집회에 앞서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은 어제 자신의 페이스북에 촛불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을 올렸습니다. 차이 총통은 "여러 해에 걸쳐 촛불집회로 6·4를 기억해오던 홍콩에서 올해는 처음으로 기념 집회 신청이 전혀 없었고, 홍콩의 여러 대학에서는 6·4 정신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영문도 모른 채 철거되고 있다"며 "홍콩에서 6·4에 관한 집단 기억이 조직적으로 지워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차이 총통은 "나는 이러한 난폭한 수단이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믿는다"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세계의 권위주의가 확대될 때 우리는 더욱 민주적 가치를 지키고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억을 지우려는 자와 이에 맞서 기억하려는 자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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