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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D.P. 보고 씁쓸해서 팩트체크 했습니다

[사실은] D.P. 보고 씁쓸해서 팩트체크 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호응이 큽니다. 드라마는 윤 일병 사망 사건이 있었던 2014년이 배경입니다. 군대 내 부조리를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민방위가 끝나가는 저조차도, 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불편했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한 언론사 보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14년 일선 부대의 부조리라고 보기에는 좀 심하다. 전반적인 느낌으로는 2000년대 중반 정도 일을 극화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현실'이라기 보다 '과장'에 가깝다는 뜻이겠죠.

출처도 불분명한 관계자의 말을 정색하며 팩트체크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 군대의 자화상을 조금은 냉정하게 꺼내 들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군 현재의 모습이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잔혹한지, 팩트에 근거해 천천히 짚어보려고 합니다. 이번 기사는 팩트체크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울 수도 있겠네요.

사실은

판결문에 나타난 드라마

드라마는 군대 내 가혹행위를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방독면을 씌우고 물고문을 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후임병의 어머니 편지를 읽으며 "너희 집 거지냐"고 모욕을 주고, 심지어 근무 중 후임병에게 자위행위를 강요하기도 합니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가혹행위와 관련된 군사법원의 판결문을 찾아봤습니다. 과거 기록은 찾지 않았습니다. 지금 군대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최근 2년 사이 있었던 판결문만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안타깝게도, 2014년 군대를 묘사했다는 드라마의 한 장면 한 장면이 2020년대 판결문 문장 안에 오롯이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 전투복을 입은 피해자의 우측 무릎에 물을 붓고 전기파리채를 물 묻은 우측 무릎 위에 대고 작동시켜 전기가 피해자의 무릎에 통하게 하는 방법으로 충격을 가하는 행위를 15분에 걸쳐 반복한 것을 비롯하여 …… 피해자에게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우측 무릎 힘줄염의 상해를 가하였다.
- 고등군사법원 2021노17, 2021. 4. 22
…… 피해자에게 "너희 부모님이 너를 그렇게 키워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저희 부모님은 쓰레기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쓰레기인 저를 낳았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고로 부모님도 죄인입니다. ……"라고 복창하도록 시켰으나,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생활관 바닥에 엎드리도록 한 뒤 팔굽혀펴기를 약 30회 시킴으로써 ……
- 고등군사법원 2021노202, 2020. 11. 26
…… 피해자에게 침낭을 상대로 성행위를 묘사하게 하거나, 자위행위 시킬 때, "XXX놈아 똑바로 안하냐, XX소리 내면서 해라 ……"라고 말하였고, 자위를 하라는 피고인의 요구에 피해자가 당황하자 "선임이 시키는데 안해? 빨리 해라"고 거듭 말한 사실이 있다는 점에 비추어 ……
- 고등군사법원 2020노257, 2020. 12. 10

드라마에 묘사된 고문, 모욕, 추행의 모습은 지금 우리 군대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묘사가 덜 하면 덜 했지, 더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판결문을 읽어나갔을 때의 씁쓸함은, 드라마를 봤을 때보다 작지 않았습니다. '상상'이 아니라 '팩트'임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팩트가 더 선정적입니다.

일반적인 추이도 살펴봐야겠죠. 국방부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폭행 및 가혹행위 입건 추이'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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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조사처는 위 표를 인용해 "신체나 물건을 이용한 군 장병 간의 물리적 폭행과 관련된 입건 수는 전반적으로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사실 군내 가혹행위 문제가 생각보다 별 진전이 없다,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는 식의 연구 결과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군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서

판결문의 사례가 군의 일반적인 경험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흔치 않은 사례라 군 검찰이 기소를 했을 것이며, 재판까지 갔을 겁니다. 다만, 사례의 희소성을 들어 '과장이다' 혹은 '일반적인 경험은 아니'라고 변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경험' 여부를 따지기보다, 장병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정서'를 먼저 주목했으면 합니다. 

분명한 것은 빈번하든 드물든 드라마가 묘사하는 잔혹함이 여전히 지금의 군대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장병들은 이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불안감을 안고 버텨낸다는 사실입니다. 가혹행위의 횟수나 강도가, 장병들이 평소 느끼는 공포나 좌절, 불안의 정도와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가혹행위는 군대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군대라는 조직은 엄격한 규율과 그 폐쇄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괴물을 양성하곤 합니다. 특정 개인의 악마성만을 탓하기란 어렵습니다. 자연히 군이라는 조직에서 부조리에 대항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가혹행위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당수의 가혹행위는 군의 일상 안에 자연스럽게 수용되기도 합니다. 가혹행위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여기에 또 무뎌진 우리 역시 있습니다. 이번에 군 가혹행위 관련 자료를 훑어보다가, 국가인권위 용역보고서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인권침해 경험이 193명인데 반해 부당대우는 750명(이중응답)으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단정하기 어려우나 이러한 결과는 부당대우의 많은 부분을 인권침해로 인식하지 못하는 반증으로 보인다.
- 국가인권위원회, <2019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 조사> 연구용역보고서, 2019년 11월

"인권침해로 인식하지 못하는 반증"이라는 표현이 유독 눈에 밟혔습니다. 사실 폭력이 거센 조직 안에서 감히 인권을 생각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변호권을 연상하는 것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폭력은 자유를 얻고 심대한 인권침해는 부당함 정도로 별 일이 아닌 게 되곤 합니다. 둔감함은 폭력을 키우니까요. 

이런 면에서 군대 내 가혹행위는 개인 범죄를 넘어선 조직 범죄에 가깝습니다. 국방부가 끊임없이 대안을 연구하고, 제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드라마 얘기가 나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군 시절 무용담으로 옮겨갔습니다. 저 역시 군대에서 갈굼받은 경험을 말하며 낄낄거렸습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2년의 기억이 아무 것도 아닌 양, 나는 어떻든 버텨냈다며 말하며 자기 위로를 한 건 아니었나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그간 지나쳐왔던 당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 서슬 퍼런 그 시절, 무뎌졌던 나 역시 괴물을 키우는 데 일조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둔감해야 버텨낼 수 있으니까요.

(자료조사 : 송해연, 권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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