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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재명과 윤석열, 너무 태연해서 팩트체크했습니다

[사실은] 이재명과 윤석열, 너무 태연해서 팩트체크했습니다
2019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선거법 개정안 표결 처리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선거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옛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 곳곳을 봉쇄했습니다. 의장이 본회의장에 입장해 개회 선언을 하면 바로 표결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희상 의장은 1시간 반이 지나 본회의장에 입장했지만, 의장석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한국당 의원들의 봉쇄를 뚫을 수 없었습니다. 질서 유지권이 발동됐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문 의장은 다른 자리에 1시간 정도 앉아 있다 결심한 듯 한국당 의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의장석에 올라갔습니다. 10초면 오를 의장석까지 10분이 걸렸습니다.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 선거법 통과 당시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 : 의사일정 제1항,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계속해 상정합니다.

의장이 표결 처리를 시도하자, 의장석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심재철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 : 이게 뭡니까, 지금! 선거법 이렇게 날치기하는 거예요, 지금? 선거법 날치기잖아요!

한국당 원내대표는 끌려 내려갔고 곧장 선거법 개정안 표결이 시작됐습니다.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 : 질서 유지해주세요. 단상에서 내려가 주세요.

결국, 회의 시작 6분 만에, 재적 167명에 찬성 156표로 선거법 개정안은 통과됐습니다. 국회 회의록에는 그날의 거친 말들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민주주의 죽었습니다!」 하는 의원 있음)
(「당신이 죽였어!」 하는 의원 있음)
(「천벌 받는다, 천벌!」 하는 의원 있음)
(「악질, 악질 역적!」 하는 의원 있음)
(「잘 먹고 잘살아라!」 하는 의원 있음)
- 20대 국회 373회 본회의 회의록, 2019년 12월 27일.

치열한 몸싸움 끝에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의원 선거의 룰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이 적어도 정당 득표율을 많이 받으면, 기존보다 더 많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챙길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작은 정당에게 유리하고 큰 정당이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선거법이 통과되자 한국당은 '위성 정당'으로 응수했습니다. 자기는 비례대표를 내지 않고, 작은 정당 만들어서 여기에 비례대표 후보를 몰아주는 겁니다. '미래한국당'이었습니다. 물론, 선거 끝나고 없어진 정당입니다. 당시 민주당도 여차저차 계산기 두드려보니 그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비례 의석 상당수를 한국당에 넘겨줘야 할 판이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위성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더불어시민당입니다. 역시 선거 끝나고 없어졌습니다. 위성 정당이 민주주의 정치 질서를 교란시켰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위성정당

당시 선거법 개정안에는 다른 내용도 담겼습니다.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겁니다. 만 18세 선거권은 자유한국당이 강하게 반대해 왔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대가 낮을수록 보수 정당의 지지율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묶여 법안은 통과됐고, 지난 21대 총선부터 만 18세 선거권이 보장됐습니다. 당시의 진통이 무색하게, 제도는 별 탈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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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습니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내건 공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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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지난 총선 당시, 당시 자유한국당이 꼼수로 위성 정당을 창당했고, 맞대응하기 위해 민주당도 위성 정당을 만든 사정이 있다. 민주당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소수 정당을 위한 입법이 되레 소수 정당의 기회를 박탈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이른바 '위성 정당 방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작은 정당들의 국회 진출을 도와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것이 원래 취지였습니다. 방식이 좀 복잡합니다. 지역구 의원은 별로 배출하지 못해도 비례 대표 득표율이 높은 정당의 경우, 계산법에 따라 비례대표 몫을 더 줍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당시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후보 없이 비례 대표만 내는 위성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거대 정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어서, 소수 정당의 몫을 얼마나 박탈했을까요.

일단 지난 총선, 준연동형 비례제가 적용된 결과, 더불어민주당 계열(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포함) 180석, 당시 미래통합당 계열(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 포함) 103석, 정의당 6석을 차지했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기 전, 그러니까 지지난 총선의 비례대표 배분 규칙을 따랐으면 어땠는지 계산해 봤습니다. 민주당, 통합당이 각각 위성 정당의 득표율을 그대로 받았을 때로 가정했습니다. 민주당 181석, 이번보다 1석 더 얻고 통합당 102석, 1석 줄었습니다. 정의당은 같았습니다. 선거제도 바꾸나 안 바꾸나 의석수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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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를 보시면 두 거대 정당이 위성 정당 안 만들었을 때의 경우의 수도 계산했습니다. 두 당 모두 당시 위성 정당의 비례 대표 지지율을 그대로 가져갔다면, 민주당은 지금보다 11석, 통합당은 7석 손해입니다. 대신 정의당 8석을 포함해 작은 정당들의 몫이 커졌습니다.

결국, 두 거대 정당은 위성 정당을 통해 작은 정당의 의석수 18석을 차지한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전체 의석수의 6%에 영향을 준 셈입니다. 거대 양당 구조에서 6%는 캐스팅보터로 손색이 없는 의석수인데 이걸 두 거대 정당이 가져가 버렸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위성 정당 문제부터 손 봐야 한다는 이재명 후보의 주장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공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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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는 지금의 만 40세인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35세이고 프랑스는 18세로, 우리나라도 지금보다는 낮춰야 한다. 개헌 사항이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 윤 후보가 말한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은 헌법 67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헌법 제 67조>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미국과 프랑스의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을 확인했습니다. 조사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의 피선거권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위키피디아와 같은 온라인 백과사전에 정리가 돼 있기는 하지만, 다소 오차가 있어서 각 국가 헌법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팩트북'을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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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윤 후보가 말한 대로, 미국은 35세, 프랑스는 18세입니다. 조사 가능한 21개국 전체로 보면, 35세가 11개 국가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40세입니다. 기계적으로 평균을 내보면 36세로, 우리의 대통령 출마 연령이 높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청년들의 정치적 요구가 잘 반영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윤석열 후보의 말대로 국가 최고 지도자의 피선거권을 낮추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클 겁니다. 개헌 사항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치적 아젠다 차원에서 충분히 고민해 볼 공약이라고 판단합니다.

본회의 표결 문의장 국회의장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오늘 팩트체크는 공약 그 자체보다, 공약이 탄생한 맥락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2019년 12월 27일, 더불어민주당과 당시 자유한국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만18세 선거권을 핵심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자유한국당이 위성 정당 창당을 예고했음에도 밀어붙였습니다. 위성 정당이 현실화되자 민주당 역시 위성 정당을 만들어 대응했습니다. 진통 끝에 통과된 선거법이 되레 민의를 왜곡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는, 태연하게, 위성 정당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위성 정당 방지법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때 우리도 잘못했다"는 사족이 전부였습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그리고 이전의 새누리당은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데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1987년 개헌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협상이 있었지만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후보는, 태연하게, 훨씬 더 진일보한 공약을 내놨습니다. 선거권 연령을 너머, 아예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방안이었습니다.

두 후보 모두, 과거와 손쉽게 단절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태연하게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여러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겁니다. 많은 언론이 보도했지만, 이재명 후보의 '위성 정당 방지법' 공약의 경우 위성 정당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정의당에 대한 구애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후보 역시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공약은 최근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청년층에 대한 '굳히기' 전략으로 해석됐습니다. 두 후보 모두 "그 때 나는 국회에 없었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선거 정국에서 두 후보는 당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과거와의 단절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스스로의 과거와 너무나 쉽게 단절해버리는 정치권의 풍토, 2년 뒤 아무 일 없었던 듯 '결단'이름으로 태세 전환하는 관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분명한 것은 2019년 12월 27일, 우리 사회는 지금의 정치 공약 하나로 상쇄될 수 없을 만큼, 꽤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는 사실일 겁니다.

저희 사실은팀은 이번 대선 기간, 후보들의 말과 정책을 팩트체크하고 있습니다. 시청자 분들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서 SBS 사실은 치시면 팩트체크 검증 의뢰하실 수 있습니다. 요청해주시면 힘닿는 데까지 팩트체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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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 권민선, 송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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