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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최소한의 선의', 그 다음에도 [북적북적]

결국은 '최소한의 선의', 그 다음에도 [북적북적]
북적북적 329: 결국은 '최소한의 선의', 그 다음에도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에서 주인공 선은 다섯 살 남동생 윤이 밤낮 친구 연오에게 맞으면서도 또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같이 노는 꼴을 보니 열불이 난다. 그래서 채근한다.


선: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리고 같이 놀면 어떡해?
윤: 그럼 어떡해?
선: 다시 때렸어야지.
윤: 또?
선: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윤: 음... 그럼 언제 놀아?
선: 어?
윤: 연오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오가 또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천진난만한 다섯 살 아이 윤이의 말이 어쩌면 헌법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에서

'법대로 하자!', '불법은 아니다', '방지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너도나도, 곳곳에서 흔하게 법을 말합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 한때 많이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칭찬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다르게 들리는 듯도 합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는 인식이 더 많아져서인 듯합니다. 너무 쉽게 '법'을 말하지만 '애초에 이런 법이 왜 생겼던 걸까' 하는 생각은 희미해졌습니다. 본말 전도입니다.

오늘의 책은, 법을 말하면서도 주로 법 바탕에 있는 사고와 그 사고방식에 대해 말합니다. "제각기 다른 개인들의 개별성과 자유를 존중하고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합리적으로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 사회.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 이것이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이고 이런 사회를 지탱하는 사고방식이 법치주의"라고 말합니다. 23년 간 법률전문가- 판사로 살아왔고 지금은 작가로 자리를 바꾼, 문유석 작가의 <최소한의 선의>입니다.

문유석 작가는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쾌락독서>, <판사유감> 등의 책을 이미 법관 시절부터 썼습니다. 이 중 드라마가 된 <미스 함무라비>와 원래부터 드라마로 만들어진 <악마 판사>의 대본을 직접 집필하기도 할 정도로 이미 작가의 길을 걷고 있던 분입니다. 북적북적에서도 <미스 함무라비>와 <쾌락독서>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가 법관 생활을 마무리한 2020년 2월은, 마침 실은 하필이면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얼마나 허약하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그리워할수록, 그걸 지탱해왔던 기둥들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우리는 약속, 규칙, 양보, 거래, 상호 이해, 자제, 존중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었고, 한밤중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그 힘이 제도화된 것이 법이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법은 문명 세계의 기둥이다. 그 기둥이 세계 도처에서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끼던 2020년 봄의 어느 날, 나는 법에 대해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인류는 오랜 역사 끝에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인간을 존엄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회계약을 이루어냈고, 이것이 문명국가의 헌법이다. 신이 어떤 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떠한 본성적인 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의 존엄함을 인정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하는 사회가 성립되었고, 이러한 약속은 비록 현실에서 완전히 실천되고 있지는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소중하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약속>에서


"사람이 죽든 말든 정해놓은 매뉴얼과 절차가 더 중요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제도는 있을지 모르되 인간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사람에게 차마 해를 가하지 못하고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맹자의 오래된 가르침이 어쩌면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복잡한 시스템으로 가득한 21세기에 더욱 필요한 헌법적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성은 감수성이다>에서

각 부는 한 편의 긴 글처럼 쓰여 있습니다. '1부 인간은 존엄하긴 한가'는 '왜 헌법인가'에서, 법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오래된 생각이라면서 그 오래된 생각에 대해 '법도 위아래가 있다'에서 설명하고 다시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며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약속'으로 갔다가 그 존엄한 인간을 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사형제'를 거쳐 다시 인간의 존엄함을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서 말하고 결국은 헌법적 감수성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은 감수성이다'로 가는 식입니다. 그래서 실은 전체를 읽어야 아, 이런 흐름으로 쓴 글이구나 싶은데 저는 그중 토막을 발췌해서 낭독했습니다. 그러니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책을 다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별날 자유나 불온할 자유는 비교적 쉽게 그 필요성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비루할 자유'일 것 같다. 추잡하고, 너절하고, 더럽고, 비겁하고... 그럴 자유라니 본능적으로 그런 것 따위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행동해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행동에 대해서는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개인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는 생각과 취향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거나, 그것을 강제로 끄집어내 비난하는 것은 위험하다."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에서


"법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탁이 아니다. 법은 인간을 위한 도구다. 법은 인간 사회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들은 온갖 인지적 편향과, 이성 이상으로 강력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걸 무시하면 법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우리의 법치주의 시스템은 인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법치주의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것들>에서


"어떠한 시스템이 구축되면 반사적인 이익을 얻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 시스템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부작용도 생긴다. 그렇다고 그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시스템 자체를 해체하려는 발상은 더 큰 위험을 낳는다... 지금 당장의 불공정을 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자칫 무한경쟁만이 정의라고 착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누구 좋으라고. 노력, 능력, 경쟁, 공정, 모두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 가치만 추구할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지옥>에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그중에서도 단순하면서도 가장 큰 관심이 모이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특히 선거가, 또 투표가, 그 이후 어떤 세상이 올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헌법적 가치를 살펴보는 이 책이 제게 더 의미 있게 느껴진 건, 코로나와 함께 지금 시국에 읽었기 때문이겠죠.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라는 작가의 말처럼 선거 이후에 '그 최소한'을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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