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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길, 책을 만나다 ⑧ 굽이치는 바람이여! 억새여! - 영남알프스 '하늘 억새길'

멀리 신불평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에 영축산이 있다.

또,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공연히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목이 멘다. 그러다가 눈망울에, 목구멍 깊숙이 자리 잡은 그리움은 또 어디론가 떠나라고 등을 떠밀며 재촉을 한다. 그리움은 늘 먼 곳에 있는 양 말이다. 먼 그곳의 길에서 만나는 눈물 같은 쑥부쟁이며, 풀잎에 앉은 이슬방울이며, 산을 넘어가는 구름들을 떠올릴라 치면, 아! 설사 또 다른 그리움에 눈시울 적실지라도 떠남은 그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무심히 어느 산자락을 걷는다는 것은 무시로 다가오는 그리움들을 해소하는 과정이면서, 한편으론 소환되는 또 다른 그리움으로 아릿한 통증을 깨닫고, 그래서 더러는 울컥해지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것이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든, 어린 시절의 소소한 추억이었든, 무언가 소중한 것을 삶의 여정 뒤편에 두고 온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지나온 길의 저편을 서성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가득 억새들의 유혹이 끈덕지다.

그런데, 또 가을이다.

코스모스가 하염없이 손을 흔들 때만 하더라도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구절초며 벌개미취가 여린 색조로 물든 얼굴을 들어 아는 체를 하고, 억새가 빛살을 받아 하얗게 부서지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것들은 외면하기 힘든 치명적인 유혹이다. 근데 이런 유혹에는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주는 것이 가슴 따스한 이의 마음가짐이 아닐 것인가. 게다가 하늘마저 저리도 푸르고, 바람의 속삭임은 또 얼마나 끈덕지고 달콤한가. 그러니 유혹에 이끌려 배낭 하나 둘러매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성 싶다.

가끔은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질 때가 있다. 가을날에는 더욱 그렇다. 이해인 수녀께서 그러셨듯이 '가을이 아름다운 건 구절초, 마타리, 쑥부쟁이가 꽃으로 피었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론 '눈물 가득 고여 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굳이 그대가 누군지는 묻지 마시라. 길 위에 서면 그대는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반기어 안길 것이니...
이른 새벽, 배내고개를 시작으로 산을 오른다.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


그렇게 이른 새벽, 영남 알프스의 '하늘 억새길'을 걸었다.

늦은 밤, 먼 길을 달려온 버스는 새벽 5시쯤 비몽사몽의 사람들을 기어이 산 아래에 부려놓는다. 에고! 아직도 사위는 어둑어둑한데. 어찌 산을 오르라 하는지... 비록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쏟아지는 하품과 한숨까지는 어쩌지를 못한다.

영남알프스는 백두대간 중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솟구쳐 1,000m이상의 산들로 이루어진 9개의 산의 무리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영남 알프스의 골짜기는 깊고 산세는 수려하면서도 거칠다. 얼음골이며, 저승골은 이름만으로도 아찔하고, 험하기로도 남부럽지가 않다.

신불평원의 억새가 산객을 맞는다.

그중에서도 영남알프스를 돋보이게 하는 건 아무래도 억새다. 산의 8~9부 능선 곳곳에 펼쳐진 광활한 억새평원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절경이기 때문이다.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의 60여만 평의 신불평원이 그 중 으뜸이라면, 간월산 아래의 간월재, 천황산과 재약산 사이에 걸쳐 있는 사자평원, 그리고 고헌산 정상 부근의 억새밭까지 영남알프스는 억새의 낙원이다. 그래서 영남알프스를 두루 아우르며 이어지는 길의 이름도 '하늘억새길'이다.

하늘억새길은 모두 5개 구간으로 나뉘어, 1코스인 간월재를 시작으로 신불산, 영축산, 재약산, 천황산을 거쳐 다시 간월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보통 걷기길이라 하면 산기슭의 둘레길을 떠올리지만, 하늘억새길은 주로 능선 구간을 걷는다. 게다가 영남알프스의 억새를 즐기는 데 주안점을 둔 코스라 능선이 부드러워 산행이 수월하다. 전체 거리는 30km 남짓으로, 완주에는 대략 16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일부 산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틀은 걸어야 완주가 가능하다. 그래서 백패킹을 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곳 역시 영남알프스다.

구절초가 산을 오르는 이들을 맞고, 또 보낸다.

물안개,
산을 넘다


배내고개 등산로 입구를 시작으로 산을 오른다.

배내고개에서 배내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은 가파르다. 새벽부터 물기 머금은 찬바람에 두어 차례 얻어맞아서인지 그나마 정신은 들었지만, 발걸음은 더디고 아무래도 마지못해 오르는 여정이다. 그래도 다행은 길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어 오르막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 외에는 길이 무난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산객을 맞이할 치장준비로 새벽부터 바빴을 구절초 여럿이 마중까지 나와 미소로 맞아주니 그건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다.

그런데 '배내고개 오두메기'라는 이름을 지닌 이 고개가 품고 있는 사연이 눈물겹다. '오두메기'는 상북 거리오담(간창, 거리 하동, 지곡, 대문동, 방갓)에서 오두산(鰲頭山) 기슭을 감고 돌아 배내고개를 잇는 우마고도를 이르는 말이다. 배내고개는 일명 '장구만디*'로도 불리는데, 제대로 된 길조차 없던 시절에 기러기처럼 사시사철 어딘가를 떠도는 장사꾼들이 근동에서 가장 큰 장터인 언양장으로 가자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라고 한다. 등에 진 짐들도 버거운데, 소까지 몰고 이 고개를 넘어간다고? 상상만으로도 숨이 차다.
(*만디 : '마루'의 경상도 사투리. 산만디=산마루)

흐린 날씨는 또 다른 장관을 선물하니, 물안개의 행렬이다.

바람이 눅눅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새벽 산행을 하면서도 일출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많이 아쉬웠다. 날이 새나보다 했더니 여명은 구름 밖 가장자리만을 물들이다 이내 훤해지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흐린 날씨는 또 다른 장관을 선물하니, 물안개의 행렬이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그 정체조차 모호한 솜털 같은 무리들이 바람까지 이끌고(?) 산을 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여기저기서 터지는 탄성이며, 카메라 셔터 소리는 자동이면서 즉각적이다. 그러든 말든 안개의 행렬은 기어이 길을 덮치고, 사람들은 안개 속에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그런데 상쾌한 민트향이 입 안에서 오글오글 터지듯 얼굴에 닿으며 스러지는 안개가, 오! 상쾌하다. 새벽 산행의 피곤함마저도 앗아가는 고마운 약탈자였으니, 산행의 시작치고는 훌륭하고, 또 위로가 된다.

흐르는 안개 무리에서 도망 나와 풀숲에 숨은 게으른 이슬방울들의 아롱대는 모습은 또 어떤가. 걸음은 저절로 멈춰지고 눈인사는 당연하다. 스러질까 차마 만지지도 못한 채로 그저 바라만 볼뿐임에도 그 모습이 참으로 고와서 가슴이 시릴 지경이다. 멍하니 바라보다 불에 덴 듯 놀라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러보지만 카메라의 렌즈는 눈이 보았던 그 모습을 끝내 담아내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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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 맺힌 이슬이 참으로 고와서 가슴이 시릴 지경이다.

'죽도 살도 못해
이 골짝에서 살았제'


물안개에 홀려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른 채 배내봉(966m)에 닿는다. 배내봉 정상에 서자, 무시로 산을 넘는 운무의 행렬이 아득하다. 수줍은 듯 보일락 말락 시스루의 교태인 양 산객을 설레게 하는 운무의 행렬이다.

간월산 까지는 2.6km, 산의 등을 딛고 운무를 거느리며 간월산으로 간다.

길은 숲속으로 이어지다가 등성이로 빠져나오기를 여러 번,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라는 '선짐이질등'에 이른다. 지고 있는 짐을 그대로 어깨에 짊어진 채로 쉬었다고 해서 선짐이질등이다. 산과 산 사이의 오목한 터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바로 배내고개며 선짐이질등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사는 산간오지 사람들에게 고개란 징글징글한 삶의 증표였다.

산간오지 사람들에게 고개란 징글징글한 삶의 증표였다.

산 아래에서 옹기종기 땅을 파서 먹고 살던 배내골 사람들은 맨몸으로도 다니기 어려운 이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죽지도 살지도 못해서' 오르내렸다고 한다. 팔아 봐야 몇 푼 되지도 않는 콩이며 나물이며, 산간 오지 마을에서 나는 변변찮은 작물들을 이고 지고 이 험한 산을 넘어 장으로 갔던 것이다. 그렇게 이고 지고 간 작물을 팔아 산 소금이며 이런저런 생활용품들을 다시 이고 지고 죽도록 걷고 걸어 마을로 돌아와야 했으니, 그 고달픈 삶의 여정이야 살아보지 않은 그들에게는 짐작조차 어려울 것이다. 매일 매일 외부로 나가는 통행의 길이 험하디 험한 등산로였으니 말이다.

서울에서는 아시안게임이다 올림픽이다 난리도 아니었던 80년대까지도 배내골 아낙들은 언양장을 오갈 때는 이 선짐이질등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재를 '골병재'라 불렀다는 그들의 심사를 모를 바도 아니다. 그마저도 오고 가는 길이 멀어 산짐승 울어대는 첫새벽에 호롱불로 앞을 밝히며 고개를 오르고, 오가는 길이 멀어 돌아가는 길 역시 밤길이라 떠날 때의 그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간월산을 넘고, 선짐이질등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니 '참말이지 죽도 살도 못해 이 골짝에서 여태 살았다'는 어느 배내골 할머니의 후일담은 삶의 애환이란 삶 그 자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운다.
간월재 전망대 아래로 울주군 삼남읍내가 보인다.

간월재에서
라면을 먹다


단풍이 간간이 내려앉은 산 능선을 따라 사람들이 지나간다. 올라오기까지가 문제지, 올라서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길이 하늘억새길이다.

간월산(1069m) 정상에 오르자, 첩첩의 산들이 아득하고, 동쪽으로는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는 간월 공룡능선이 펼쳐져있다. 간월산 정상을 지나 다시 능선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바람도 쉬어간다는 간월재가 지척이다. 억새들이 산등성이 가득이다. 조금은 이른 계절 탓에 활짝 피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간월재의 주인은 억새임이 분명해 보인다.

기대하던 영남알프스의 억새를 처음 대면한다는 설렘도 잠시, 그렇게 억새의 너울에 빠져 가을의 전설을 써보리라 했던 마음과는 달리 몸이 말썽이다. 시간을 아껴 먼 곳의 그곳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바람을 싣고 달리는 무박 산행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지만, 밤을 내쳐 달려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이라 아무래도 고행은 필수다. 달리는 차안에서 이루어지는 쪽잠이 충분할 리도 없거니와 이른 새벽부터의 강행군은 그야말로 나와 몸과의 결전장이라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출발하기 전부터 간질거리던 코는 기어코 감기가 되고 말았다. 흐린 날씨, 매섭게 부는 바람, 그리고 추위까지 3종 종합세트의 협공에다, 지병(?)인 비염까지 있었으니 콧물은 쉴 새 없이 흐르고, 으슬으슬 오한까지 밀려드니 낭패라면 낭패였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일행들에게 민폐나 안 되었으면 좋으련만, 감기 기운이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따뜻한 물 한 잔이나 얻어먹을까 하고 들른 간월재 휴게소. 그런데 그곳에 컵라면이 있었다. 추위에 오들거리며 코를 훌쩍거리는 내 모습이 애처로웠던지 심성 고운 일행은 기꺼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줄을 서고, 컵라면을 사고, 물을 붓고는, 내게 내밀었다. 사실 아플 때의 배려만큼 고마운 것도 없지 않은가. 그랬으니 그 고마움에 목이 멜 수밖에... 그것도 잠시, 입천장이 데는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이 세상 최고의 라면을 맛보았으니, 컵라면이 명의(名醫)였다.
억새로 너머로 산은 첩첩이 뻗어있다.

다시 간월재에 서자, 산이며 억새가 달리 보인다.

억새는 단풍보다 먼저 가을을 알린다. 9월부터 피기 시작해 늦가을인 11월 말까지도 볼 수 있는 억새는, 그래서 가을의 전령사다. 그런데 단풍과 억새는 서로의 생장 조건이 달라 '단풍이 좋으면 억새가 나쁘고, 억새가 좋으면 단풍이 나쁘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저 운명의 장난이 야속할 따름이다. 흐린 날씨 탓인지, 아니면 아직도 활짝 피지 못한 억새 탓인지는 모르지만 마땅히 뭇 사람들의 감탄사로 소란스러워야 할 억새 평원이 아직은 차분하다.

문득 달빛이 좋은 날, 간월재 허리에 앉아 흐드러지게 핀 억새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너울인 양 고요히 나부끼며 둥글게 휘달리는 그들의 춤사위는 생각만으로도 흐뭇하고 뿌듯하기 때문이다. 달빛만큼이나 하얀 억새들이 서로서로에게 기댄 채로, 또 그렇게 손에 손을 맞잡고, 풀어헤친 머리칼을 휘날리며 부는 바람을 좇아 평원을 내달리는 그들의 질주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이 뭉클할 것인가.

신불산으로 가다 뒤돌아서 보는 간월재는 몸서리쳐지는 고요의 호수다. 어둠 속에서 눈이 소복소복 쌓일 때의 그 고요처럼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들의 무리는 소리인 듯 아닌 듯 강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마냥 차라리 고요보다 더한 고요를 평원에 흩뿌려 놓는다. 그 고요는 울음 같은 쓸쓸함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 뒤돌아서는 찰나에 부는 그 바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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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으로 가다 뒤돌아서 보는 간월재는 몸서리쳐지는 고요의 호수다.

그들의 해방구
빨치산 남도부


고도 900m 남짓 되는 간월재에서 신불산(1,209m)을 오르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신불산으로 가는 길목은 나무 데크길이라, 길이 좁은 탓에 길을 오가는 이들은 서로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래서 서로는 인연이 된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는 대개 신불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한 토벌대의 지휘부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까지 신불산 일대는 좌익 게릴라들의 주요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영남알프스를 근거지로 하는 빨치산 부대의 주축은 남도부(南到釜) 부대였다. '부산에 도달하라'는 북의 지령을 내포하고 있는 빨치산 사령관의 이름이 남도부다.

1921년 함양의 만석지기의 아들로 태어난 남도부(본명:하준수)는 일제의 학도병 징집을 피해 고향 뒷산인 쾌관산(대봉산, 1351m)으로 도피, '보광당'이라는 유격대를 조직한다. 보광당의 조직 목적은 무장을 통한 항일 투쟁으로, 해방될 때까지 경찰관서를 습격하는 등 유격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산을 내려온 그는 뛰어난 무술 실력을 인정받아 잠시 이승만의 경호원을 하기도 했지만, 해방된 나라에서조차 친일파가 득세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껴 남로당에 가입, 월북한다. 소련 군정으로부터 레닌훈장을 받고, 평양 강동정치학원에서 교관을 지낸 그는 전쟁 발발 전후 다시 남하하여 숨어든 곳이 이곳 영남알프스 일대다.
체포된 남도부(동아일보. 1954.10.16)

남도부가 1954년 토벌대에 체포될 때까지 신불산을 비롯한 영남알프스 일대는 빨치산들의 해방구였다. 아니 영남알프스 전역은 남도부가 합류하기 이전인 해방 이후부터 줄곧 좌익 게릴라들의 해방구였다. 사람들은 1946년 '대구 10·1 사건' 관련자들이 입산하면서부터 영남알프스가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눈을 들면 첩첩의 산들이 가없이 뻗어 있다. 여기였기에, 이 산이었기에 그들은 10년 가까이나 이곳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꿈꿀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꿈을 꾸고, 이 산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그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의 몫이었으니, 그 직접적인 피해자는 배내골를 비롯한 근동의 마을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식량을 강요하면서 해방된 세상이 오면 갚겠노라 약조를 하였다지만,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킬 사람조차 남아 있지 않으니 어쩌랴. 인간해방의 꿈이 산을 넘지 못한 결과는 오히려 산자락을 터전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고난에 처하게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신불공룡능선이 제 등뼈를 거칠게 드러내며 산 정상을 향해 줄달음을 친다.
신불평원은 60여만 평의 억새 군락지로, 그 길이는 무려 3km나 된다.

억새,
하늘로 흐르는 강물


억새의 너울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신불산(1,159m)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노라면 가야 할 산등성이가 먼 소실점을 향하여 뻗어 있고, 동쪽으로는 신불공룡능선이 제 등뼈를 거칠게 드러내며 산 정상을 향해 줄달음을 친다. 그런데 정상을 넘어서면 억새는 그야말로 억세게 손을 흔들며 환호작약이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고 반가운 이라도 만난 양 하염없이 팔을 흔들며 어깨춤이 실로 난장이다.

신불산은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순하디 순한 산이지만, 실상 아랫마을인 등억리나 가천리를 통해 오르자면 이렇게 힘든 악산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악 소리가 난다. 숨이 깔딱거린다고 해서 깔딱고개로 불리는 절벽 같은 등성이를 하염없이 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정상부에 올라서면, 어라! 거짓말처럼 넓은 평원이 나타난다. 그 신기한 변화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그런데 그곳이 억새의 낙원이라니... 신불산과 영축산(1,059m) 사이에 펼쳐진 신불평원은 60여만 평의 억새 군락지로, 그 길이는 무려 3km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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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평원은 60여만 평의 억새 군락지로, 그 길이는 무려 3km나 된다.

가을날, 산을 따라 흐르던 바람이 신불평원을 들르는 날이면 굽이치는 억새의 물결은 그야말로 하늘로 흐르는 강물이다. 그러니 청명하기만 한 하늘이라는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몰려가는 그들의 질주 앞에서 사람들은 까무룩 자지러지기 일쑤다.

온산 가득, 그래도 가을이라며 나무들이 울긋불긋 야단을 떨며 제 빛깔을 뽐내는 단풍들과 비교하자면, 억새의 담백한 색상은 어쩌면 조금은 단조롭고 또 수수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랗고 붉은 단풍과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과 희끗한 억새의 조합은 가을날의 유난한 색상에 깊이와 넓이를 더하며, 그래서 더 환상적인 풍경을 완성하는 게 아닐까 싶다. 소멸을 향해 가는 가을엔 응당 이들이 서로 결합됨으로써 제대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출렁이는 억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심(詩心)은 마음 한 자락을 세차게 두드리기 마련이고, 떠나간 누군가를 못내 잊지 못하는 어떤 이는 눈시울 뜨거워지는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억새는 떨어진 낙엽들이 발길에 채이고, 목덜미를 스치는 소슬바람에 몸서리치며 계절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위로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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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억새의 물결은 그야말로 하늘로 흐르는 강물이다.

새품, 억새의 꽃
그리고 '로맨스그레이'


혹여 '새품'이라는 말을 아는가?

새품은 '억새의 꽃'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실상 억새는 꽃이 아님에도 어엿한 꽃 이름까지 가지고 있으니 빛살 머금은 억새의 이삭이 꽃처럼 아름답긴 한 모양이다. 비록 화려한 색채로 저를 드러내지도 않고, 언뜻 보기에는 조악하고 거칠기까지 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솜털 가득한 억새의 이삭은 꽃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 된 이야기 하나를 하자면, 어릴 적 시골의 아이들은 봄에 싹을 틔우는 억새의 이삭을 군것질거리로 먹기도 했었다. 이른 봄이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아이들에게 진달래꽃이며, 찔레 순이며, '삐삐(삘기)'라 불리는 띠 풀의 순이며,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죄다 군것질거리였으니 말이다. 억새의 순도 그랬다. 삐삐처럼 억새의 싹이 올라오면 줄기 사이에 여린 솜털이 물기를 머금은 채 숨어 있는데, 장차 억새꽃이 될 그 솜털(이삭)을 먹는 것이다. 꼭꼭 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배어 나오는 것이 나름 껌처럼 씹을 만했기 때문이다. '라떼는'이 아닌 '그때는' 그랬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그러고도 즐거웠었으니 옛날은 옛날이다.

본의 아니게 나이든 티를 내고 마는 나이듦이 못내 안타깝지만, 아닌 게 아니라 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꼿꼿하게 평원을 지키는 억새를 보노라면, 근사한 '로맨스그레이'를 떠올리게도 된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 한 시절을 풍미하고 모두 흩어지는 때에 은빛 머릿결을 휘날리며 고요히 미소 짓는 여유와 낭만이 억새들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마침 억새의 꽃말도 '은퇴(retire)'라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후 안거(安居)의 삶으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 앞에서 설레어하는 꽃 중년들의 미덕 역시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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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머릿결을 휘날리며 고요히 미소 짓는 여유와 낭만이 억새들의 미덕이다.

바람이 잘 부는 능선에서 자라는 억새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음에도 억새는 억새만의 매력이 있다. 다른 풀처럼 꽃을 틔워 올리지도 못하고, 내세울만한 열매 역시 없지만 수수한 모습으로 가을날의 빈 들판을 지키며 바람이 부는 대로 그저 허허롭게 흔들리며 잔잔한 미소마저 잃지 않는 그 모습은 우리가 그리는 로맨스그레이, 그 자체가 아닐 것인가.

시인(임영조)가 노래했듯, 억새의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은 '성성한 백발이라 더욱 빛나'고, 그래서 '꼿꼿한 노후(老後)'는 모두의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이름은 억센 성정 탓에 억새지만, 모든 색깔, 모든 향기, 모든 생기가 사그라지는 저물어가는 계절의 끝에 서 있음에도 가벼운 몸피 가득 배어있는 여유로움은 나름 품위까지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치기도, 철없던 혈기도 다 버리고, 헛된 세속의 욕심마저도 비우고, 그렇게 비울 건 다 비운 백발 성성한 모습으로 어느 산중에서 한 줄기 억새처럼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

가는 길

배내2공영 주차장 ~ 배내고개 등산로입구 ~ 배내봉 ~ 간월산 ~ 간월재 억새군락지 ~ 신불산 ~ 신불재 ~ 신불 억새평원 ~ 영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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