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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CNN은 왜 한국에 패션회사를 차렸을까

어쩌다 뉴스 라이선스 패션편
큼지막한 빨간색 '코닥' 로고와 빗금무늬가 박힌 노란색 후드 티. 소위 '똑딱이' 좀 찍어봤다 하는 사람이면 대번에 필름 포장지가 선명하게 떠오르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교 이름인 '예일(YALE)' 글씨가 가슴팍에 새겨진 맨투맨 티셔츠도 요즘 꽤 거리에서 자주 보이네요. 예일대학교 학생들이 이렇게나 늘었냐고요?

'요즘에는 별 게 다 옷으로 나온다' 싶으시겠지만 노란색 테두리 직사각형 로고 옆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글자가 새겨진 바람막이는 어때요? 이젠 웬만한 백화점마다 입점해 있는 '디스커버리' 겨울 패딩은요? 이 옷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전부 한국 패션 브랜드 제품이라는 겁니다. 소름. 외국에서도 보셨다고요? 한국 패션 회사가 수출한 제품입니다. 한 번 더 소름.

이젠 CNN 로고가 새겨진 '버킷 햇'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자주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영어공부 하겠다며 호기롭게 외국 뉴스 틀어보신 분들, 맞습니다. 그 CNN이에요. 작년부터 CNN 로고가 박힌 옷도 팔고 있거든요. 누가? 한국 패션 회사가요.

이번 <어쩌다> 뉴스에선 패션 업계의 강자로 떠오른 'K-라이선시(계약한 상표권으로 제품을 생산·유통하는 업체)'에 대해 다뤄봅니다. 미국 케이블 뉴스 채널 CNN은 어쩌다 본토에서도 안하는 어패럴(패션) 제휴 사업을 한국에서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이런 옷들을 과연 누가 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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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워너브라더스, HBO 등과 함께 워너미디어 그룹이 소유한 미국 케이블 채널입니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CNN은 24시간 뉴스를 공급하는 전문 채널로 1980년 설립됐습니다. 전 세계 분쟁 지역과 전쟁터에서 전하는 생중계 뉴스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하며 현재도 국내 여러 언론사와 제휴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어디든 간다"는 취지의 "Go there"이 회사의 슬로건입니다.

CNN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패션 브랜드를 창업한 회사는 업력 1년 미만의 스톤글로벌입니다. CNN 본사를 대상으로 수개월의 설득 끝에 6년간 라이선스 사용 계약에 성공했고, 지난해 6월 온라인에 처음 브랜드를 선보였습니다. 현재는 오프라인으로도 전국에 13개 매장을 두고 있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는 아웃도어 품목이 주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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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글로벌 관계자는 "뉴스만이 아닌 CNN이 갖고 있는 다큐, 음식, 테크 등 여러 다른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브랜드 가능성을 보고 스토리를 입힐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올해 S/S 시즌에 준비하고 있는 라인업 중 하나엔 CNN이 만드는 콘텐츠로 바로 연결되는 QR 코드가 삽입될 예정입니다. 멸종 위기에 대해 다룬 환경 콘텐츠나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등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진 CNN 콘텐츠를 패션으로 확장하겠다는 겁니다. 콘텐츠에서 받은 영감을 디자인에 반영하고, 동시에 패션을 통해 해당 콘텐츠를 더 알리는 상호 작용이 곧 '스토리텔링'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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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이 라이선스 계약으로 패션업계에 진출한 건 전 이번이 세계 최초입니다. CNN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여러 차례 성공을 거둔 한국 라이선스 패션 산업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같은 대중화된 패션 브랜드도 모두 해외 미디어 콘텐츠 기업의 라이선스를 국내 패션 기업이 사들인 경우입니다.

이 분야 '갓생'으로 꼽히는 회사는 F&F입니다. 1997년 사실상 국내 최초로 비패션 분야 라이선스 브랜드인 MLB를 도입했습니다. 업계에 있는 이들은 F&F를 '라이선스 어패럴 분야의 삼성'으로 부릅니다. MLB의 성공 이후 미국의 자연탐사보도 채널 '디스커버리'의 라이언스로 시작한 어패럴 사업도 연타 성공하면서 2019년엔 중국에도 진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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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인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국내 패션 섬유 업계에서도 F&F를 필두로 하는 라이선시들의 '선방'은 눈에 띕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거래소 및 코스닥에 상장한 패션업체 42곳의 2021년 3분기 실적 현황을 봐도, 라이선스 패션 어패럴 회사들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감률은 꾸준히 20% 이상의 실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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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이름이 알려진 라이선스 어패럴 브랜드 품목들은 '아웃도어 패션'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디스커버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모 브랜드가 자연, 환경, 탐사 등 야외 활동 다큐멘터리 채널이기 때문에 상표 이미지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까닭도 있지만, 주 소비자층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이른바 '출근복'의 개념이 바뀌면서 정장 수요가 부쩍 줄었습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11년 6조8668억 원이던 국내 남성정장 시장은 2020년 3조6556억 원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편하지만, 격식 떨어져 보이지 않는 옷. 그러면서도 어느 공간에서나 잘 어울리는 옷에 대한 수요가 이른바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 시장의 확대를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라이선스 어패럴 업계의 후발 주자들도 주저 없이 이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미국 필름 회사 코닥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2019년 코닥 어패럴을 세운 하이라이트브랜즈도 이 대열에 참여한 국내 회사입니다.

10-20대들을 타깃으로 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 맨투맨, 티셔츠 등 제품을 테스트마켓 형태로 선보였는데, 짧은 시간 안에 컬렉션 전체가 '완판'되는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어패럴 론칭 뒤 2020년 매출액 170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 840억 원을 목표 매출액으로 설정했습니다.

하이라이트브랜즈 관계자는 "10-20대 고객들을 중심으로 타깃을 잡은 건 화제성 때문"이라며 "원색의 브랜드 컬러를 활용한 제품들이 소위 '사진빨 잘 받는' 옷으로 SNS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금세 유행을 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으로 확대되면서 고객층의 저변도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에 대한 애착과 추억이 있는 사람들, 소위 '복고' 열풍 속에서 오래된 것을 고집하는 회사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가슴팍에 '코닥'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옷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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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에 응한 업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있습니다. 라이선스 사업의 성패는 브랜드에 대한 공부에 달렸다고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 브랜드의 로고 디자인만 상품에 붙여서 판매하는, 이른바 '근본 없는 로고 플레이'만으로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단지 보기 좋게 제품을 포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 온 라이선스의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또 적극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이벤트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령 코닥어패럴은 '필름' 제조사라는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독립 영화 제작자들을 발굴하기 위한 단편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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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가치 소비'의 대상으로 합격점을 받기 위한 노력이랄까요? 자신이 어떤 걸 소비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고, 또 어떤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흡수하려는지 잘 알고 있는 젊은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다년간 쌓아올린 유산을 최소한 소비자들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패션 컨설팅업체 피에프아이엔 유수진 대표는 "젊은 구매자들에게 패션은 이른바 자신의 가치나 지향을 보여주는 '굿즈'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는 이들에게 제품을 구매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구매자들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대신, 자신이 기존에 생각한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이나 상품이 출시되면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회사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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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과 라이선시가 함께 기존 브랜드에 새로운 가치를 덧입히고 발굴하는 공생관계가 된다는 점도 패션업계에 신규 진입하려는 이들에겐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효율이 좋기 때문입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모기업의 유산과 역사를 활용할 수 있는 브랜드 마케터들의 '혜안'이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뉴스 미디어, 스포츠 경기 같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필름 회사, 유명 사립대학까지. 대중들에게 각인된 그 어떤 것이라도 패션이 될 수 있다는 것. K-라이선스 업계와 K-가치 소비자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 이해하기 힘든 '요즘 것들'에 대한 당신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어쩌다> 뉴스에서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풀어드립니다. cho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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