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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버지는 러시아인, 어머니는 우크라 출신…이 사람의 심경

'러시아父-우크라母' 방송인 일리야가 말하는 '러시아는 지금'

'아, 이 사람!'

이름은 정확히 모르셔도 얼굴을 보면 어디선가 봤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각종 교양 및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러시아 출신의 귀화 방송인 일리야 벨랴코프 씨입니다. 일리야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최근 그가 올린 트윗이 온라인상에서 회자가 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트윗입니다.

'러시아서 '전쟁'은 금기어..100% FAKE라고 해

별다른 언급 없이 우크라이나 국기만 올린 것인데, 이날(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개시한 때였습니다. 그가 러시아 군인 출신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가 지금 누구보다 복잡한 심경이겠다는 네티즌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전에도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 개회식 당시 한 방송사가 우크라이나 팀 입장 장면에 체르노빌 사진을 사용한 것을 두고 한국 입장에서는 세월호 사진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분개했습니다.

'러시아서 '전쟁'은 금기어..100% FAKE라고 해

우크라이나 국기 올린 이유?…"우크라이나 지지, 다른 설명 필요 없어"

이번 인터뷰는 3월 5일 목동 SBS 사옥에서 진행됐습니다. 기자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 그에게 잠깐 자신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란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밝혔습니다. (부모님 출생 당시는 소비에트연방이 건재했던 시기여서 지금과 상황이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선 '2016년 귀화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그가 침공 당일 우크라이나 국기를 올린 건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일리야 벨랴코프 / 러시아 출신 귀화 방송인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피해자인 우크라이나 쪽을 지지해서 올린 거죠. 쉽게 말하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았어요. 그 당시는. 전쟁이 일어난 첫날이었고 또 뉴스에서 크게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따로 설명을 안 해도 충분히 그런 마음, 그런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러시아서 '전쟁'은 금기어..100% FAKE라고 해

"러시아에선 모두 'FAKE'라고 해…전쟁은 금기어"

그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2022년, 유럽 한가운데서 탱크를 끌고 미사일을 쏘는 상황이 일어날지 상상하기 힘들었다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 전개되는 상황 또한 매우 우려스럽다고 전했습니다. 러시아 방송과 해외 영어권 언론, 한국의 매체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러시아에서의 보도 내용이 외부의 보도와 너무도 다르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180도 다르다, 그냥 일치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무고한 아이들과 민간인들에 대한 피해가 전해지면서 국제사회 지탄의 목소리가 높은데, 이건 어떻게 보도되고 있을까요?
 
"러시아에서는 그게 다 페이크(fake, 가짜뉴스)라고 해요. 100% 다. 영상은 다 딥페이크(deep fake)고 사진은 다 포토샵이라고 하고. 굉장히 강력하게.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국영방송사에는) 그런 룰이 있었어요. 일단 전쟁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것은 금기어입니다. 무조건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얘기하고.
또 전쟁 첫날과 지금의 상황이 매우 많이 바뀌었는데, 러시아에서 국영방송 외에 모든 언론사들이 폐지됐어요. 푸틴이 말하는 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100% 차단이 됐어요. 어제는 또 새로운 법안이 통과했는데 (정부 통제를 따르지 않는 언론은) 바로 징역 10년에서 15년 징역을 처할 수 있는 법안입니다."

실제로 일리야 씨와의 인터뷰 이후 러시아 내 독립언론사인 미디어조나가 당국의 검열로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매체는 자신들이 보도를 중단함에 따라 러시아 내 독립매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을 '침공'이라고 하고, 전쟁을 '전쟁'이라고 쓴 것이 보도를 중단하게 된 사유라고 이 매체는 설명했습니다.
 

"러시아의 북한화" 우려…푸틴이 '반(反)나치화'를 쓰는 이유는?

일리야 씨는 러시아가 '북한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앗아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귀화할 당시인 2016년만 해도 지금의 수준은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에도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매체는 있었지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들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충분한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치적 자유는 보장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거의 완전한 비자유' 상태라는 것이 그의 평가였습니다.

이렇게 정보가 통제되는 상황에서 러시아 안의 국민들은 지금의 러시아를, 지금의 푸틴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그는 두 목소리가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기성세대 위주로 푸틴을 지지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프로프간다 전파에 공을 들여 이들을 수년간 세뇌한 결과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푸틴 머릿속은 그런 그림인 것 같아요. 1930년대란 1940년대에 독일의 나치들이 있잖아요.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이제 운용했던 그 시스템 자체가 나치였는데 그 나치의 후손들은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정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이런 나치들은 당연히 반러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그 나치를 물러나게 해서 그 나라의 그 땅을 해방시켜야 된다라는 게 푸틴의 이제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이런 주장이) 한국 사람한테 좀 생소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10년 이상 프로파간다를 계속 심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 같은 경우는 인터넷을 많이 보고 유튜브도 많이 보고 어느 정도의 여러 가지 입장에 익숙한데 기성세대들은 국영 TV만 봐요. 10년 동안 매일 똑같은 얘기를 듣고 있어요. 이런 프로파간다에 세뇌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환호할 거예요."

'러시아서 '전쟁'은 금기어..100% FAKE라고 해

"SNS 시위 글만으로 감옥행 가능한 러시아…여권 태우기는 반란 수준"

다만,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달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해외에서 봤을 때 규모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은 엄청 크거든요. (이번 시위로) 거의 6천 명 정도가 구속이 되어 있다는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것은 (러시아에서는) 엄청난 숫자이거든요.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이나 2021년 같은 경우는 시위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 2018년이나 2019년 시위가 컸던 해였어요. 그때 알렉세이 나발리, 소위 말하는 푸틴의 정적이라고 불리는 정치가 때문에 또 시위가 있었어요. (그 당시) 어이없이 구속되고 재판으로 넘어가고 그런 게 많았기 때문에 러시아 사회 안에서 시위에 대한 두려움 약간 무서움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부적으로 봤을 때는 되게 상당한 거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봐요.

자기 SNS에서 오늘은 어디에 몇 시에 시위가 있을 거라는 그 문자만 남겨도 감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인데 그걸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런 무서움을 무릅쓰고 나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되게 러시아 사람으로서는 큰 용기를 보여주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여권을 태우는 것은) 거의 반란 수준이죠."
참고 : 러시아 인권감시단체인 OVD-인포에 따르면 24일 이후 147개 도시에서 시위로 체포된 숫자는 1만 3천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버지, 푸틴 지지자지만…" 그가 러시아 국민에게 하고픈 말은?

그에게 이번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의 답은 "재앙"이었습니다.

그는 그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빨리 평화를 되찾고 가족과 같이 살 수 있게 될 시기를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국민들은 지금 통수권자가 어떤 지시를 내린 것인지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신과 달리 자신의 아버지는 푸틴의 오래된 지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아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요. 그는 "(아빠는) 여태까지는 푸틴이 하는 언행과 모든 행동을 지지해왔는데 이번 것을 보면 좀 아닐 것 같아서, 흔들리는 마음을 보이시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답했습니다.



(취재 : 김아영, 영상취재 : 김성일, PD : 김도균, 편집 : 차희주,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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