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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사가 하던 못된 짓을 경찰도 할 수 있게 해주자?

검수완박 중재안의 문제점과 대안

[취재파일] 검사가 하던 못된 짓을 경찰도 할 수 있게 해주자?
지난 22일 여야가 합의한 검수완박 중재안에 따르면 앞으로 경찰이 수사해 검찰로 넘긴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는 크게 제한된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과 "단일성"과 "동일성"이 유지되는 범위에서만 검사는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한 결과가 미흡하거나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경찰이 넘긴 사건에 관해서는 검사가 보완수사를 할 수 있지만, 경찰 수사 결과에서 파생되는 다른 사건이나, 검사가 포착한 별도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보완수사)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조주빈에게 검찰이 개혁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중재안의 보완수사 제한 조항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지적이 나오지만, 특히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사건에 대입해보면 문제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이 언론에 집중 보도되자 경찰은 조주빈을 검거해 2020년 3월 불법 촬영 및 불법 영상물 유통 혐의 등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일단 구속기한 내에 송치받은 사건을 처리해야 했던 검찰은 2020년 4월에 조주빈을 불법 촬영물 유통 혐의 등(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이후 추가 보완수사를 해서 2020년 6월에 범죄집단 조직 혐의로 조주빈을 추가 기소했다.

조주빈은 나중에 징역 42년형을 확정판결받았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해서 찾아낸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됐기 때문이었다. 처음 기소했던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등으로는 아마 징역 5년형 정도였을 것이다. (조주빈 사건의 사회적 파장을 감안하면 조금 더 형량이 올라갔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여야가 합의한 검수완박 중재안이 2년 전에 시행 중이었다면 검찰은 조주빈을 보완수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법 촬영물 제작 및 유통 혐의와 범죄집단 조직 혐의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단일성과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별개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검찰이 이미 2년 전에 지금의 방식대로 개혁되었다면 조주빈에게 징역 42년형이 선고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조주빈은 몇 년 후 사회로 복귀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어딘가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텔레그램도 다시 마음껏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검찰개혁"이 자신이 붙잡히고 나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감옥 안의 조주빈이 알게 된다면 대단히 억울해할 것이다.

불법촬영, 몰카(사진=연합뉴스)

'평범한 불법 촬영' 사건의 경우

조주빈 사건이 너무 극단적인 경우라고 느껴진다면, 언론에서도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불법 촬영' 사건의 경우를 검토해볼 수도 있겠다. 공공장소에서 여성 B 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돼 경찰 수사를 받은 후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된 남성 A 씨의 사건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송치를 받은 검사가 사건을 추가로 검토하다 보니 A 씨의 휴대전화에서 여성 B씨 외에도 여성 C 씨, D 씨, E 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사진이 발견됐다. 이런 경우 검사는 C 씨, D 씨, E 씨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에 대해 A씨를 추가 수사(송치 후 보완수사)할 수 있을까?

검수완박 중재안에서 보완수사의 허용 조건으로 제시한 "단일성과 동일성"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사실 대단히 모호하지만, 이를 보수적으로 해석하더라도 A 씨의 추가 범죄 혐의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는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 B 씨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사건(범죄사실)과 C, D, E 씨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사건은 단일하고 동일한 사건들이 아니라 별개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검사가 일단 수사해서 기소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A 씨의 변호인은 재판에서 위법 수사(불법 수사)라고 격렬하게 주장할 것이고, 재판부도 어쩔 수 없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검사가 새로 발견한 범죄 혐의에 대해 직접 보완수사하는 대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제도에서도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좀 더 생각을 해보자. 경찰 수사 단계에서 A 씨의 휴대전화에서 B 씨 외에도 C, D, E 씨에 대한 불법 촬영 사진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텐데, 경찰은 이 사건들에 대해서는 왜 수사하지 않았던 것일까? 2020년 1월 이후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검사로서는 경찰을 상대로 이에 대해 추궁할 방법이 없다.

또,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한다고 해도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에 응하지 않고 원래의 경찰 수사 결론과 동일하게 사건을 다시 검사에게 넘기거나, 아니면 아예 사건을 검사에게 다시 넘기지 않고 가지고만 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추가 조치를 취할 방법이 검사에게는 없다. 이와 같은 '실질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치를 취하는 권한'이 바로 지난해 1월부터 사라진 '수사지휘권'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 마크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연합뉴스)

검사가 하던 못된 짓을 경찰도 할 수 있게 해주자?

보완수사 요구와 관련해 "정당한 이유 없이"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검사가 경찰 조직에 해당 경찰관에 대한 징계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은 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에 경찰관이 응해야 하는 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게다가 검사가 징계를 요청한다고 해도 여론의 압력이 대단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찰 조직이 외부인인 검사의 요청에 따라 자기 조직에 소속된 경찰관을 징계하는 일을 쉽게 생각할 수 있을까?

대검찰청이 지난 4월 20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 이후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에 답을 하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린 경우가 전체의 11.4%에 달하는 8,214건이었다. 보완수사 요구 이후 아직까지 아예 답을 받지 못한 경우도 13%인 9,429건이었다. 이 기간 중에 검사가 경찰에 징계를 요청한 경우나, 징계 요청 후 징계가 결정된 경우는 몇 건이나 될까? 공식 통계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아무리 많이 잡아도 5건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점은 경찰과 검찰의 담담자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특히 징계가 실제로 결정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검찰이 수사해서 송치한 사건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 범위를 극단적으로 제한한 검수완박 중재안은 수사지휘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경찰이 사건을 묻어버리는 일을 다른 기관이 통제할 수단을 봉쇄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의 제도에서 검사가 불기소 처분으로 묻어버린 사건에 대해 재정 신청이나 항고의 방법을 제외하면 통제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그동안 검사가 할 수 있었던 못된 짓을, 검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민생 관련 사건을 수사 개시 단계부터 직접수사하고, 조직 규모도 훨씬 큰 경찰도 할 수 있게 허용해주는 셈이란 뜻이다. 일부 검사가 하던 못된 짓을 일부 경찰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개혁일까? 평범한 국민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어느 쪽이 더 클까?
 

'별건수사'를 막으려고 보완수사를 제한한다?

그동안 검찰의 '별건수사'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으니, 검찰이 별건수사를 할 수 없도록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서도 보완수사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4월 22일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한 수용을 결의한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그간 남용되어왔던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통제할 확실한 장치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의 별건수사 관행이 논란이 됐던 사건은 대부분 검사가 수사를 직접 개시(착수)한 것들이었다. 이른바 '특수수사'의 진행 과정에서 별건수사 관행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검찰이 직접수사를 개시한 사건의 경우에는 '별건수사'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경찰이 수사해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보완수사하는 과정에서는 별건수사의 위험성이 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로 지적되는 유형의 별건수사는 주로 처음 수사를 시작했던 혐의에 대한 입증이 어려워지는 경우에 발생한다. 원래 의심했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수사를 직접 시작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피의자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부담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처음 수사에 착수했던 혐의와 관계없는 '별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찰이 먼저 수사를 한 후에 기소해달라고 검찰에 넘긴 사건에 대해서 검사가 그런 부담을 가질까? 자신이 수사를 시작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넘겨준 기록을 검사 입장에서는 혐의 입증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불기소 처분을 하면 그만이다. 굳이 여러 비난을 무릅쓰면 피의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별건수사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경찰과 검찰의 사이가 우호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칭찬받을 만한 일로 여겨질 가능성도 크다. 경찰과 검찰의 상호 견제 기능이란 바로 이런 때에 쓰는 말이다.

따라서,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하는 사건과 관련해 논란이 됐던 '별건수사'의 문제를 엉뚱하게 경찰 송치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에 적용하는 것은 사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검찰 보완수사 과정에서의 '별건수사'는 오히려 경찰 수사에 대한 견제 기능, 국민 입장에서 더욱 긍정적인 기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는 검찰이 직접수사를 개시하는 사건(이른바 '직접수사' 또는 '특수수사')의 폐해를 지적하기 위해 활용됐던 개념적으로는 상당히 부정확한 구호인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검찰의 보완수사에까지 적용해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합리적 대안

사실 검찰개혁과 경찰개혁과 관련해서는 형사사법 실무에 관여하고 있는 법률가 대부분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정답에 가까운 대안이 이미 존재한다. 위에서 설명한 문제점 등에 대해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대안이다.
 
- 검찰의 수사개시권[이른바 '직접수사권']은 최소화하지만, 경찰 송치 사건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그대로 유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경찰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지난해 초에 폐지됐던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복원되어야 한다. ("지휘"라는 이름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이름을 바꿀 수는 있지만, 경찰 수사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권한은 복원되어야 한다.)

- 또한 검사의 수사지휘권 등 경찰 수사에 대한 실질적인 사법적 통제권이 확보되었다는 전제 하에 현재 검찰이 보유한 수사인력 중 상당수는 경찰 또는 앞으로 탄생할 수사전담기구로 이동해 조직적 차원의 실질적인 권력 분산을 달성해야 한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개념적으로는 부정확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검찰과 경찰의 모습도 사실 대다수 법률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위와 같은 대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법률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거나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한 나라는 극소수지만, 다른 나라 검찰이 우리나라 검찰처럼 떠들썩하게 직접수사를 많이 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위에서 위에서 제시한 것과 대체로 비슷한 양상으로 형사사법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적 사건을 검찰 수사라는 형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통이란 점 역시 우리나라 검찰의 사회적 영향력이 과도하게 확장된 이유로 볼 수 있다. 제도적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전직 대통령 또는 대통령의 직계가족이 검찰 수사를 받거나 감옥에 가는 나라에서 수사기관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대할 수밖에 없다.)

검수완박 중재안 내놓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에 합의한 여야 원내대표

모처럼 손잡은 여야,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이유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법률가들이 공감하는 대안을 설명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검찰청에는 특성화된 분야에 대한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의 직접수사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검찰청의 지휘 아래 전국 검찰청이 일사불란한 지휘를 받는 체제를 해체하고, 각 검사장이 검찰권 행사를 기본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를 만든 뒤, 금융범죄 등 전문화된 분야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 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직접 책임지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전문 검찰청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이자, 검사 제도를 발명한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가 운영하고 있는 국가금융검찰청(PNF, Parquet National Financier)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판사와 검사, 경찰 고위 간부의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는 우리나라의 공수처 역시 지금 이야기하는 전문 검찰청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수처의 존재 의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현재의 수사 관할을 포기하고, 판검사 및 경찰 고위 간부의 범죄에 대한 전문화된 검찰청으로 남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검찰의 권한 분산과 경찰 권력 통제와 관련해 형사사법 업무를 하고 있는 법률가 대다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합리적 대안이 존재하는데도, 민생 사건 처리를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고, 검사가 할 수 있는 나쁜 짓을 경찰도 할 수 있게 만드는 방안을 검찰개혁이라면서 반드시 4월 국회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법안을 만들고 있는 정치인들의 이익이 여야와 관계없이 극대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모처럼 손을 마주 잡은 여야 원내대표와 환하게 웃고 있는 국회의장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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