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속도에만 집착한 미국…살아남기 위한 'mRNA 몰아주기'
mRNA 백신 기술은 비유하자면 속도 빠른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신 디자인을 갖추고 속도까지 엄청나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탑승인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항상 공급은 부족했고, 미국은 국방물자 법까지 동원하며 백신을 쟁여두고 백신 미국 우선주의를 펼쳤습니다. 사실 사람들을 많이 태우려면 좀 흔들려도 버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혁신과 속도만 집착하다 보니 그럴 경황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변이가 계속 출현하면서 인류를 위협했기 때문에 정신이 더 없었던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출현한 지 2년이 지나면서 옛날 기술을 활용한 대형 버스가 세상에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옛날 버스 같은 게 코르베백스, 노바백스 같은 단백질 재조합(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백신입니다. 이 기술은 1980년 대 B형 간염 백신을 만드는데 활용돼서 인류에게 친숙합니다. 보관과 운반이 편하고 무엇보다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게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지식 재산의 부가가치를 인정해달라며 가격을 높여서 매기면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코르베백스는 이런 움직임에 완전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연구팀이 백신에 대한 특허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마치 이 버스는 '공짜 버스'니 아무나 올라타서 지옥 굴부터 탈출하자고 외치는 버스 기사를 보는 느낌입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그동안 스포츠카는 탈 생각도 못했는데, 어디서 나타난 공짜 버스인지 어리둥절한 상황입니다.
보드카 회사 종잣돈으로 시작한 백신 개발…"우리는 돈 원하지 않는다"
그가 이끄는 베일러 의대 백신 연구팀은 사실 사스 전염병 때부터 백신을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제품이 나오려고 했을 때 이미 사스의 위협은 사라졌습니다. 몸 만들어서 경기장 들어갔더니 이미 게임이 끝난 셈입니다. 하지만 그 기술은 고스란히 이번 코로나 백신에 적용됐습니다. 하지만 백신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개발 비용을 조달해야 했지만, 대선 전에 나올 백신을 찾던 미국 정부에 코르베백스는 적절한 지원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외면을 받은 베일러 의대팀을 도와준 건 민간 자선 기업들이었습니다. 텍사스의 보드카 회사가 1백만 달러를 지원한 게 종잣돈이 됐습니다.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코르베백스는 미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일단 결승선을 넘었습니다. 지난달 28일, 인도 정부가 긴급 사용 승인을 내리면서 인간 세상에서 접종을 시작할 수 있는 백신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미 인도 제약사 바이오로지컬 E는 1억 5천만 회 분량의 백신을 출고해 준비를 마친 상황입니다. 이 제약사는 한 달에 백신을 1억 회씩 생산할 예정입니다. 인도 정부도 3억 회 사전 구매를 마친 상태입니다.
화이자, 모더나는 올해만 백신 판매로 111조 원을 벌어들일 거라는 전망이 나와 있습니다. 조 단위 돈이 왔다 갔다 하는 백신 시장에서 특허 포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호테즈, 보타치 교수에게 정말 돈을 한 푼도 못 받는 게 맞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테즈 교수는 "우리는 돈 벌고 싶지 않다"고 응수했습니다. 그는 백신을 하루 빨리 전 세계가 접종해 이 끔찍한 팬데믹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특허 없이 백신을 내놓은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보타치 교수는 "백신 불평등이 계속 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설명했습니다. 부자 나라 접종률은 76.8%지만, 가난한 나라는 8.9%에 불과하다는 건 통계적 수치로 잡히는 현황입니다. 아프리카는 접종률이 여전히 10% 미만이고. 인구가 2억 명이 넘는 나이지리아 접종률은 2.5%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백신 공급은 한숨 돌렸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여전히 백신이 없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들이 감염되면서 변이가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인류가 팬데믹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미 델타 변이, 오미크론 변이에 크게 당하면서 인류가 충분히 겪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담대한 생각은 정부 단위의 의사 결정에서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든 정부도 전 세계 백신 접종을 강조했지만, 미국 제약사로부터 백신을 사서 기부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 미국 정부는 10억 회 분량의 백신을 기부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여전히 천문학적인 예산을 백신 회사에 지급하면서 백신을 사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건 미국 내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지적했던 부분입니다. 지난해 톰 프리든 전 CDC 국장도 우리나라가 백신 허브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미국 외 국가에서 현지 생산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mRNA 제약사들은 몰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는데도, 기밀을 강조하면서 기술을 틀어쥐고 꽁꽁 숨겨놓은 상황입니다. 바이든도 사실 백신 생산을 미국 내 일자리 문제로 접근하는 측면이 컸습니다. 지난 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 내 백신 생산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는 의도를 숨김없이 발설하기도 했습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바이든이 최신 mRNA 기술을 빼서 중국에 주려고 한다는 선제적인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었고, 미국 정부는 백신사들에게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대신 하던 대로 기부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화이자, 모더나 mRNA 백신사들의 공급은 수요를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 코르베백스를 만드는 인도 제약사는 한 곳에서만 한 달에 1억 회를 생산 계획으로 잡았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기부한다고 말은 했지만, 백신을 주면서 미국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의도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물론 중국처럼 미국이 노골적으로 백신을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삼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호테즈 교수는 개략적인 계산만 해도 백신이 얼마나 필요한지 나온다고 설명해줬습니다. 백신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는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10억 명, 동남아시아 빈곤국가 10억 명, 남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일대 10억 명을 더하면 30억 명이라는 것입니다. 2회 접종을 감안하면 적어도 60억, 부스터까지 생각하면 90억 회 백신이 필요하다는 게 그냥 산수로 나옵니다. 미국 정부가 올해까지 기부하겠다는 10억 회에 다른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다 합쳐도 올해 전 세계 백신 부족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호테즈 교수는 mRNA 백신이 너무 잘 나왔고 그 효능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mRNA에만 의존하기에는 인류 전체의 위험 요소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단백질 재조합 방식의 옛날 방식 백신도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포츠카로만 사람을 실어 나르기 어려우니 버스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이었습니다.
값싸고, 안전성 높고, 운반 편한 '옛날 백신'…검증 작업이 관건
다만 코르베백스는 아직까지 인도에서만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직 인도 제약사가 진행한 임상 결과가 공개되지 않아 학자들 사이에서 검증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만 이 과정은 시간 문제이기는 해서 조만간 전체 자료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국제보건기구, WHO가 코르베백스의 유용성과 안전성에 대한 검토 작업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WHO에서 긴급사용승인 도장을 찍어준다면 코르베백스는 글로벌 유통이 가능한 백신으로 한 번 더 승격될 것으로 전망입니다. 호테즈 교수는 WHO와 긴밀하게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과 파트너 관계 원해…제조 과정에 대한 자료까지 공개"
유엔개발기구가 설립을 주도해 우리나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 제롬 김 사무총장에게도 문의를 해봤습니다. 김 사무총장은 예일대 출신의 미 육군대학 의대 교수를 지낸 인물로 백신의 특성은 물론 미국 내 백신 전문가들을 두루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백질 재조합 방식의 백신이 오래된 방식이라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접종할 때 안심할 수 있고, 백신의 효과가 통상적으로 더 오래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관심을 보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백신 글로벌 허브를 목표로 백신 생산에 대해 정부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상황입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이 생산하는 다양한 백신 가운데 하나로 단백질 재조합 방식의 코르베백스를 넣는 것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 같습니다. 국내 전문가 가운데는 WHO에서 긴급사용 승인이 나올 때쯤에는 우리 기업 가운데 일부 희망자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는 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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