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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식기는 괜찮은데 카페 컵만 코로나 위생에 문제?" [장세만 기자의 에코브릿지]

과학적 근거 없이 불안 조장…사용 금지냐 계도냐? 카페 컵 규제 혼선

안철수 위원장 말 한마디에 멈춰 선 컵 규제

당초 4월부터 시행하려던 카페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 재개가 시행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일부 유예됐습니다. 환경부는 과태료 부과를 잠정 유예하는 대신 컵 사용 지도 안내 등 계도를 중심으로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대형 브랜드 커피숍에서는 대부분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쓰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골목골목 소형 매장에서는 '규제 유예 조치' 등을 이유로 아직도 일회용 컵을 쓰는 모습이 상당수 확인됐습니다.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금지 안내문

유예된 까닭은 뭘까요? 지난 3월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코로나 비상대응특위 전체회의에서 나온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이 발언 한마디 때문입니다.

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렇게 되면 손님들은 손님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마음에 걸린다면서 일회용 컵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고, 또 사장님들은 과태료가 무서워서 손님들 설득하며 실랑이를 벌이게 될 게 너무나도 뻔합니다. 생활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는 사실 이해합니다만, 하필이면 왜 지금 이 조치를 시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장 사정, 그리고 민생 경제 상황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정부 당국에 요청합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일회용 컵 규제를 유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부는 컵 규제 재개를 위해 지난해부터 관련 규정 개정을 행정 예고하는 등 준비해왔지만 정치권 한마디에 급선회한 겁니다. 이로 인해 컵 규제 재개에 애써 대비했던 카페들만 불이익을 받는 셈이 됐습니다.
 

'규제 재개 vs 유예'…과학적 근거 없는 추진 마찬가지

정책 추진상 문제가 발견됐다면 늦었더라도 바로 잡는 게 올바른 대응입니다. 대신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겠죠. 안철수 위원장이 밝힌 이유는 소비자의 불안감, 즉 다회용 컵 사용으로 인한 코로나 감염 우려입니다. 소비자들이 컵 사용을 꺼리게 되고 결국 일선 카페 업주들의 과태료 피해로 이어질 거라는 겁니다.

일회용컵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다회용 컵과 코로나 감염 간 과학적 인과관계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컵 규제를 추진하는 환경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환경부든 질병관리청이든 카페 다회용 컵과 코로나 감염에 대해 실태 파악이나 조사 연구 등을 진행한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카페 매장 내 다회용 컵 세척이 청결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실태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파악한 게 전무한 실정입니다.

환경부가 규제 재개를 추진하면서 내세운 유일한 근거는, 이 컵 규제가 지난 2018년 8월부터 시행돼왔고 길게는 2003년부터 만들어진 규제인 만큼 이번 규제 복원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설명이 전부입니다.

이에 반대해서 컵 규제를 갑자기 막아 세운 인수위원회 역시 아무런 근거 없기는 마찬가집니다. 카페 업주들의 어려움은 일부 해소될지 모르겠지만 안 위원장의 발언 탓에 카페 머그잔과 설거지를 담당하는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비위생' 낙인이 찍힌 셈입니다.
 

서울 시내 카페 컵 오염도 측정 결과는?

약식 조사이긴 하지만 카페 컵 청결도를 테스트해보기로 했던 건 위와 같은 배경 때문입니다. 저희 취재진은 지난 3.31~4.1 이틀간 서울 시내 중소형 카페 3곳에서, 식기 표면에 묻어있는 유기물질의 양을 측정하는 ATP 측정기를 사용해 컵 종류에 따른 오염도를 측정해봤습니다.

커피 2잔과 테스터기

먼저 커피를 먹고 난 빈 컵에 남은 유기물 양을 측정해봤습니다. 카페라떼를 마시고 난 빈 컵에선 유기물 양이 얼마나 검출될까요? 면봉처럼 생긴 테스터기를 컵 바닥, 컵 중간, 컵 상단 등 3곳을 문질러 시약에 담가 측정했는데요. 5,364RLU로 나타났습니다.

(단위=RLU)

동일한 카페 찬장에 진열된 새 머그컵들 가운데 기자가 무작위로 뽑아 테스트한 결과는 67RLU이었습니다. 카페 라떼를 마신 사용 후 컵에 비해 1/80 수준으로 낮아진 셈이었습니다.

이곳을 비롯해 서울 시내 중소형 카페 3곳에서 사용 전 머그컵과 사용 전 일회용 컵의 오염도를 측정해봤습니다. 3곳의 평균치는 머그컵의 경우 45, 일회용 종이컵 25, 일회용 투명컵 48이 나왔습니다.

(단위=RLU)

앞서 사용 후 컵에 비해 1/200~1/100 수준이었고, 머그컵의 경우 일회용 종이컵에 비해서는 유기물질이 높았지만 일회용 투명컵보다는 오히려 약간 낮았습니다. 사용 전후 차이에 비하면 일회용이든 다회용이든 컵 종류에 따른 위생도는 별 차이는 유의미한 정도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음식점 밥그릇, 국그릇, 수저는 어쩌나?

컵 규제 유예 주장대로 카페 머그잔이 비위생적이라면, 일반 식당이나 술집에서 쓰는 식기류는 어떡할 건가요? 식당에서 쓰는 밥그릇, 국그릇, 수저 모두가 다회용기인데 인수위 측이 유독 카페 머그잔만 문제를 삼은 게 타당한가요?

코로나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컵 규제를 재개하려던 환경부나 규제 유예를 요구한 인수위 측 모두 근거 없는 주장으로 소비자 및 소상공인들의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특정 규제를 재개하든 유예하든 그에 합당한 근거 제시가 선행돼야 합니다.

만약 실태 조사를 했더니 카페 다회용 컵의 위생에 문제가 있는 걸로 드러났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비위생 원인을 찾아 해법을 제시해야겠지요. 컵 세척의 청결도를 높이도록 계도나 단속 등을 통해 고객이 안심하고 카페 다회용 컵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 등 말입니다. 요즘엔 카페용 다회용 컵을 수거, 세척해서 다시 카페에 보내주는 전문 수거 세척 스타트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런 곳을 지원해서 사업성을 갖추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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