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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의사실 보도와 피의사실 공표는 면죄부를 받은 것일까?

[취재파일] 피의사실 보도와 피의사실 공표는 면죄부를 받은 것일까?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눈에 띄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기록을 거의 날것 그대로 공개하는 기사들입니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주식거래 상세내역이 몇몇 언론사를 통해 공개됐고, 전직 채널A 기자 이동재 씨 관련 수사기록에 포함된 채널A 기자들 사이 메신저 대화 내용 역시 원문 그대로 공개됐습니다.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수사기록에 포함된 '정영학 녹취록'  역시 서로 다른 부분이, 서로 다른 해석과 함께, 서로 다른 언론사들을 통해 잇달아 공개되는 중입니다.

 

피의사실 보도…'받아쓰기'는 안 되지만, '베껴쓰기'는 괜찮다?


일련의 검찰 수사기록 원문 보도 가운데는 보도 가치가 충분한 기사도 있고, 보도 가치가 있는지 의문스러운 기사도 있습니다. 검찰 수사기록에 근거한 보도라고 해서 무조건 비윤리적인 기사라고 보는 것도 터무니없지만, 검찰 수사기록을 공개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훌륭한 보도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피의사실 보도'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를 최근 이어지고 있는 검찰 수사기록 보도가 입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행위,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한 내용을 근거로 보도하는 행위를 '피의사실 보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즘 김건희 씨 수사기록이나 이동재 씨 수사기록을 인용해 보도하고 있는 언론사 중 일부는 과거 조국 사태 등의 경우에는 '피의사실 보도'를 '검찰 받아쓰기'라며 강력히 비난했던 곳입니다. ‘검찰 받아쓰기’ 특종은 안 하겠다고 고위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다짐했던 곳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 받아쓰기'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검찰 수사기록을 공개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받아쓰기’가 아니라 ‘베껴쓰기’니까 괜찮을 걸까요? '검찰 받아쓰기'를 비난했던 분들이 앞장서서 '검찰 베껴쓰기'를 하고 있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3자로부터 받은 검찰 기록은 문제 없다?

검찰/노트북

검찰로부터 직접 입수한 자료가 아니고 별도의 경로를 통해서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을 보도하는 것은 '검찰 받아쓰기'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흘린 자료를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제3자로부터 기록을 받았으니 '받아쓰기'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검찰 받아쓰기를 비판해왔던 기존 논리에 비춰보면 두 가지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첫째, 피의사실 보도를 비난하는 분들의 주된 이유가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을 보도하는 행위는 부당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국 사태 때를 돌아보면, 검찰의 수사내용을 보도하는 것에 대해 재판을 통해 확정되지 않은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을 보도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를 인용 보도하는 행위조차 검찰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쓰기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대로라면 입수 경로와 관계없이 검찰 수사기록을 인용해 보도하는 것은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을 전달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사가 검찰로부터 받았을 경우에는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이 되는 검찰 수사기록이, 언론사가 제3자를 통해 받을 경우 '객관적 사실'로 환골탈태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검찰 받아쓰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입수 경로와 관계없이 검찰 수사기록을 근거로 보도하는 행위 자체를 규탄하는 것이 차라리 일관성 있는 태도입니다.

둘째, 검찰로부터 직접 자료를 받는 것은 '검언유착'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제3자로부터 입수하는 것은 검찰의 의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정보원 또는 취재원의 의도에 영향을 받는 것은 기자가 언제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제3자가 취재원일 경우에도 '유착'의 문제는 마찬가지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사기록을 제공한 취재원이 검찰관계자가 아니라 특정 정당 관계자이거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인물인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검찰이 제공하는 자료를 보도하는 것이 검찰의 의도를 반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라면, 특정 정당 등이 제공하는 자료를 보도하는 행위 역시 일정한 정치적 의도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의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다. 

꼭 정치적 인물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취재원과 제보자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로지 공익을 위한 순결한 마음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취재원의 의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는 절차는 언제나 필요하지만, 일정한 의도를 가진 취재원이 제공하는 자료를 보도하는 행위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검찰관계자가 취재원인 경우에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비윤리적이고, 제3자가 취재원이면 의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윤리적이라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검언유착'이 문제라면, '정언유착' 역시 문제입니다. 반대로 취재원이 정치인이라도 보도의 가치가 있으면 기사를 쓰는 것이 당연하듯이, 취재원이 검찰관계자라고 하더라도 보도의 가치가 있다면 보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검찰이 아니라 제3자로부터 입수한 자료일 경우 ‘유착’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내로남불' 덕분에 갖게 된 기대


따라서 피의사실 보도를 '검찰 받아쓰기'라고 비난했던 사람들이 수사기록 원문 공개 보도에 앞장서거나, 이런 보도를 보면서 환호하는 모습은 최소한의 일관성도 찾을 수 없는 태도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검찰 수사기록 원문 공개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반드시 나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피의사실 보도에 대한 오해가 이를 계기로 해소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조국 사태 당시에도 여러 지면을 통해서 주장한 적이 있고, 이 글의 앞부분에도 썼지만, 피의사실 보도는 그 자체로 윤리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익을 위해 알릴 가치가 있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검찰이 수사 중인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라고 해도 정당하다고 볼 수 있고, 국민이 알 가치가 없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라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라고 해도 비윤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피의사실 보도 자체를 부당한 것이라고 매도했습니다. 이제는 검찰 수사 내용을 보도하는 행위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검찰 수사기록을 인용해 보도하는 상황이니 앞으로는 이런 비난을 받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설마 나중에 또 '우리 편이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수사내용이 보도된다고 해서 다시 입장을 바꿔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공소장 공개'는 안 되지만, '수사기록 공개'는 괜찮다?

대검찰청 (사진=연합뉴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이에 대한 수사의 문제입니다.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다른 개념입니다. 피의사실 보도는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내용을 보도하는 행위이고, 피의사실 공표는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내용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피의사실 보도가 정당한 경우라고 해도 피의사실 공표가 정당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의사실 공표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긴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 자체의 정당성 여부가 아닙니다.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를 제기하는 기준이 지극히 이중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의사실 보도가 있을 때마다 피의사실 공표나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을 제기하면 문제 삼았던 이들은 최근 검찰 수사기록 원문이 잇달아 공개되는 상황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이전까지는 국회를 통해 언론에 공개되었던 문서이고, 지금도 법정에서 공개될 수밖에 없는 문서인 공소장의 내용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이고, 공수처가 기자들에 대한 통신영장까지 발부받아 수사에 나선 것이 불과 몇 달 전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내밀한 내용인 김건희 씨의 주식 거래내역이나, 이동재 씨 수사기록에 있는 채널A 기자들 사이의 메신저 대화 내용 원문이 그대로 공개되었는데도 법무부나 대검 감찰부, 공수처가 감찰이나 수사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취재원 비닉권 존중해야…문제는 이중기준

신문, 보도, 언론, 기자 (사진=픽사베이)

김건희 씨나 이동재 씨 등의 수사기록 보도와 관련해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사를 해야 한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정당한 보도의 취재원을 찾아내려는 목적으로 수사기관이 수사권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트럼프 정부 당시 미국 연방검찰이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 수사를 명분으로 기자들의 통화내역 등을 확보하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금지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갈런드 미국 법무부 장관 역시 기자 취재원 관련 강제수사를 금지하는 정책을 알리는 공문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전제하며 언론인들이 취재원을 밝히도록 강요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역시 국가 안보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이익(national interest)"라고 규정했습니다. 취재원 비닉권 보호를 포함하는 언론의 자유는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중대한 공익으로 대우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성윤 검사장에 대한 공소장 내용 보도와 관련해서는 강제수사와 감찰을 진행했던 사람들이 훨씬 내밀한 수사기록을 보도한 기사들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중기준 또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조국 사태 이후 법무부 등이 도입한 형사사건 공개 금지와 관련된 다양한 방침이 결국 정부에 불리한 보도를 틀어막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기도 합니다. 공개 금지 규정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에 유리한 보도에 대해서는 공개 금지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에 불리한 보도와 관련해서는 공개 금지 규정을 가혹하게 적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들어맞은 셈입니다.

 

'내로남불' 비판보다 중요한 것


피의사실 보도를 비난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내세웠던 논리, 그리고 피의사실 공표를 막겠다며 발표했던 여러 규정들은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완벽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내로남불이라는 말로 윤리적, 논리적 파산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정치적 유불리와 권력의 향방과 무관하게 보도 관련 윤리 기준을 재정립하고, 정보공개와 관련된 불합리한 규정들을 개정하는 것입니다.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가면 과거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끊고, 현실에서 적용이 가능하면서도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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