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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대선에 이용되는 '우크라이나 비극' 따져 봤습니다

[사실은] 대선에 이용되는 '우크라이나 비극' 따져 봤습니다
지난 25일 2차 법정 토론회 주제는 '정치'였습니다. 후보들은 '외교 및 안보 정책'을 주제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자주 거론됐습니다. 후보들은 이번 사태를 지렛대 삼아 자신의 안보관을 소개하거나,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논란도 일었습니다. 후보들의 우크라이나 관련 발언들을 팩트체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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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발언입니다.
 
이재명 후보 :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죠.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가 가입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충돌했죠. 물론 러시아가 주권과 영토를 침범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강력하게 규탄해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외교의 실패가 곧 전쟁을 불러온다는 아주 극명한 사례고, 전쟁이 경제에 얼마나 악영향 미치는지 말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후보는 너무 거칠고 난폭해서, 예를 들면, 사드 배치 꼭 필요하냐 반론도 있는데 굳이…
- 2차 법정 토론회 발언, 2월 25일

외교에 미숙한 초보 정치인이 이웃 국가를 자극해 이번 사태가 불거졌다는 의미인데, 이재명 후보는 이를 통해 윤석열 후보의 '사드 추가 배치' 주장을 반박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실시간 e뉴스1. 젤렌스키 OK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에 반발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 가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가입을 우크라이나의 국가안보전략(NSS)으로 삼았습니다.
2020년 9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승인했다. 국가안보전략은 NATO 가입을 목표로 NATO와의 독특한 협력 관계 발전을 전제하고 있다.
President Volodymyr Zelenskyy approved Ukraine's new National Security Strategy, which provides for the development of the distinctive partnership with NATO with the aim of membership in NATO.
- 나토 홈페이지(www.nato.int), "Relations with Ukraine"

우크라이나는 내부적으로 친러 세력과 반러 세력의 반목으로 진통을 겪었고, 내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안보전략 설정은 친서방 쪽으로 기우는 행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서방과 나토의 관계는 단순히 2020년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언 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대부터 계속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나토와 서방, 돈바스 내전과 같은 복잡 다난한 맥락들도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특히,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키면서 반러 정서에 기름을 붓습니다.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였지만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반러 기류와 맞물리며 나토 가입 지지 여론은 높아졌고, 2014년 10월 총선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나토 가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2016년 나토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포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패키지도 발표합니다. 물론, 나토는 발표 이후 러시아를 의식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게 문제가 됐습니다.
 
1. 이 패키지의 목적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NATO의 지원을 강화하고 높이는 것이다.
The objective of the Package is to consolidate and enhance NATO's assistance for Ukraine.
2. 우크라이나의 목표는 NATO 기준에 따라 국군을 개혁하고 2020년까지 NATO군과 상호운영을 달성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종합 지원 패키지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It is Ukraine's stated objective to reform its Armed Forces according to NATO standards and to achieve their interoperability with NATO forces by 2020. Assisting Ukraine in meeting this objective is one of the primary objectives of the Comprehensive Assistance Package.
- 나토 홈페이지, "Comprehensive Assistance Package for Ukraine"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2019년 2월 21일 헌법을 개정해 EU와 나토 가입의 의지를 천명합니다. 나토 가입과 관련된 부분은 3개 조항에 걸쳐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헌법>
85조 (의회의 권한) 대내외 정책의 원칙 결정,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회원권을 획득하는 국가의 전략적 방침을 실현한다.

etermining the principles of internal and foreign policy, realization of the strategic course of the state on acquiring full-fledged membeship of Ukraine in the European Union and in 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102조 (대통령의 역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 (EU)과 북대서양조양기구(NATO) 정식 가입을 위한 국가의 전략적 방침을 이행할 보증인이다.
The President of Ukraine is a guarantor of the implementation of the strategic course of the state for gaining full-fledged membership of Ukraine in the European Union and 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116조 (우크라이나 내각)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정식 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국가의 전략적 방침을 실행한다.
provides the implementation of the strategic course of the state for gaining full-fledged membership of Ukraine in the European Union and 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젤렌스키 대통령은 헌법 개정 이후인 5월 20일 취임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헌법에 반영될 정도로 주요 쟁점이었던 셈입니다. 오히려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7월 11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양측에 억류된 포로 교환 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보는 오히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말처럼, 이번 사태가 젤렌스키 대통령만의 귀책사유로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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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발언입니다.
윤석열 후보 :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참 서로 보는 각도가 다른데, 종이와 잉크로 된 협약서 하나 가지고 국가의 안보와 평화가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확실한 힘과 강력한 동맹이 있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는 그걸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협약서와 민스크 협정, 이런 것에 의존을 했는데, 우리 이재명 후보께서 지금 저렇게 종이와 잉크로 된 종전 선언을 강조하는데,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강조해서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그게 우크라이나와 동일한 위협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
- 2차 법정 토론회 발언, 2월 25일

민스크 협정 같은 상호 간의 '약속'만으로는 국가의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윤석열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정전 협정' 주장을 반박하고 싶었던 것으로 읽힙니다.

여기서 민스크 협정이 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스크 협정은 2014년 9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루한스키 공화국 사이에 분쟁을 그만 하자는 정전 협정입니다. 러시아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루한스키 공화국은 자치권을 주장하며 무력 충돌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휴전 서명_640
2014년 민스크 협정 서명

그러나 협정은 유명무실해졌고, 이듬해 2월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까지 모여 추가 조항이 담긴 '민스크 협정2'에 합의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스크 협정2>
- 양측의 모든 중화기 철수
(Withdrawal of all heavy weapons by both sides)
- 우크라이나 법률에 따라 도네츠크 및 루한스크 지역에 대한 임시 자치 정부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고 의회의 결의로 이들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한다. (To start a dialogue on interim self-government for the Donetsk and Luhansk regions, in accordance with Ukrainian law, and acknowledge their special status by a resolution of parliament.)
-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대표자들과 합의한 조건에 따른 선거 (Elections in Donetsk and Luhansk on terms to be agreed with their representatives.)
- 로이터, "Factbox: What are the Minsk agreements on the Ukraine conflict?", 2021년 12월 6일.

하지만, 주요 조치들은 지금까지도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민스크 협정에 대한 두 국가의 해석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민스크 협정을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민스크 협정을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깨기 위한 도구로 보고 있다.
Ukraine sees the Minsk agreements as instruments with which to re-establish its sovereignty over the regions of Donetsk and Luhansk oblasts that are currently under Russian occupation. …… Russia views the Minsk agreements as tools with which to break Ukraine's sovereignty.
-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 "West must reject Russian bid to limit Ukrainian sovereignty", 2020년 6월 9일.

협정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민스크 협정에 대한 신뢰는 약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까지도 민스크 협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다닐로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총장은 올해 1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스크 협정은 러시아의 총 아래서 체결됐다. 이를 이행하면 우크라이나가 파괴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반대 시위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대체적으로 민스크 협정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2021년 12월 여론조사에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75%가 민스크 협정을 개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12월 초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54%) 우크라이나인이 민스크 협정이 개정되고 새로운 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했고, 21%는 우크라이나가 협정을 폐기하고 돈바스에 관한 결정을 국제 중재자(세계의 중재자들) 없이 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총 75%의 답변자가 현재 양식의 민스크 협정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을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12%만이 선호하는 의견이다.
An early-December nation-wide opinion poll conducted by the Rating Group showed that the majority of Ukrainians (54%) believe that the Minsk accords should be revised and new ones signed instead, while 21% believes that it's necessary for Ukraine to withdraw from the negotiation process and make decisions on the Donbas on its own without international mediators involved. This means that a total of 75% of respondents are against the Minsk accords in their current form. The opinion that Ukraine must fully implement the Minsk accords is favored by only 12% of Ukrainians.
- Euromaidan Press, '우크라이나 국민의 4분의 3이 민스크 협정에 반대', 2021년 12월 30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민스크 협정 체결 직후부터 지금까지 협정의 효력에 대해 논란이 계속된 건 사실입니다.

결국, 윤석열 후보의 말처럼,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에 의존했다가 전쟁을 맞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엔 어려워 보입니다.

선거가 전쟁을 다루는 방식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지하철역으로 대피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수십년 누적된 여러 사정들이 곪아 터진 결과입니다. 강대국의 알력, 우크라이나 내부 친러와 반러의 내부 갈등, 여기에 민족 정체성 문제까지 여러 층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하지만, 두 후보는 복잡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일면을 강조해 주장의 논거로 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통해 이재명 후보는 윤 후보의 사드 추가 배치를, 윤석열 후보는 이 후보의 정전 협정 추진을 공격하는 논거로 삼았습니다. 대선 정국,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그렇게 선거의 수단이 됐습니다.

치열한 신경전 속 후보들의 마음은 급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지켜야 할 '선'은 있습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모두가 한목소리로 반전을 외치고 있습니다. 구태의연하더라도, 진부하더라도, 그래도 우리 정치가, 대선 후보들이 해야 할 말은 인권, 평화, 반전, 인류애가 아닐까요. 아무리 급하더라도 대선 후보들이 이 참담한 비극 앞에서는 조금이나마 숙연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임시 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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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 이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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