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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흘 천하' 막 내린 검사장 공고 소동…그래서 중대재해는?

[취재파일] '나흘 천하' 막 내린 검사장 공고 소동…그래서 중대재해는?

숨가쁘게 돌아간 붕괴 현장…법무부, 중대재해 전문가 검사장 '깜짝' 공고

지난 17일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인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

 지난 17일 이른 아침 취재 장비를 챙겨 광주광역시 화정동으로 향했습니다. 참혹한 아파트 붕괴 사고 일주일째, 노동자 5명이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현장은 한눈에 봐도 급박했습니다. 추가 붕괴 위험 가운데 실종자 수색에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까지, 1분 1초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2022년도 검사임용 지원 안내' 법무부 공고

 비슷한 시각 290km 떨어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는 깜짝 발표가 있었습니다. 연일 광주 붕괴 사고의 심각성을 강조하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중대재해 분야 전문가를 대검 검사급, 그러니까 검사장으로 새로 뽑겠다며 이날 곧바로 공모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중대재해와 산업재해, 산업안전, 노동 분야에 실무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있는 인물을 선발 기준으로 내세웠는데, 결국 검찰 밖 인사를 검찰 고위 간부로 앉히겠다는 것으로 풀이되며 파장이 커졌습니다. '나흘 천하'로 끝난 검사장 외부 공모 논란의 첫 장면입니다.
 

"인사 하고 싶다" 장관 발언에 '술렁'…"알박기 시도"

 
"안 물어보셔서 제가 먼저 말씀드리면 대검 검사급 인사 하고 싶습니다.
중대재해와 관련된 전문성을 갖고 있고 관심이 높은 우수 자원을 한 번 뽑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지난해 12월, 출입기자 간담회) 
 

 박 장관이 처음 검사장 인사 운을 뗀 건 사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말 출입기자 간담회였습니다.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기도 전 장관이 먼저 예민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언급한 게 이례적인 데다 중대재해 전문가라고 특정까지 하면서 검찰 내부는 크게 술렁였습니다. 이미 내정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과 함께 이른바 친정권 성향 검사를 승진시키려는 포석이라며 하마평도 돌던 상황, 전례 없는 검사장 외부 공모 소식은 '코드인사'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전담검사나 수사관들을 모아 전담 팀을 꾸려줘도 참 도움 될 텐데….
이 비극을 기회로 삼아 엉뚱한 인사를 검찰에 알박기 하려는 시도는 아닐 테지요?"
- 정유미 광주고검 검사 (검찰 내부망 게시글)
"수사검사를 해 보지 않고 부장검사로서 결재 한 번 해보지 않은 채 검사장 업무를 수행한다는 건,
인턴을 거치지 않고 레지던트 전문의를 하는 것과 같다."
- 강수산나 인천지검 부장검사 (검찰 내부망 게시글) 

 당장 일선 검사들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수사 경험도 없는 외부 사람이 검사장 자리를 꿰차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검찰에 그리도 인물이 없느냐' 등등 이어진 성토 뒤에는 결국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으로 깔렸습니다. 정권 말에 임기도 정해지지 않은 검찰 고위 간부로 '우리 사람'을 꽂는 '알박기 인사'를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칫 검찰이 정치 기구화 될 수 있다는 우려와 맞닿습니다. 일선 수사를 지휘하고 책임지는 검사장을 외부 인사로 채울 경우, 과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고위 간부를 심어두고 정치권 입맛 따라 사건 수사를 처리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청법 제28조의2 ( 감찰담당 대검찰청 검사의 임용에 관한 특례
① 감찰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대검찰청 검사는 검찰청 내부 또는 외부를 대상으로 공개모집 절차를 통하여 적격자를 임용한다.
⑤ 감찰담당 대검찰청 검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연임할 수 있다.

 검찰청법상 대검 검사급의 외부 공개모집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감찰 업무 담당에만 한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 검찰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그는 "제식구 감싸기 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적어도 감찰 업무를 맡는 인사는 외부인 선발이 가능하게 했지만 임기를 2년으로 명시하는 등 견제 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감찰 관련 별도 예외 조항으로 떼어둔 것 자체가 그외 수사 지휘 라인 등에 대해선 정치화 리스크가 있으니 외부 공모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번엔 중대재해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앞으로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야별로 외부 수혈을 하는 근거가 될 수 있으니 선례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지적 역시 공감대를 샀습니다.
 

검찰총장 반발에 '긴급 회동'…나흘 만에 전면 백지화

 
"총장님은 법무부에 이와 같은 대검검사급 검사 임용은 
1) 검찰청법 등 인사 관련 법령과 직제 규정 취지에 저촉될 소지가 있고, 
2)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3) 검찰 내부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사기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명시적으로 전달했습니다.
- 지난 19일, 대검찰청이 일선 고·지검장 등에게 보낸 공지 

김오수 검찰총장도 반발 기류에 가세했습니다. 일선 간부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법무부에 반대 의견을 '명시적으로' 전했다고 강조한 겁니다. 김 총장은 이번 공모 계획이 관련 법규에 저촉될 소지가 있고, 검찰 내부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법무부를 향해 날을 세웠습니다.
 
"총장께서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민해 보겠습니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지난 20일) 

 야심차게 공고 절차를 개시했던 박 장관이 지원자 서류 마감도 하기 전에 전면 백지화 결정을 내린 건 검찰총장이 반대 의견을 천명한 지 하루 만이었습니다. "총장의 걱정을 이해한다"는 발언 몇 시간 뒤 김오수 총장과 '긴급 회동'을 가진 끝에 외부 검사장 공고 계획 전면 철회가 결정됐습니다. 대신 외부 전문가가 이끄는 중대재해 자문기구를 대검에 설치하기로 두 사람은 합의했습니다.

박범계, 검찰
 
 결론을 제외하고 두 사람 사이 정확히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장관의 고민이 깊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일부 고검장에게 직접 전화해 의견을 들었다니 말입니다. 이번 회동도 박 장관이 먼저 총장에게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번 마음 먹은 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정이라는 박 장관 개인에 대한 안팎의 평가를 배제하더라도, 정부 부처가 공식적으로 시작한 인사 모집 절차를 며칠 만에 통째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쉽지 않았을 일입니다.
 

뒤집힌 결정 왜…"정치인 DNA가 한몫"

 그래서 이번 결정 배경에 더 관심이 쏠렸습니다. 첫째로 거론된 게 검찰 내부의 강한 반발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반발을 박 장관이 예상 못하지 않았을 터,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법무부 장관이 지닌 3선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인 DNA‘입니다. 진영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대형 중대재해 사고를 계기로 '자기 정치'를 시도하려다 실책하고는 급히 출구 전략을 찾았다는 겁니다.
 
 애초에 사전 합의된 '팀플레이'인지 아니면 장관의 '단독 드리블'인지, 외부 공모를 두고 후자에 무게를 두는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장관이 검사장 인사 의지를 밝힌 뒤 청와대가 이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보도는 일찍부터 이어졌습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무리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단행하면 논란만 키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른바 ’추-윤‘ 갈등이 남긴 트라우마가 아직 생생한데 검찰총장과의 충돌을 재현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더구나 외부 검사장 공모 계획을 전격적으로 밝힌 그날, 청와대는 막 김영식 신임 민정수석비서관 내정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최종 인사권을 쥔 대통령과의 핵심 소통 창구 민정수석이 자리도 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 장관은 이에 "청와대와 교감 없이 했겠느냐"며 "다만 인사 논란보다 사고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지만, 뜨뜻미지근한 청와대 반응에 거센 검찰 내부 반발, 그리고 외부인 검사장이 필요한 설득 논리를 탄탄히 갖추지 못했던 게 패인이 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별다른 소득 없이 갈등만 일으켰다가 나흘 만에 일단락된 검사장 외부 공모 소동의 책임에서 박 장관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중대재해는?

지난 22일 광주 화정동 붕괴 사고 현장을 찾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

 광주 붕괴 현장에 감히 미치지 못하지만 역시 숨 가쁘게 돌아간 지난 나흘, 외부 검사장 공고 논란은 일단 마무리되는 모양새입니다. 이제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강조했던 중대재해 예방 말입니다. 박 장관의 그간 발언 중 의미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숱한 희생과 개선 노력에도 중대재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그간의 접근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보완하는 작업은 분명 필요합니다. 이번 사고 전부터 중대재해를 자주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박 장관과 법무부도 진정성을 갖고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지난해 광주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대형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았던 박 장관은 공고 계획 철회를 밝힌 직후 곧바로 화정동 붕괴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피해자 가족을 만나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며 철저한 재발 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발표한 총장 직속 전문가 자문기구 설치가 꼬리를 내린 모양새가 된 장관의 체면치레를 위해 덧붙인 땜질식 대책이 아니길 바랍니다. "법무부 장관이 이번 사고를 이용해 자기 광만 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 재발 방지 약속하고 반 년 만에 또 사고다. 더 이상의 말 잔치 쇼는 보고 싶지 않다." 현장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의 호소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지 지켜보겠습니다. 인사 논란은 시간이 흐르면 잊힐지 몰라도, 차갑게 식어버린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은 결코 잊히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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