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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사와 기소의 분리' 구호의 오남용과 진짜 검찰개혁

[취재파일] '수사와 기소의 분리' 구호의 오남용과 진짜 검찰개혁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은 '검수완박'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대신 '검찰 정상화'나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민주당이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발의한 검찰 관련 법률 개정안의 핵심 정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찰 고위 간부 출신으로 '검수완박'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지난 15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검수완박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용어이자, 잘못된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라고 명명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주장하는 핵심적인 이유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황운하 의원은 같은 인터뷰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인권 보호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황 의원은 "수사하는 사람이 소추권을 가지면 무죄의 증거들을 버리고 유죄의 증거들만 억지로 끌어모아 없는 죄를 만들어 재판에 넘길 가능성이 많다. 수사를 하는 사람, 기소를 하는 사람, 재판을 하는 사람은 모두 분리돼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증거를 보고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기소권자가 수사까지 하면, 자신이 수사를 한 결과에 대해서 일종의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실제로는 죄가 없거나 증거가 부족한 경우에도 기소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수사를 하는 사람과 기소를 하는 사람을 분리해야 하고, 경찰은 수사를 검찰은 기소 여부 판단을 전담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민주당 검수완박 법안?당론 발의, 검찰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사람이 찬성의 뜻을 밝혔습니다. 민주당 측에서는 지금 '검수완박' 법안을 비판하고 있는 금태섭 전 의원이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과거에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주장했거나, 수사와 기소의 분리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사하는 사람이 기소까지 하게 되면 확증편향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은 현실에 상당히 부합하는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민주당이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 방안이라며 추진하는 법안들에 대해 대다수 법률가들이 명시적으로 반대하거나, 최소한 신중론을 밝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사와 기소의 분리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의 검찰의 '수사'와 민주당이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하는 검찰의 '수사'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할 때 말했던 '검찰의 수사'는 A인데 지금 민주당이 법안을 발의해 폐지하겠다는 '검찰의 수사'는 B인 셈입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주장이 정치적 구호로 오남용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극단적 내용의 법안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지금부터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수사'를 둘러싼 개념 혼동과 구호의 오남용

기소를 하는 사람이 수사까지 하면 수사 결과 확보한 증거에 내정하게 판단할 수 없고, 자신이 직접 수집한 증거를 지나치게 맹신해 억울한 사람을 재판에 넘기는 확증편향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논리는 앞에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수사'는 수사를 시작하는 단계를 뜻하는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 기소권자인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라고 불리는 행위입니다. 정치인의 뇌물 혐의나 자본시장 거물의 주가조작 혐의 등을 수사 초기 단계부터 검사가 수사하는 '특수 수사' 가 이런 종류의 수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의 검찰의 직접 수사'는 지금은 6대 중대범죄의 경우에만 할 수 있도록 제한됐습니다. 6대 중대 범죄란 3천만 원 이상 뇌물, 5억 원 이상 횡령·배임 등 자본시장법 위반,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방위산업 관련 범죄, 대형참사 관련 범죄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다수의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은 어떤 종류의 수사권을 가지고 있을까요?

6대 중대범죄를 제외한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는 수사 개시 단계에서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경찰(사법경찰관)이 수사 개시 단계에서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해 1차적으로 혐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고, 만약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면 사건을 종결할 수 있고(불송치 결정),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면 기소해 달라고 검찰에 사건을 보내게(송치) 됩니다. [고소인의 이의제기 등 여러 복잡한 경우의 수가 있지만, 여기서는 검사가 수사권을 행사하는 일반적 경우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6대 중대 범죄를 제외한 나머지 거의 모든 범죄와 관련해 검찰은 2차적인 보완수사권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정말로 혐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다시 판단해보기 위한 목적이나, 경찰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증거나 추가 혐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찰 수사 이후의 단계에서 보완수사만 직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라고 부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도 검찰의 직접 수사에 해당하지만, 경찰이 먼저 수사한 것을 넘겨받은 후, 그다음 단계에서 검사가 수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검찰의 직접 수사'라고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검찰의 두 가지 수사권

검찰

그러므로 현재의 제도에서 검찰이 행사할 수 있는 수사권은 두 종류가 있는 셈입니다.

첫째, 6대 중대 범죄에 대해서 검사가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 직접 수사하는 권한입니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는 이른바 특수 수사가 여기에 주로 해당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째, 6대 중대범죄를 제외한 다른 범죄와 관련해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사건을 넘긴 이후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정말로 혐의가 인정되는지, 경찰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증거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직접 보완수사를 하는 권한입니다. 대부분의 사건 수사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검찰이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후 직접 보완수사를 하는 대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완수사 요구를 강제할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보완수사 요구에 대해 경찰이 응해야 하는 기간 역시 훈시적 의미로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라서 이를 '수사권'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월급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월급을 실제로 받는 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수사와 기소의 분리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기소권자인 검사가 수사까지 담당하면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맥락에서의 '수사'는 첫 번째 종류의 수사권, 즉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의 검사의 직접 수사'를 의미합니다. 검사가 범죄를 직접 입건해 수사를 시작한 사건에 대해서는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한 수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를 맹신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무리하게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압도적 다수의 경우에 해당하는 검사의 두 번째 수사권, 즉 '경찰이 1차적으로 수사를 종결한 후 검찰로 사건을 송치한 이후 단계에서 직접 보완 수사를 하는 권한'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필요성을 주장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수사'가 아닙니다. 경찰 송치 이후 진행되는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는 확증편향으로 인한 무리한 수사 또는 기소와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찰의 1차 수사 단계에서의 무리한 수사나 미흡한 수사를 점검하고 견제하는 기능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의신청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검사는 경찰이 수사를 마친 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사건들을 넘겨받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수집한 증거에 대한 확증편향이나 이로 인한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경찰이 혐의가 인정된다며 송치한 사건에 대해 기소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검사는 경찰이 수사해서 송치한 사건에 대해서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찰이 넘긴 수사 결과에 무리한 구석이 보인다면 더욱 꼼꼼하게 직접 보완수사를 한 후 경찰 수사의 잘못을 지적하며 불기소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혐의가 인정된다는 방향이 옳더라도 경찰이 송치한 증거만 가지고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에 미흡해 보인다면 직접 보완수사를 해서 증거를 추가 수집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경찰의 1차 수사 이후 단계에서 진행되는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는 확증편향이나 무리한 기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습니다. 오히려 경찰의 1차 수사에서의 잘못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사-기소 분리' 필요성과 관련 없는 보완수사권까지 폐지?

검찰 수사권 박탈 법안을 논의 중인 민주당

문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이름으로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수완박' 법안 또는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은 확증편향의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는 첫 번째 종류의 검찰 수사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생 사건과 관련되는 두 번째 종류의 검찰 수사권까지 모두 없애 버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행 형사소송법 196조 등에 규정된 검사의 일반적 수사권한 조항 자체를 삭제하고, 형소법 등의 수사 관련 조항에 있는 '검사'라는 단어를 모두 '사법경찰관'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경찰의 사건 송치 이후의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권까지 폐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법경찰관의 신청이 있을 경우에만 검사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까지 넣어서 검사의 영장 신청 권한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특히 경찰의 사건 송치 이후의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히려 경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을 견제하는 기능도 수행합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서 달성하고자 한다는 인권 보호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의 수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추구한다는 법안을 통해 오히려 이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검찰의 수사권한까지 없애버리려고 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논리를 정치적 구호로 활용하면서 오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인물들을 포함해 형사사법절차와 관련된 실무를 수행하는 다수의 법률가들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 더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 필요성이 인정되는 첫 번째 종류의 검찰 수사권, 즉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의 검사의 수사권'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경우 확증편향으로 인한 무리한 수사와 기소, 그리고 인권침해 위험성이 지적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위험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동일 사건에 대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는 것이 사건 해결의 효율성 면에서는 우수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지난 4월 16일 있었던 《KBS 심야토론》에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입장에서 참석한 민주당 김승원 의원도 효율성 면에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효율성을 추구하다가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수사와 기소의 결합'이 인정되는 경우

그런데 세상에는 사건 해결을 위한 효율성에 중점을 둬서 대응해야 하는 범죄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결합해서 대응해야 하는 특별한 범죄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들도 실제 행동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주장입니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이후 과거에 비해 훨씬 빈번하게 도입되고 있는 특별검사 제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금까지 도입된 모든 특검은 예외 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했습니다.

만약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사건 수사에서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옮다면, 국회는 지금과 같은 특별검사제도가 아니라 특별수사팀과 특별검사팀으로 분리된 두 개의 기관을 구성하는 법률을 통과시켜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빠른 시간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할 필요성이 있는 특별한 사건들에 대해서 국회는 법률까지 만들어가면서 수사와 기소를 결합시킨 특별검사 제도를 계속해서 도입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앞장선 경우가 더 많습니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는 민주당마저 특별한 범죄들의 경우에는 수사와 기소를 결합시켜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공수처 역시 비슷한 사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기소권자인 검사가 현재 행사할 수 있는 첫 번째 종류의 수사권, 즉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의 검사의 직접 수사권'의 경우 인권 침해의 위험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종류의 수사권이 완전히 폐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특별한 범죄의 경우에는 이와 같이 기소권과 결합된 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의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의 논리를 가져와 표현해보자면, 수사와 기소가 결합됨으로써 발생하는 인권 침해 가능성보다 범죄에 대한 효율적 대응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경우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관건은 이런 종류의 수사권이 필요한 특별한 경우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입니다.
 

'6대 중대범죄' 규정 시행이 1년 전…무엇이 달라졌나?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아주 최근에 합의된 규정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지난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령에 따르면, 6대 중대범죄에 대해서만 기소권자인 검사가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즉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결합을 6대 중대범죄의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한 것이 불과 1년 여 전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결정한 규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결합을 허용하는 범위를 규정하는 법령이 시행된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의 약 1년 사이에 어떤 사정 변경이 있었기에 6대 중대범죄라는 합의된 허용 범위를 지우고 검찰의 수사 개시 단계부터의 직접 수사를 아예 폐지하는 것을 넘어서, 민생범죄와 직결된 송치 이후 단계에서의 직접 보완수사권마저 폐지하자고 민주당은 주장하는 것일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민주당의 검찰개혁 정책을 대체적으로 지지했던 성향의 단체나 법률가들조차도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는 최소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검수완박'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

'검수완박'이 답이 아니라면 검찰은 어떤 방식으로 견제되고 개혁되어야 할까요? '검수완박'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란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OECD 국가 35개국 중 27개 나라가 검사의 수사권을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미국 연방검사 출신 법률가들의 직접 증언까지 언급할 것도 없이, 해외 검찰의 주요 사건 수사와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살펴봐도 '검사 수사권 완전 폐지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검토하면 검찰과 경찰이 서로의 권한 행사를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사 인력이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검사 외에도 6천 명 가까이 되는 대규모 실무 수사 인력(수사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경우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륙법계 국가이고, 우리 검찰 제도의 뿌리를 찾다 보면 늘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 검찰청에 실무 수사 인력이 거의 없습니다. 독일 검사는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고 수사지휘권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검사와 함께 검찰청에 소속된 실무 수사 인력은 극히 적습니다.

독일에서는 수사와 기소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질까요? 수사와 관련된 실무적인 업무 대부분은 검찰청이 아니라 경찰에 배치된 수사 인력인 사법경찰관이 수행합니다. 하지만 독일 검사에게는 수사지휘권이 있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바로 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경찰의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경찰관을 파견받아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수사권이 법률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검찰과는 달리 우리와 형사사법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많이 다른 미국의 연방검찰의 경우도 수사 인력은 우리보다 적습니다. 독일처럼 수사 인력을 아예 보유하지 않는 정도는 아니지만, 대형 사건을 할 때는 FBI 등 연방정부 수사기관이나 주 정보 또는 시 정부 산하의 경찰관들과 함께 수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이 보유한 수사 인력만으로는 복잡하고 규모가 큰 사건을 수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 연방검사에게는 독일 검사처럼 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수사 결과를 최종적으로 법정으로 가져가는 사람은 검사이기 때문에 다른 기관에 소속된 사법경찰관들도 대부분의 경우 검사가 이끄는 수사 방향을 따른다는 것이 미국 연방검사 출신 법률가들의 증언입니다. (2022년 4월 15일에 《SBS 8뉴스》에서 방송된 김준현 전 미국 연방검찰 뉴욕 남부지검장 인터뷰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단독 인터뷰] '미 검찰 수사권은' 전 간부에게 들어보니)
 

수사 인력과 수사지휘권 문제가 중요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검사의 수사권은 인정하되, 수사 인력은 검찰청 외부의 기관인 경찰 등에 재배치해서, 경찰이 일상적인 수사 실무를 수행하되 이 과정에서 검사의 사법적 통제와 감시를 받도록 하고 (소속 기관이 다르기 때문에 인사를 통한 통제는 이뤄지지 않음), 대형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검사와 경찰관이 함께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독일 검찰 등의 경우처럼 수사지휘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구속력이 있는 지휘권이 있어야 검사가 외부 기관에 있는 사법경찰관의 수사를 사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합동 수사 등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수사 인력은 검찰청에서 빼내 외부에 배치하되, 다른 기관에 소속된 사법경찰관들의 수사 업무 수행에 대해서 검사가 사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권한을 가지고 점검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안은 실제로 문재인 정부 초기에 수사권 조정 방안이 논의될 때 검토되었지만 청와대의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민주당 소속인 조응천 의원 역시 과거 비슷한 방안을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복잡한 기법의 금융 범죄 등 검사와 수사관이 상시적으로 함께 팀을 이뤄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범죄와 관련해서는 특정 범죄 분야에 전문화된 소규모 검찰청을 만들어서 수사 인력을 상시 배치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항공 연루 의혹이 불거졌던 에어버스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했던 프랑스의 금융검찰청(Parque National Financier)이 이 같은 모델입니다. (프랑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륙법계 국가로 분류됩니다.)
 

진짜 검찰개혁은 '인사 시스템 개혁'

여기까지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구호의 정치화와 오남용이 어떻게 '검수완박'이라는 잘못된 움직임을 불러왔는지, 그리고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검찰과 경찰의 상호 견제 구조를 설계할 수 있을지 등과 관련한 논의를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을 정말로 개혁하기 위해서 정말로 중요한 과제는 따로 있습니다. 검찰의 정치화, 검찰이 수행하는 수사와 기소의 정치화를 막는 것입니다. 수사와 관련된 제도를 아무리 멋지게 설계하더라도 검찰(또는 경찰)이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경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됐던 여러 가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의 인사 시스템을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당 부분 독립적으로, 그러면서도 예측 가능성이 있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인사 개혁이 진짜 검찰 개혁입니다. 검찰 인사를 검사들끼리 알아서 결정할 수 있도록 인사권을 독립시켜 주자는 뜻이 아닙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검사들이 스스로 인사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면서도 집권 세력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이는 다양한 인사 시스템이 도입돼 있습니다.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합니다. (간단한 사례로 이탈리아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정권의 폐해를 경험한 후 검사 인사 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원래 이탈리아 검사는 행정부 소속이었지만 1948년 헌법 개정 이후부터는 사법부 소속이 됐습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집권 세력의 영향력을 줄이는 인사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곧 야당이 될 민주당으로서는 검찰 인사 개혁이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당도 야당도 검찰 인사 시스템을 고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여당은 지금 누리고 있는 권력을 포기하기 싫고, 야당 역시 언젠가 한번은 누릴 수 있는 권력을 없애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까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을 둘러싼 비극이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것은 검찰이 정치화되는 근본적 원인에 대한 여야 모두의 의도된 무관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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