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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니 분담금 30% 현물 납부에 자화자찬…"청장 열심히 뛰었고 120% 만족"

지난 3월 인도네시아 국방부에서 강은호 방사청장과 프라보워 국방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형 전투기 KF-21 공동 개발에 20% 지분으로 참여하면서도 2017년부터 분담금을 제때 못 내고 있습니다. 납부 액은 2,272억 원이고, 미납 액은 약 8,000억 원입니다. KF-21 개발 분담금은 못 내면서 프랑스로부터 라팔 전투기 도입을 추진하는 등 인도네시아의 행보는 좀 기이합니다. 이쯤 해서 사업 포기 선언을 함직도 한데 인도네시아는 꿈쩍도 않습니다.

2018년 9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분담금 재협상을 요청함으로써 2019년 1월부터 한-인니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방사청은 거의 3년 만인 지난 11일 재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했는데 요지는 "기존 계약 내용과 기간을 유지한다"입니다. 이에 더해 인도네시아 분담금 약 1조 6,000억 원 중 30%는 현물로 받기로 했습니다.

한-인니 재협상 이전에, 그리고 재협상 기간에 인도네시아는 공식적으로 "돈 안 내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재협상을 통해 "분담금 내겠다"라고 재확인한 것 뿐입니다. 인도네시아로부터 단돈 십 원 새로 받아오지 못했으면서 세계 전투기 개발 역사 상 유례 없는 분담금 30% 현물 납부라는 혹을 붙였습니다.

재협상 결과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혹 달린 현상 유지'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방사청 반응이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강은호 방사청장은 "120% 만족한다"고 자평했습니다. KF-21 사업을 책임지는 방사청 고위 당국자는 한술 더 떠 "방사청장이 열심히 뛰어서 신속한 결과가 있었다"며 공(功)을 강은호 청장에게 돌렸습니다.

강 청장은 요즘 고위 장성 인사 계획과 맞물려 교체설이 나오고 있고, 강 청장의 공을 치하 한 고위 당국자도 내년 상반기 퇴임 예정입니다. 평소 특별히 좋았던 관계도 아니라는데 재협상 결과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 자화자찬하고 띄워주는 낯 뜨거운 장면에 국방부 안팎에서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공은 방사청장에게

"사실 여러 어려움 있었는데 이런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대통령님하고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 두 분의 인간적 관계 이런 것이 많이 도움 됐고, 방사청장께서 올해 또 차장이실 때인 2020년 9월 5차 협상부터 급속도로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강은호 청장이 열심히 뛰어 주셔서 빠르다는 건 말이 좀 이상하지만 신속한 결과가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어제(15일) KF-21 사업을 책임지는 방사청 고위 당국자가 국방부 기자단에 밝힌 한-인니 분담금 재협상의 소회입니다. 한-인니 대통령의 좋은 관계가 도움이 됐다는 점을 짧게 소개한 뒤, 강은호 청장이 차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뛰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정경두 전 국방장관, 서욱 현 국방장관도 국내외에서 인도네시아 장관들 만나 애썼지만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물 30% 납부라는 불리한 조항에도 강 청장 업적만 너무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고위 당국자는 "인도네시아는 과거에 '인내를 갖고 기다려달라'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예산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더라"고 답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말 한마디에, 그런 말을 끌어낸 방사청장의 노력에 감지덕지하는 모양새입니다.

지난 3월 자카르타에서 강은호 방사청장과 프라보워 인니 국방장관이 회동하고 있다.

이에 앞서 강은호 방사청장은 지난 12일 자카르타에서 연합뉴스 특파원을 만나 "분담 비율과 납부 기간 모두 그대로 유지됐다", "상호 윈-윈(win-win)하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120% 만족한다"며 스스로 칭찬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보기 드문 정부 기관장의 공개적 자화자찬입니다. 공직자 특유의 겸양의 미덕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받을 돈 받는데 '윈-윈'은 무엇이며, '120% 만족'은 또 무슨 말입니까.

현물 대납은 어떻게? 미납금 이자는?

방사청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평가하는 재협상 결과의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먼저 분담금의 30% 현물 대납 문제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분담금은 1조 6,000억 원입니다. 30%인 약 5,000억 원을 같은 가치의 인도네시아의 특산물로 대납하는 것입니다. 방사청 고위 당국자는 "인도네시아가 팜유를 많이 생산하는데 가령 팜유를 받아서 국내에 풀지 않고 해외로 바로 파는 등 다양한 방법이 고려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현물을, 얼마에 가격 매겨, 언제 받아, 어떻게 현금화할지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추후 협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지역 특산물을 돈으로 바꿔주며 불안하게 전투기 개발한 해외 사례는 없습니다. 잘 될지 걱정입니다. 앞으로 국산 무기 수출했는데 수입국에서 현물로 대납하겠다고 억지 쓰는 일도 자주 생길 것 같습니다.
KF-21 전투기 조종석 아래, 공동개발국인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의 국기가 나란히 그려졌다.

미납한 분담금 8,000억 원을 언제 받을지, 길게는 4년 치 이자를 어떻게 얼마나 부과해 받을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자율을 놓고 한-인니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됩니다. 현물 대납 방식과 함께 앞으로 풀어야 할 난제인데 이자도 인도네시아 지역 특산물로 받아올까 우려됩니다.

방사청장과 방사청 고위 당국자는 스스로 그 누구보다 KF-21 분담금 재협상을 잘했다는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들의 자화자찬에 장단 맞추듯 방사청장 교체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취임 이전 잦은 인사 구설수, 취임 직후 부적절한 술자리와 김영란법 위반 의혹 등이 쌓인 결과,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입니다. 차기 방사청장 후보자들의 이름도 하나둘씩 들립니다.

군의 한 소식통은 "방사청장과 해당 고위 당국자가 각각 자리 보전과 미래 보장을 위해 한-인니 재협상 타결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모 방산업체의 임원은 "고위 공무원들은 대외적으로라도 대통령이나 장관 등 상관에게 공을 돌리는데 이들은 참 특이한 캐릭터"라고 촌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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