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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포퓰리즘'은 언제 많이 거론됐나요

[사실은] '포퓰리즘'은 언제 많이 거론됐나요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정책과 발언을 팩트 체크하고 있습니다. 취재를 하다 보면 요즘 정치권과 언론 보도에 유독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포퓰리즘'이라는 말입니다. 대선 정국 후보들 간 공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이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특이한 현상도 아닙니다. 선거 철이면 포퓰리즘이란 단어는 단골손님처럼 등장합니다. 포퓰리즘 때문에 국가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 같으면서도, 또 막상 시간이 지나면 쑥 들어갔다가, 또 선거 철이 다가오면 스멀스멀 다시 등장합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 팩트체크 <사실은>은 정치권과 언론 보도에서 포퓰리즘이란 말이 언제, 얼마나 자주 쓰였는지 데이터를 분석해 봤습니다. 우리가 포퓰리즘이란 말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짚었습니다. '정치의 시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번 설 연휴, 시청자분들과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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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철마다 등장하는 포퓰리즘


최근 10년 동안 언론 보도에서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얼마나 거론됐는지 살펴봤습니다. 보통 정치권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포퓰리즘이란 말이 얼마나 공론화되고 있는지 그 척도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분석 시스템에서 확인했습니다. 55개 주요 언론사 기사를 중심으로 2012년 1월부터 현재까지 통계를 냈습니다. 한 달 단위로 쪼개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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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이를 보시면, 일단 2012년 2월 한 달 동안 1,500건 가까이 거론됐습니다. 19대 총선 직전이었는데,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기사가 눈에 많이 띕니다.

상대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선거 철에 많이 거론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거 철은 선거가 있는 달을 포함해 이전 석 달로 정했습니다. 후보들이 공약 내놓고 경쟁하는 기간입니다. 자연히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공약에 대한 평가가 자주 이뤄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2012년 총선에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확 내려가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자주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선거 철로만 따져도 '증가 추세'입니다. 이번 대선은 2012년 총선 이후 포퓰리즘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선거로 규정 지을 수 있겠습니다.

왜 그런지, 역시 뉴스분석 시스템의 '연관어 분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최근 석 달간 포퓰리즘의 연관어를 워드 클라우드로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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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포퓰리즘의 연관어로 자주 나온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본 시리즈'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만큼은 아니지만 윤석열 후보 역시 연관도가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윤 후보의 공약 역시 포퓰리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윤 후보의 공약도 재정 확대 정책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층을 겨냥한 정책들이 많았습니다.

이재명, 윤석열

그만큼 후보들의 재정 확대,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함축돼 있습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포퓰리즘은,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근시안적 정책을 내놓는 정치 문화, 좀 더 구체적으로는, 복지에 경도돼 지키지도 못할 선심성 정책을 피며 시장주의 정신을 퇴색시키는 좌파 이데올로기 그 어디쯤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요


사실 포퓰리즘처럼 방만하게 쓰이는 단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포퓰리즘을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정도로 정의하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인기(Popular)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인기(Popular)가 아니라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됐습니다. '인기 영합주의'보다는 '대중주의'가 맞는 표현일 겁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사실은팀은 온라인 백과사전의 내용을 사실의 근거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포퓰리즘의 정의와 관련해 비교적 잘 정리돼 있어서 인용해보려고 합니다.
포퓰리즘은 민중의 의지를 강조하며, 민중을 엘리트와 대조시키는 정치적 입장을 말한다. …… 민중을 도덕적으로 선한 집단으로, 민중과 대치되는 엘리트를 부패하고 이기적인 집단으로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접근법이다.
Populism refers to a range of political stances that emphasize the idea of "the people" and often juxtapose this group against "the elite." …… A common framework for interpreting populism is known as the ideational approach: this defines populism as an ideology which presents "the people" as a morally good force and contrasts them against "the elite," who are portrayed as corrupt and self-serving.
- 위키피디아

즉, 정치는 오로지 민중의 것이며, 이를 방해하는 '기득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적대적 감정에 충만한 것이 포퓰리즘이라는 겁니다. 포퓰리즘은 명확한 선악 구분을 통해 체급을 키웁니다. 자연히 '누가 기득권인가', 나아가 그 기득권은 민중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치학계에서는 그 상징적 인물로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꼽습니다. 포퓰리즘이 최근 들어 많이 조명받게 된 계기는 트럼프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주류 정치에서 이탈돼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을 비판하던 정치권과 학계, 언론을 '기득권'으로 규정했습니다. 나아가, 그 기득권이 어떻게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방해하고 있는지 대해, 트럼프는 '정체성' 문제를 소환했습니다.

우리와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 대표적으로 히스패닉과 이슬람 세력 같은 타자들이 우리의 권리를 빼앗으며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기득권은 이런 타자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인권에 집착하고 있다, 정작 평범한 구성원의 삶을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기득권은 '악한 존재'들이며 선거를 통해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됐습니다.

이렇게 정체성을 소환하는 포퓰리즘은 전 지구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특히 민주주의가 발달됐다고 알려진 선진국을 강타하고 있는, 매우 트렌디한 문양입니다. 다만, 소환되는 정체성이 지역마다 다를 뿐입니다. 트럼프는 히스패닉과 이슬람 세력을 그 대상으로 삼았고, 유럽의 극우 정당은 주로 이슬람 지역에서 온 난민들을 공격했습니다. 프랑스의 마리 르펜, 그리스 황금새벽당, 영국의 독립당,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이 대표적입니다.

난민 자료화면

정반대 사례이기는 하지만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주목을 받았던 버니 샌더스 민주당 전 경선 후보 역시 포퓰리스트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는 경제력에 따른 '계급 정체성'을 기준으로 선과 악을 명확하게 분류한 뒤 기득권 심판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의 세계화>의 저자 존 주디스는 트럼프를 '우파 포퓰리즘'으로, 샌더스를 '좌파 포퓰리즘'으로 분류했습니다.
 

우리 시대 포퓰리스트는 누구인가


결국, 우리가 포퓰리즘의 대푯값으로 소비하고 있는 '인기 영합주의' 혹은 '선심성 복지'는 포퓰리즘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여러 층위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인기 영합주의' 내지 '대중에 대한 호소'라는 뜻으로 민중주의란 말을 사용한다면, 사실 이 용어는 엄격한 사회과학적 용어로 성립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인기에 집착하는 것이나 대중에 대해 호소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가들의 일상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물론 대공황기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정확하게 우리가 이해하는 민중주의의 범주에 속하는 정치가일 것이다.
- 강원택, <포퓰리즘 논쟁과 한국 정치의 선진화 방안>,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용역보고서, 2011년 12월, 42쪽.

'인기 영합주의'라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엘리트는 혜안을 발휘해 국기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대중은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돼 합리적 판단을 제대로 못해 내는 사람들이라는 시선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임감 가득한 기득권과 우매한 대중이라는 이분법을 전제하는, 매우 엘리트주의적 해석에 가깝습니다. 저희 사실은팀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렇게 우매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트렌디한 포퓰리즘의 정의를 따르자면, 대한민국 공동체 진정한 포퓰리스트는 누구일까요.

대한민국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을 손쉽게 악으로 규정해 왔던 사람들, 그렇게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증폭해 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포퓰리즘에 더 가까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진영 논리든 정체성이든 소환되는 기준이 다를 뿐, '우리'와 '그들'의 앞장서 구분 지으며 구성원들을 흥분시켰던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SBS 사실은팀은 단순히 사실과 거짓 판정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다양한 층위를 풀어내는 팩트체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SBS 사실은 치시면 팩트체크 검증 의뢰하실 수 있습니다. 요청해주시면 힘닿는 데까지 팩트체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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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 권민선, 송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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