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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되면 북한 기업 모두 청산해야 할까?…더 큰 부작용 부른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 있는가

남북 간의 경제 격차가 현격한 상황에서 통일 후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는 북한 기업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글( ▶ 남한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북한 기업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에서 본 것처럼, 1차 생산물을 생산하거나 저임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 말고는 북한 기업의 경쟁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리해 남한 기업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독일의 사례를 통해 북한 기업 재편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의 동독 기업 재편: 선 매각 후 경영정상화

 
독일의 동독 기업 재편은 ‘신탁청’이라는 기관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신탁청은 원래 동독의 국유재산을 관리하면서 동독 국유기업들을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유한회사, 주식회사 등으로 전환하기 위해 설립됐는데, 독일 통일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업 사유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관으로 목적이 변질됐습니다. 동독 기업들의 자생적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서독 기업으로의 매각을 통한 사유화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기관으로 신탁청의 성격이 바뀐 것입니다.
 
신탁청은 ‘선 매각 후 경영정상화’를 기본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경쟁력 없는 동독 기업들을 자체적으로 살리려 하기보다는 하루빨리 서독 기업에 매각하고 이를 인수한 서독 기업들이 경영정상화에 나서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침은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동독 기업들을 서독 기업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발생하면서 수많은 동독인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 기준으로 410만 명이 신탁청 산하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불과 2년 뒤인 1992년 이 가운데 65%인 26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통계가 실업의 심각성을 말해줍니다. 통일 이후 1년 반 동안 신탁청 산하 기업의 사유화로 인한 실업은 동독 지역 전체 실업의 75%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참고: 1990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동독의 모든 기업들은 주식회사로 전환됐고, 모든 인민 소유 기업들의 주식은 신탁청이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로써 신탁청은 45,000개의 공장을 갖고 있는 7,894개의 인민 소유 기업을 소유하게 됐고, 여기서 일하는 종사자가 410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 당시 동독 전체 일자리의 40% 이상이 신탁청 소유 기업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동독 지역의 사회보장비가 급증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자리가 없어 돈을 못 버는 사람들의 기본 생계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통일독일 정부는 막대한 사회복지 비용을 투여해야 했습니다. 통일로 인해 혼란한 상황에서 동독인들의 불만이 누적될 경우 예상치 않은 불상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사회복지비용 투입을 통한 동독인들의 생활보장은 긴요한 과제였습니다.
 
서독이 지원한 돈이 이렇게 동독 지역의 경제건설보다 사회복지에 더 많이 투여되면서, 독일의 통일비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늘어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저개발국에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스스로 벌어먹고 살게 하는 것인데, 실업자 양산으로 모든 기초복지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게 되면서 경제개발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함께 막대한 통일비용 증가를 가져온 것입니다. 통일비용으로 먼저 동독 지역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로 인해 늘어나는 세수를 통일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통일비용의 상당 부분이 복지비용으로 지출되면서 투자는 상대적으로 지체됐고 경제발전이 더디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동독 기업 서독 매각에 집중하면서 동독 산업기반 붕괴

 
문제는 또 있습니다. 신탁청이 동독 기업들을 서독에 팔아넘기는 것에 집중하면서 동독의 자생적 산업기반은 완전히 붕괴됐습니다. 신탁청은 동독 기업의 신속한 사유화를 추진하면서 대규모 기업집단(콤비나트)을 작은 단위로 분할해서 매각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경쟁력 있는 기업들은 서독 기업들이 인수한 반면 나머지 기업들은 외면받았습니다.
 
결국 남겨진 기업들은 천덕꾸러기가 되면서 헐값으로 매각되거나 정리되는 수순을 밟았고 지역경제도 덩달아 붕괴되게 됐습니다. 서독에 팔린 기업들도 자체의 경쟁력을 유지했다기보다 서독 기업의 판매 영업부 지사처럼 변했기 때문에 동독의 자생적 산업기반은 총체적으로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탁청의 사유화 방침이 동독지역 전체의 경제기반 공고화라는 거시적인 시각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라, 개별 기업의 경영 합리화라는 미시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면서 동독 지역의 경제 구조를 망가뜨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입니다.
 
신탁청은 정해진 시간 내의 매각에 집착하면서 동독인들의 자발적 기업의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외부 경영자를 영입해 기업을 정상화하려 했으나 신탁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든가, 신탁청이 그냥 사업장을 폐쇄하라고 했다는 불 멘 소리들이 동독인들에게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독 기업 사유화가 이렇게 지역기반을 무너뜨리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동독인들은 심한 자괴감과 불만을 갖게 됐습니다. 자신들이 일궈 온 모든 것을 서독인들에게 박탈당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늘어나는 실업 속에 심리적 상처를 받고 무기력에 빠지게 됐습니다. 1991년 4월 신탁청장 로베더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피살된 사건은 동독 주민들이 신탁청에 대해 갖고 있던 반감을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북한 공장

북한 기업 재편, 어떻게 할 것인가


통일 뒤 북한 지역 기업들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와 관련해 독일의 사례는 중요한 반면교사가 됩니다. 북한 기업들의 경쟁력이 낮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정리와 남한 기업으로의 매각에 나설 경우, 북한 내 실업자가 폭증하고 산업 구조가 와해될 수 있습니다. 북한 내에 실업자가 늘어나면 기초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 막대한 사회복지비용이 들어가야 하고 이는 통일비용의 끝없는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통일 뒤 북한 기업의 재편과 사유화는 북한 지역 경제의 자립기반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두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북한 기업들이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춰 생존을 모색할 수 있도록, 초기에는 국가가 보호하면서 경영정상화에 필요한 시간을 주고 경영 컨설팅을 포함한 인적, 물적 지원도 제공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 사유화도 진행해야 할 것인 만큼, 북한 주민들에 의한 기업 사유화와 경영정상화 작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체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남한 기업으로의 매각 내지 청산을 추진해야 하겠지만, 이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된 이후의 일이지 처음부터 매각이 우선순위에 놓여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지원했던 기업들 중 일부가 끝내 정상화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지원한 자금은 허공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애초에 경쟁력 낮은 기업을 지원하려다 국민 세금만 허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기업 정상화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과, 독일식의 사유화로 실업자가 폭증하고 북한 내 산업구조가 붕괴돼 막대하게 투입돼야 하는 사회복지비용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선택이 효과적일 지는 명확합니다. 북한 기업 지원 과정에서 다소간의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통일비용 절감을 위해 방향을 정확히 잡아야 합니다. 북한 내에 실업자가 폭증하면 통일 회의감 확산 등 사회적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북한 내 산업구조가 붕괴되면 이를 회복하는데 수십 년이 걸린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북한 지역이 경제적 자립기반을 마련하고 북한 지역 사람들이 역동성을 갖고 새로운 사회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을 때, 시간이 갈수록 남북의 격차가 줄어들고 통일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통일비용이 사회복지비용보다는 인프라 건설 등 경제발전에 우선적으로 투자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 지역 기업 재편을 전체적으로 총괄할 기관이 있어야 할 텐데, 남한에서 취약기업들의 구조조정과 회생 등을 지원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이런 작업을 맡길지 새로운 기관을 설립할지는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북한 기업 재편은 앞서 언급한대로 자본주의 경영 컨설팅을 포함한 ‘선 경영정상화’에 초점을 두고 이뤄져야 하는데, ‘캠코’가 이런 작업에 적합할지 새로운 기관 설립이 나을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북한 기업 재편 전반을 ‘캠코’나 새로운 기관이 담당하더라도 이는 중견,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것이고, 철강이나 항만, 항공, 철도 등 국가 중요 기간산업에 대한 재편 방안은 고위급의 경제협의체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또, 식당이나 미용실 같은 소규모 업체는 운영자에게 매각 또는 임대하는 방법이 고려될 수 있습니다.
 
북한 공장

북한 기업 보호 위해 초기에는 이중 가격 불가피

 
북한 기업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북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남한 제품이 북한 지역에 유입될 때는 관세 개념의 세금을 부과해 가격을 높게 해야 합니다. 질 좋은 남한 제품이 북한 지역에서 싸게 팔린다면 북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지역에서 남한 제품은 높은 가격으로 북한 제품은 낮은 가격으로 팔리게 해야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북한 제품이 팔릴 수 있고 그 제품을 생산하는 북한 기업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 가격 구조는 남북한 지역이 통일 이후에도 한시적으로 분리돼 남북 접경을 넘어가는 남한 제품에 별도의 세금을 물릴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남북이 완전 통합 단계로 나아감에 따라 관세의 수준을 낮춰가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지역의 제품이 시장에서 완전 경쟁하는 상황으로 가야 될 텐데, 통일 초기 북한 기업들이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여건만 충분히 갖춰진다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해가는 북한 기업들이 충분히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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