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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길, 책을 만나다 ⑦ 산다는 것은 때로는 눈물 나게 안타깝지만, 원래 그런 것 -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 밥, 그 슬프고도 지엄한 이름에 대하여…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두타산 베틀바위의 웅장한 모습

노동, 아름답지는 않을지언정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풍경


주말 아침이면 종교 시설로 가는 신자들 마냥 나도 그들처럼 길 하나 엇갈려 어디론가 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들과 나의 차이라면 그들의 손에는 성경이며 불경이 들었을 작은 가방이 들려있다는 것이고, 나의 등에는 김밥 한 줄과 물이 든 배낭이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종교 시설로 가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듯,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란 것이, 이름도 거창하게 '일상 탈출'이면서, 다른 일상에의 욕구다.

무에 그리 벗어나고픈 게 많아 요란을 떠느냐는 질책 앞에서는 움찔하지만, 그냥 뭉뚱그려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일시적인 탈출이라고 해 두자. 그래봤자 그 탈출의 끝은 어느 산자락일 테지만 말이다.

일상(日常)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그래서 '늘' 하는 것이고, 또 항상(恒常)의 의미를 지니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늘 하던 것 중 굳이 탈출이라 이름 붙일 만한 대단한 무엇이 있기나 했던가 하는 의문은 당연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삶에서 탈출이란 표현은 아무래도 버겁고 또 과하다. 그저 '쉼' 내지 휴지(休止)의 시간이라 해도 충분할 듯싶다. 그것은 긴 문장이 끝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칸 바꿈'일 수도 있고, 어느 문장의 끝에서 점점으로 이어지며 여운을 주는 '말줄임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은 아무래도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산으로 가는 이유는 그들만의 휴식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무릇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파는 것이 노동이고, 그것에 이익이 결부되어질 때 그 노동이 어찌 마냥 즐겁기만 할 것인가. 그래서 대부분의 일과 노동은 고달프다. 그리고 많은 노동 안에는 더 많이 차지하라는 부추김과 그로 인한 경쟁까지 내포하고 있으니 그 피곤함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노동을 견뎌낸 몸은 주말이면 늦가을 감나무에 매달린 철 지난 홍시마냥 제 빛깔을 잃고 시들어 늘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쩌랴. 노동의 대가를 받고 그 돈으로 쌀을 사고 밥을 먹고, 나아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 지겹도록 단순하면서도 규칙적인 나날들이 노동 안에 있음을.... 이 규칙이야말로 아름답지는 않을지언정 인간살이의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풍경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산다는 것은 때로는 눈물 나게 안타깝지만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러한 것임을, 또 어쩌랴.

그럼에도 탈출하고 싶어지는 것이, 또 일이다. 뛰어봤자 벼룩이고, 도망을 간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떠난 그곳에 산이 있고, 그 산을 에둘러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동해와 삼척을 아우르는 명산인 두타산(1,357m)

두타산(頭陀山)
베틀바위 가는 길


산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그 산이 강원도 하고도 동쪽 끝 너른 바다와 나란히 뻗어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먼 길을 가면서도 마음만은 설레었다. 오랫동안 존재조차 모르다가 미디어를 통해 그 뛰어난 산세를 대면하곤 머지않은 때에 꼭 가보리라 다짐을 했던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 산은 동해와 삼척을 아우르는 명산인 두타산(1,357m)이다. 두타산의 두타(頭陀)는 고대 인도어(Sanskrit)로 '버리고, 씻고, 닦는다'는 뜻으로,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불도(佛道) 수행을 닦는다는 의미다. 수행은 예로부터 고행의 터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산으로 가는 이에게 다가오는 의미 또한 결코 가볍지가 않다. 하지만,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 중 가치 있는 것이 얼마나 있던가. 그러니 그저 가볼 일이다.

두타산의 수려한 기암 암봉(岩峰)들이 이름께나 날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유 중 하나는 깊고 험준한 산세 때문이다. 아무나 갈 수 있는 산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니 그 산세와 풍경이 아무리 수려한들 일부의 산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다. 근래의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과 '금강바위길'이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래 막연히 그리워할 때 연정마저도 깊어진다고 하질 않던가.

그래서인지 산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오랫동안 산행에 제한이 많았던 산이었던 탓에 새로이 열린 길을 걷고자 주말의 산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이 먼 곳의 산을 오르면서 마치 서울 근교의 북한산이나 관악산을 오르는 듯 줄지어 오르는 모습은 차라리 난감했더랬다.

산과 산 사이, 협곡의 틈을 따라 물길이 흐른다.

길은 초입부터 오르막이다. 하늘을 뚫을 듯 거침없이 치솟은 봉우리를 대면하러 가는 길이니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경사가 가파르니 오래 걷지 않아도 주변의 산들이 허리께에서 나란하다. 산과 산 사이 계곡을 이루는 그 틈은 차라리 계곡이 아니라 협곡이다. 산 아래에 펼쳐진 산과 산 사이의 공간은 깊고, 그래서 아찔하다.

매표소에서 3km 남짓의 거리인 베틀바위 전망대를 지척에 두고는 올라올 테면 올라와 보라는 듯 수백 개의 철계단이 막아선다. 하지만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제 발밑을 살피며 한 발 한 발 오르는 것 말고 달리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오르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이마저도 줄지어 가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이 계단이 놓였기에 베틀바위의 지척에라도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니 투정은 언감생심이다. 예전에는 암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 말고는 길도 없었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일상탈출이니 어쩌니 하는 '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먼 길을 달려와서 산을 오르고, 그 와중에 쏟는 땀은 얼마며 장딴지며 무릎은 또 얼마나 아우성을 쳐댔더란 말인가. 원래 살아가는 일이란 것이 그러할 것이다. 삶의 고통과 눈물, 이별의 슬픔과 사랑의 기쁨을 두루 경험하지 않고서야 어찌 인생을 논할 수조차 있을 것인가.

무수한 철계단 앞에서 '노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밥숟가락에
우주가 얹혀있다


우리는 흔히 일을 '밥벌이'라 말한다.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핵심이 밥인 까닭이다. 그래서 밥은 생존의 기본 조건이라는 의식주(衣食住) 중에서도 중앙을 차지할 만큼 삶의 중심축을 이루는 존재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예로부터 '밥은 곧 하늘'이라 하고, '밥숟가락에 우주가 얹혀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칼의 노래> 작가인 김훈은 그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 가는 그 비린 향기에 한평생 목이 메었다.'고 고백한다.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무조건 먹어야 하는 밥은 생명을 연장하는 즐거움이면서, 한편으론 그 밥을 마련하기 위한 조건으로 일터에서 노동을 하여야 한다는 숙명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벌이는 진저리쳐지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 김훈, <칼의 노래>

전쟁터에서도 멀리 있는 적보다 병사들의 당장의 배고픔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법이다. 미리 챙겨둘 수도, 건너뛸 수도 없는 끼니들의 습격 앞에서 당면한 적은 주린 배였다. 명량의 바다에서 적들과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던 이순신에게도 끼니는 왜적을 대적하는 일 못지않은 강력하면서도 서글픈 적이었다.

홑겹의 저고리마저 벗어던진 채 창검같이 솟은 베틀바위는 자체로 절경이다.

서울로 압송돼 모진 고문으로 겨우 목숨이나마 건진 장군 앞에 놓인 고작 12척의 배로 지척에서 목줄을 죄며 달려드는 수백 척의 적 함대를 상대해야 하는 절박함 앞에서도 보리죽마저도 부족한 허기진 병사들의 배고픔은 그 자체로도 절절했다. 배고픔이란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태생의 적이면서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다가오는 끼니 앞에서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인 현실은 비극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밥을 먹음으로써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절박하고, 또 숭고하다.

장석주 시인은 그의 시 <밥>에서 '한 그릇의 더운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느냐'고 묻는다.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여 있는 목숨'을 부지하고자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놓아야 했던 그 '어쩔 수 없음'이 서러웠던 것이다. 그 서러움의 대상이 밥이다. 그래서 가끔은 밥벌이가 무섭고, 또 지겨운 것이다.

두세 칸의 집을 유지하고, 저녁 무렵 그 집의 창가에 빛이 어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식탁에 둘러앉아 볼이 미어터지도록 밥숟가락을 밀어 넣는 그 풍경 하나를 보기 위해 우리는 밥벌이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밥벌이가 가지는 소중하고도 위대한 의미를 뼛속 깊이 새기면서도, 어느 한 순간도 부정할 수 없는 운명임을 잊은 적조차 없었음에도, 가끔은 밥벌이가 지겹더란 말이다.

베틀바위를 이루는 암벽 능선
융기하듯 솟구친 베틀바위가 아찔하다.

아!
베틀바위


그래서 일상 탈출이라는 되도 않은 표현을 지껄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길 위에 서면 그 지겨움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길 위에도 고단함은 널려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산이라는 거대한 대상 앞에서 중력에 저항하는 몸은 안간힘을 쓰면서 간신히 나아간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은 그 처절한 혈투의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다. 몸의 구석구석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를 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느낌은 차라리 서늘하다. 온 몸의 셀 수 없이 많은 땀구멍이 일제히 수문을 열고 제멋대로 시작된 방류는 좀체 그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희열이 되는, 그 뿌듯한 순간이 온다.

그래서 여기를 올랐구나!

계단 너머 전망대를 에두르며 솟아있는 무수한 산봉우리들의 위용 앞에서 입은 쉬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적지 않은 바위 봉우리들을 올라봤지만 베틀바위는, 달랐다. 우리나라의 산에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맨몸으로 느닷없이 융기한 바위 봉우리들의 출현은 그 자체로도 갑작스럽고 또 놀라웠지만, 봉우리는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또 늠름했다.

봉우리를 이루는 암벽은 칼날 같은 명징함과 통렬한 간절함이 배여 있다.

무엇이 제 몸에 두른 홑겹의 저고리마저 훌훌 벗어던지고 저토록 깡마른 맨몸으로 저 산 위에 서 있게 했더란 말인가. 유치환 시인이 노래했듯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憶年)' 세월,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한' 결과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봉우리를 이루는 암벽은 칼날 같은 명징함으로 스스로를 정진하던 도 높은 선승의 수행처럼 저미도록 통렬한 간절함이 배여 있다. 억겁의 세월동안 베틀바위가 제 모습을 온전히 보존한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창검 같은 바위들의 무리는 아마도 천상을 동경하던 전사들이었거나, 제 것 하나 가진 것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하던 수행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베틀바위를 지나 얼마간의 산을 오르면 '베틀바위 산성길'의 정상 격인 미륵바위가 나온다. 멀찍이 앉아 두타의 정신으로 용맹정진 수행하는 불제자들을 은은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바위다. 그 바위가 미륵불을 닮았다 하여 미륵바위다. 이 바위에 굳이 미륵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먼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의 가피가 온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염원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미륵불을 닮았다 하여 미륵바위다.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신경준은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고 했었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止)과 행(行)함이 있고,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그침과 행함은 곧 사람이 살아가는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침과 행함이 이루어지는 두 곳의 중요도 역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침의 공간인 집과 달리 무언가를 행하는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 했었다. 행(行)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구한다면 그 구함은 모두에게 두루 해당되면서, 구하는 자의 몫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길이야말로 주인이 따로 없고, 가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공유되는 것이면서 차별 또한 없다는 말이다. 길을 간다는 행(行)의 결과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 있는 문제라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길 위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은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이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래서 길은 이곳과 저곳을 잇는 통로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 길이 품고 있는 모든 구부러짐과 다양한 풍경까지도 거느린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기에 웃고 울며 구부러지는 애환이 있고, 그 애환이 풀어헤치는 다양한 풍경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 길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살아간다.

그 순응의 대상 중 밥벌이가 으뜸이다. 김훈이 '삶 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한과 치욕마저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밥벌이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밥은 누구나 먹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기는 밥만이 스스로에게 유의미한 것이다. 남이 먹는 밥에 내 배까지 채워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로지 제 목구멍으로 밥을 밀어 넣기 위해, 그것도 더 많이 밀어 넣기 위해서 치욕을 무릅쓰고 그 대가로 작은 원한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산성 12폭포, 천길 낭떠러지로 물이 구르고 떨어진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하지만 밥벌이가 비록 진저리쳐지게 지겨울지라도, 그 밥에 버무려진 치욕과 원한은 목구멍으로 넘겨 삼키기에는 너무나 날카롭고 위험하다. 치욕과 원한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품게 되는 가슴 속 응어리일지라도 벼린 끝은 누그러뜨리고 날 선 칼날은 무디게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살면서 제 맘대로 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될 것인가. 별로 없다. 산다는 것이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여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밥벌이의 수혜자는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경우가 태반이 아니던가.

붓다는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리라는 기필(期必, *꼭 이룰 것을 때를 정하여 약속하다)을 거두라'고 말한다. 세상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오만과 아집을 버리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그렇고, 그 중에서도 밥벌이가 그렇다. 나의 밥벌이도 마찬가지다.

얼마 있지 않아 직장 생활 30년차에 이르는 나의 밥벌이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파란만장했더랬다. 그래서인지 돌아보면 지난 세월이 마치 꿈만 같을 때가 여러 번이다. 그 이유는 지겨워 미칠 것 같은 밥벌이의 연속이었기 때문이고, 밥벌이에 마음 두지 못한 속마음이란 것이 일상에서도 언뜻언뜻 드러났을 테니 파란만장으로 범벅이 된 나름의 고충은 어쩌면 당연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당연히 감당해야 할 역할 내지 운명 앞에서 어리석게도 몸부림을 쳤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다. 지겨워도 힘들어도 밥벌이는 밥벌이고, 어느 밥벌이인들 그 어려움이 덜한 밥벌이가 따로 있을 것인가. 밥벌이는 지엄하고, 그것이 내 밥이건 남의 밥이건 똑같이 절절한 생존의 최소한이다. 이제 와서 깨닫는 바는 그 눈물 나게 고마운 밥벌이 덕에 이나마도 살아왔음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사실이다. 그저 밥벌이 앞에서 부족했던 자신을 오늘에 이르러 새삼 돌아보게 된다.

억겁의 세월동안 물은 바위를 깎아 기어이 길을 내고, 그 길은 열두 굽이를 돈다.

간 큰(?) 다람쥐
사람 무서운 줄 모르다


길은 '두타산성길'로 접어든다.

두타산성은 102년(신라 파사왕 23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1414년 조선 태종 때 축성된 것으로, 험준한 산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어진 산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흔적조차 가뭇하다. 그 옛날에는 산성의 벽을 떠받치던 바위들마저 세월을 끝내 이기지 못한 채로 산등성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그 오래된 사연들 사이로 사람들이 간다. 그래도 길은 평탄하고 느긋하다.

그러다 만나는 산성 12폭포.

열두 번을 꺾으며 내리치는 폭포는 우선 그 규모면에서 압도적이다. 까마득히 미끄러지며 쏟아지는 폭포는 마치 워터 슬라이드를 타듯 끊임없이 구르며 지상으로의 안락한 착지를 꿈꾼다. 수억 년의 세월 동안 산을 떠난 물의 흐름은 화강암의 암벽에다 골을 내고 기어이 열두 폭의 굽이진 폭포를 완성했던 것이다.

산성 12폭포를 지나면 길은 '금강바위길'로 이어진다. 금강바위길은 올 6월에 개장한 길로, '두타산 협곡 마천루'로 가는 길이다. 금강바위길이 열리기 전 이곳 역시 거친 암벽으로 인간의 접근이 어려운 전인미답의 장소였다고 한다. 그랬으니 새로 난 길은 푸르렀고 또 그만큼 깊었다.

다람쥐는 간식을 건네는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었던 것일까.

그러다 만난 다람쥐 한 마리.

지붕을 얹은 듯 처마까지 두른 10여 미터 높이의 바위 아래에서 다람쥐가 한 마리가 저 혼자 뛰어놀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친 눈과 눈. 보통의 다람쥐 같으면 줄행랑을 쳐도 벌써 몇 번은 줄행랑을 쳤을 터인데 저도 사람이 신기했던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좀 뻔뻔한 놈이거나 간이 심하게 큰 놈이 분명했다. 이놈 봐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태도다. 발칙한 놈이로고...

일행 중 한 분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견과류 몇 개를 손바닥에 올려 슬그머니 내밀었더니, 어라! 다람쥐가 반응을 한다. 저도 겁은 나는지 온갖 눈치를 다 보기는 하지만, 다가온다. 그리고는 눈치 한 번, 견과류 하나... 저를 보고자 갑자기 늘어난 관객들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기어이 손바닥에 놓인 것들을 다 먹을 기세다. 배가 고팠던 것일까, 아니면 끓어오르는 식탐 앞에서 두려움을 잊은 것일까. 또 아니면 간식을 건네는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었던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건 야생의 다람쥐가 어려운 결심을 하고, 그렇게 인간과의 교류에 나선 일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두타산이 품은 멋진 풍광보다도 어쩌면 더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다람쥐가 우리를 친구로 인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뭉클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산은, 자연은, 인간만이 배타적인 권리를 가지고 누리는 곳이 아니며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동물들과도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터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공유의 전제는 소통과 연결이었다.

원숭이를 닮은 바위 위로 두타산협곡 전망대가 있다.

두타산 협곡 마천루
벼랑에 걸려 있는 잔도(棧道)


다람쥐와의 작별이 아쉬울 즈음, 길은 수직의 바위벼랑에다 매달듯 지은 전망대인 '두타산협곡 마천루'에 이른다. 전망대의 주위로 치솟은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빌딩 숲처럼 보인다 하여 '마천루'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전망대에 서면, 암봉 특유의 깎아지른 절벽과 다양한 바위 봉우리들이 수놓는 마천루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마침 두타산협곡 마천루가 선사하는 시선의 시점이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바라보는 시점과도 비슷하니, 천하의 절경은 눈앞에서 그리고 발아래에서 수려한 자태를 펼쳐놓는다.

두타산과 청옥산이 이루는 협곡은 깊어서 아득한 심연처럼 보인다. 그래서 산과 산 사이의 경계는 단애의 절벽을 마주한 채로 그리움만 깊어지는 단절의 공간이다. 벼린 칼날에 잘린 흔적마냥 깊어서 안타깝고, 그 아슬아슬함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어느 한 때에는 한 몸이었을 그들의 느닷없는 이별은 동백이 지듯 툭 끊어지고만 것이다.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13
암벽벼랑을 따라 잔도가 놓여 있다.

그 패이듯 끊어진 자리에 잔도가 놓였다.

항우에게 쫓기어 파촉(巴蜀)으로 들어간 유방은 지나온 잔도를 불태우라 했다지만, 아서라! 협곡마천루의 잔도가 없으면 이 경관을 다 어쩌란 말인가. 잔도를 걸어 산허리를 음미하듯 걸어볼 일이다. 까마득한 절벽에다 기어이 길을 낸 누군가의 노고를 생각하며 협곡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아찔한 두려움 반, 암벽의 허리를 딛고 걷는다는 설렘 반이다. 그리고 걸음의 수만큼의 무수한 절경들 앞에서 입은 저절로 벌어진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잔도를 내딛으며 풍경을 눈에, 또 가슴에 담노라면 새삼 좋은 것은 느린 속도 안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요하듯 걸으며 쓰다듬고 만지며 눈에 차곡차곡 쟁여놓아 추억이 되는 것들은 모두 다 느린 발걸음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 내면의 속도였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곧고 단단하게 걸어갈 때 삶은 더 풍성해지는 것임을 두타산에서, 또 배운다.

산처럼 고요히 머무르며 그 산을 닮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유로운 삶일 것이다.

제대로 노는 것은
세상과 단둘이 노는 것


결국 삶의 의미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수억 년 동안 제 있는 곳을 묵묵히 지키고 있을 뿐임에도 사람들이 기어이 찾아와 행복해 하는 산처럼, 산다는 것 역시 고요히 산처럼 머무르고 있으매 누군가 찾아와 삶의 향기를 나누고 행복해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굳이 요란스러울 필요도 없이 굳건한 자기 안에서 스스로 풍성해질 때, 세상살이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밥벌이의 절박함에서 벗어난 노년의 어느 때에는 아마도 정중여산(靜重如山)의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산처럼 고요히 머무르며 그 산을 닮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유로운 삶일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것이 오랫동안 꿈꿔온 '노는' 삶일 것이다. 김훈에 따르면, '노는 것이야말로 신성하다'고 하질 않던가. 그에게는 수많은 자전거 여행이 그랬을 것이다.

김훈이 노는 것이 신성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인간은 놀 때 온전해지고 깊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에는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으며, 나아가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라고 털어놓는 것이다. 아마도 밥벌이라 칭하는 대부분의 일은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예민한(?) 누군가는 스스로의 현존이 머물지 못하는 몸의 노동에 불쾌해하고 불안해하고, 또 불편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삶인들 고달프고 스산하지 않겠는가. 한편으론 그 지겹다는 밥벌이마저 아쉬운 많은 젊은 청춘들에게는 나이 든 사람의 넋두리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밥벌이가 그러한 것임을, 또 어쩌겠는가.

산에서는 산과 논다. 단둘이서 충분하다.

그렇다면 밥벌이가 지겹다고 노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일까. 김훈은 '노는 일도 말이 쉽지 실상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노는 것이란, '그 자리에 있는 세상과 단 둘이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과 단둘이 노는 거다.' -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세상과 단 둘이서 노는 것이란 어떤 놀음일까? 놀더라도 쾌락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아이이고, 현실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어른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현실원칙에 집착하는 어른들은 '속물'이 되고, '꼰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십 줄에 접어든 나에게도 꿈도 낭만도 없는 속물, 꼰대는 바라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몸에 배인 그 습성이 기어이 꼰대로 머물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있다. 나 역시 세상과 단둘이 잘 놀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 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체념'이 아닐까 싶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이상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않을 때, 두 손 가득 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릴 때, 그때 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세속적인 이러저러한 욕망부터 내려놓을 때 손도, 마음도 평화로워지고, 그 평화 안에 자유마저도 깃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상실의 강을 건너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나아가는 여행이라는 말이다.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을 고이 떠나보낸 후,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변화와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슬픈 일이다. 하지만 슬퍼만 할 수도 없는 것이 또 인생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과 단둘이 논다는 것은 오고 가는 세상사와 사람에게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자유를 누리며, 즐거워지는 것. 모두가 꿈꾸는 유유자적(悠悠自適)마저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고요히 머무르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세상과 단 둘이 논다는 것은 결국 혼자 논다는 것이고, 혼자 논다는 것은 머무름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산다는 것은 '희망이나 전망이 없어도 괜찮다'는 김훈의 말처럼 구태여 희망에 붙들리지 않아도 된다면, 그 세속적 희망 내지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아웅다웅 마저도 피할 수 있을 테니 그만하면 훌륭한 삶일 것이다. 버리면 채워진다고 하질 않던가. 그 방법은? 그건 아마도 각자의 몫일 것이다.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16
청옥산 문간재 절벽에 있는 3단 폭포인 용추폭포(龍湫爆布)는 물이 만드는 축제의 백미다.
청옥산의 물과 두타산의 물이 만나는 곳에 쌍폭포가 있다.

물의 낙하,
그리고 무릉계곡


조심스레 잔도를 걸어 박달계곡을 끼고 도노라면 세찬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폭포들의 아우성이다. 두타산(1,357m)과 청옥산(1,404m) 깊은 골을 헤치고 흘러온 물줄기의 낙하는 장대하다. 청옥산 문간재 절벽에 있는 3단 폭포인 용추폭포(龍湫爆布)는 물이 만드는 축제의 백미다.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을 지닌 폭포로 상탕, 중탕은 옹기항아리 같은 형태로, 하탕은 진옥색의 큰 용소로 이뤄져 있다. 용추폭포 아래 암반에는 어느 묵객이 새겨놓은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석각이 용추폭포의 자연경관을 적확하게 대변한다. 이곳이 별천지가 아니면 어디가 별천지냐는 질문이자 대답이기 때문이다.

용추폭포를 떠난 물줄기는 멀리 가지 못하고 이내 다시 긴 낙하의 꿈을 꾼다. 봄날의 꽃송이처럼, 가을날의 낙엽처럼 구르고 쏟아지고 떨어진다. 그들은 두타산 심심계곡을 거쳐 온 물줄기와 만나 쌍폭포(雙爆布)가 된다. 좌우에서 쏟아지는 물의 향연은 보는 즐거움 못지않게 듣는 즐거움도 자못 크다. 눈을 감으면 난타의 연주음은 더러는 규칙적으로 또 더러는 불협화음으로 귀를 거쳐 이내 가슴 가득 뜨거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푸르른 나뭇잎을 두드리며 흩어지는 투닥투닥 바람소리는 덤이다.

여정의 막바지에 발걸음이 무거워질 즈음, 폭포를 떠난 물들은, 그 물이 품은 계절은, 이형기 시인이 노래하듯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나뭇잎 하나 품은 계곡의 물은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영혼의 슬픈 눈'마냥 안타까이 구르고 굴러 새로운 흐름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조금은 붉게, 조금은 노랗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매운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른 가을빛이 물 위를 떠간다.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에 약 4㎞에 달하는 무릉계곡이 있다.

그렇게 흘러 물이 닿은 곳은 무릉계곡. 오래 전 누군가 심었다던 무릉계곡의 복숭아꽃은 보이질 않고, 반듯한 1,500여 평의 반석만이 여행자를 맞는다.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의 약 4㎞에 달하는 무릉계곡은 오랫동안 뭇 사람들의 동경의 장소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금은 과한 이름자며 이런저런 글씨를 새긴 흔적들이 반석 가득이다. 굳이 석수장이를 대동하여 이 산중의 바위에다 이름이며 글을 새겨야 했던 그 시대 그들의 이유야 자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이름께나 남기고 싶은 옛 선비들의 조악한 허세인 양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 글씨들의 주인공 중에는 조선시대 4대 명필가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도 있고, 그 외 숱한 시인 묵객들의 시와 이름이 무릉계곡의 반석에 새겨져 있다.

카메라를 들어 지나온 길이며 무릉계곡을 담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솔숲을 노니는 바람소리며, 먼 길을 달려와 계곡에서 부서지는 물소리며, 이따금씩 떨구는 새들의 청아한 지저귐은 담아지지가 않는다. 그리운 것들 중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것들은 늘 얼마 되지 않는 모양이다.

김지하 시인은 그의 시 <두타산>에서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두타산에서 배웠다고 고백했었다.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설사 그가 사람이 무서워 멀리 떠난 곳에서라도, 종내는 사람이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더러는 사람은 산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두타산에서 하게 된다. 이 산도, 간 큰(?) 다람쥐도 그리울 것이다. 물론 산행에 동행하였던 좋은 사람들도 분명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산이, 물이, 다람쥐가 더 그리울 때도 있는 법이다.

그림은 '그리워하는 것'이라 했었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뿐이라는 말이다. 산에서 문득, 내 사는 동안 스쳐간 많은 인연들, 그리고 나를 지나쳐 갔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그렇다면 오래지않아 그 지겹던 밥벌이마저도 목 놓아 그리워할 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언젠가 이 산도 마냥 그리울 것이다.

〇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

▶ 관리사무소 → 베틀바위 전망대 → 미륵바위 → 산성 12폭포 → 두타산 협곡 마천루 → 용추폭포, 쌍폭포 → 무릉계곡 → 관리사무소 (약 8km 남짓,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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