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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프간에서 인술 펼쳤던 동료들, 행복하게 살아가길"

아프간 국내 이송 작전 ② 손문준 전 바그람 한국병원장 인터뷰

[취재파일] "아프간에서 인술 펼쳤던 동료들, 행복하게 살아가길"
▲ 손문준 교수

일주일 전 한국에 온 아프간인 390명은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해온 조력자와 그 가족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한국 정부가 아프간 현지에 지은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일한 의료진과 통역사들입니다. 이들은 5년여 동안 한국 의료진과 함께 20만 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며, 종교를 초월한 인술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정작 탈레반으로부터는 '외세에 협력한 변절자'로 낙인찍혀 살해 위협에 시달린 끝에 결국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실제 탈레반은 마치 보란듯이, 미군기지에 있던 바그람 한국병원을 폭파시켰습니다. 또, 아프간인 물리치료사 한 명을 출근길에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간 현지인들을 치료하는 아프간인들을, 그저 다른 나라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테러를 한 것입니다. 2대 바그람 한국병원장으로 일했던 손문준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당시에도 현지인들의 불안감은 상당했다"며 "지금이라도 안전하게 한국에 오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손 교수는 이들이 안전하게 한국에 오기까지 한국 정부에 이들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바그람 한국병원이 테러를 당한 이후 더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 상황이다보니, 사실상 현지인들의 근무 이력을 확인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 의료진이었던 것입니다. 손 교수는 "이번 작전은 모두 외교부와 국방부, 법무부 등 한국 정부가 적극 노력해준 덕분"이라며 "한국에 온 아프간인들 동료들도 안정적으로 한국에서 행복하게, 뜻하는 바를 성취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손 교수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아프가니스탄에서 언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소개를 우선 부탁드립니다.
A. 예, 저는 2010년 하반기부터 2011년 말까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 위치한 한국 재건 사업단에 있는 바그람 한국병원 병원장으로 근무했습니다. 현재는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했던 업무는 의료 혜택이 열악한 아프가니스탄의 국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무상 의료 제공을 하는 진료였습니다. 또 병원장으로서 한국 병원이 입원과 수술실 운영이 가능하도록 2차 병원 규모로 운영을 하는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Q. 이번에 한국에 귀국을 한 아프간인 분들 중에서 교수님과 같은 곳에서 근무한 분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일하셨던 동료로서 그분들은 어떤 분이었나요.
A. 예. 이번에 온 분들 보니까 의사, 치과 의사, 간호사, 약사, 또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이 포함돼 있었던 걸로 알고 있고요. 통역 뿐만 아니라 행정직 직원들까지 35 가구가 구출돼서 한국에 왔습니다.

한 3분의 2 정도 분들은 제가 파견했던 근무 기간 동안에 같이 일해서 잘 알고 있는 직원들이 왔고요. 또 제가 있기 전에 근무했던 분이거나, 그 이후에 채용됐던 분들도 포함돼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다 이제 저희가 한국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단이 하고 있는 해외 의료 원조 사업에 같은 목적으로 함께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었습니다.

김혜영 취파

손문준 교수가 근무했던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Q. 바그람 한국병원이 탈레반의 공격으로 현재는 없는 상태인 거죠?
A. 저희가 2015년 6월 30일까지 병원을 운영했고요. 그때 한국 재건 사업단은 철수했습니다. 다만, 부지 자체가 미군 기지 내에 있었기 때문에 미군에서 아프가니스탄 군 티칭 호스트 병원, 티칭 호스피털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병원 간판을 기지 외곽 쪽에 붙여서 운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후에 한 1, 2년 있다가 결국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서 폭파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기지 내에 있었을 때도 자주 이제 미사일 공격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때 9월 11일 날 오는 때면 어김없이 미사일 공격이 왔습니다. 저희가 밤에 미사일 공격이 오면 콘크리트로 된 건물이 이제 병원하고 직업훈련원이어서 그 안으로 숨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재래식 무기여서 콘크리트를 부시지는 못했거든요. 근데 저희가 철수한 이후에 그 건물이 폭파됐다는 것은 재래식 무기가 아니라, 굉장히 화력이 큰 걸로 공격했던 것 같습니다.

Q. 당시 미군 기지 안에 바그람 한국병원 외에 외국 정부가 운영하는 다른 시설들도 많았던 거죠?
A. 그렇죠. 당시 미군이 헤드 쿼터였기 때문에 연합군들이 같이 다 일했고요. 사실은 그 기지 내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랑스 군도 있었고 다른 서방국가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이게 문화 종교나 문화권이 다른 나라만 들어와 있지 않고, 아랍에미리트 군, 그리고 이집트 군 병원도 있었습니다. 이들 병원은 규모가 크기도 했습니다.

Q. 당시 탈레반이 한국병원을 일부러 타겟으로 했다고 보는 게 맞을까요?
A. 사실은 이 내용은 지금 저희가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탈레반이, 왜 아픈 자국민들을 치료하는 병원을 파괴했느냐, 이것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제 탈레반이 적대시 하는 외국 정부와 일을 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지 테러의 대상이 된다는 거죠. 굉장히 좀 아이러니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데요.

어쨌든 탈레반은 2002년부터 바그람 현지인들한테 한국 정부가 의료 지원을 했던, 굉장히 상징적인 건물을 파괴했습니다. 이슈화가 가능한 건물이니, 분명한 타겟으로 삼은 거죠. 뭐 하나 파괴해서 별로 보도 거리가 안 된 건 파괴 안 했을 텐데, 아마 저희가 많이 노력했고 국민들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을 파괴하면 자신들의 메시지를 분명히 드러낼 수 있었겠죠. 그게 비록 아프간 정부군한테 티칭 호스피털로 넘어갔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파괴한 것을 보면요. 분명히 그런 목적에서 파괴하지 않았을까. 제가 느끼는 그런 개인적인 의견은 그렇습니다.

Q. 바그람 한국 병원에서 근무했던 아프간 현지인 분이 출근길에 살해를 당한 일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탈레반에 의한 테러였죠?
A. 네, 남자 물리치료사였는데요. 그 분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같이 근무해서 있었던 분인데요. 약간 눈에 사시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던 분이거든요. 저희가 당시 연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 분이 한국에 연수 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해운대 백병원 안과와 같이 협업해서 그 분의 연수 기간에 맞춰 수술을 해드렸고, 결국은 똑바로 볼 수 있는 정시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아프간에 오자마자 이제 검은 색안경도 벗고 되게 자신감 있게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정말 기뻐했습니다. 본인이 너무 감사해하면서,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한국으로 귀임을 했는데, 그 이후에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살해를 당하기 일주일 전부터 뭔가 좀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병원에다 '입원 환자가 있는데, 저녁 때 근무하면 안 되겠느냐'는 의사를 내비쳤다고 해요. 그랬더니 그게 간호사들은 이제 환자를 보지만, 물리치료사는 낮 근무가 끝나면 저녁 때는 근무할 내용이 없으니까 그 얘기를 들은 직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 분이 출근길에 사망하게 돼서 직원들이 굉장히 많이 슬퍼하고 울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Q. 교수님이 아프간인 분들을 한국에 이송하는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공개 가능하신 선에서 말씀 부탁드려요.
A. 예, 제가 사실 많은 역할을 했다고 표현하면 조금 당황스럽긴 한데요. 대사관을 포함한 외교부와 많은 분들이 거의 모든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병원의 책임자로서 현지 직원들의 추천서, 그리고 근무증명서 이런 것들을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병원이 없어졌기 때문에 증명을 할 그런 기관 자체가 없어서 그런 요청을 저희한테 많이 했던 거고요. 저희가 또 그 사업을 했던 대학 소속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많은 자료를 갖고 있어서 요청이 많이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현지인 분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한국 대사관이랑 같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 정도를 했던 것 같고요. 대부분은 우리 외교부하고 이송 작전에 참여했던 한국군 분들이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Q. 지금 한국 정부가 이번에 국내 이송된 아프간인 분들의 장기적인 체류를 위해서 출입 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대응, 또 이 외에 추가적인 지원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 의견 있으실까요?
A. 예. 정부가 지금 법 개정과 그 절차를 마련하는 그 노력이 참 감격스럽고요. 그렇게 고심하는 정부의 노력에 적극 찬성합니다. 우선 중요한 건, 우리나라에 오신 분들의 의견일 텐데요. 그분들이 아마 다양한 요구가 있을 텐데 그 요구들을 잘 취합해서, 거기에 부합하는 정책 마련과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큰 이슈가 본인들의 직업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자녀 교육의 문제가 굉장히 큰 문제여서 그런 부분을 충분히 저희가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고요. 대부분 저희와 함께 일한 분들은 전문직들이 많거든요. 의사, 간호사 등 전문직들이 많아서 이분들이 만약에 한국에 체류하기를 원한다면 그 직업을 영유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직업 교육도 필요할 겁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의료 제도나 이런 시스템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인정하게 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걸로 압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분들이 그런 직업적인 전문성을 살려서 우리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방안들을 고심하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378명 한국 도착

Q. 아프간인 분들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계속 정착하기 위해서 혹시 어떤 제도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예. 저희는 같이 경험을 했잖아요. 그 나라에서 아프간인 분들과 함께 경험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이슬람 종교에 대해 편견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에 별로 없으니까 낯설 수 있는데요. 유럽이나 미국은 그런 분들이 많아서 종교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입니다.

사실 이슬람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갖고 있는 좋은 기능들은 결국 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함께 평화롭게 살자는 거잖아요. 그게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어서, 그런 종교에 대한 편견을 없애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에 우려했던 우리 국민들도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잖아요. 외신들도 보면, 한국의 이번 작전이 작전명 대로 '미라클'이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었던 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 국민들이 잘 받아들여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K팝 뿐 아니라, 성숙한 사회 문화적 시민 의식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 가족 구성원들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돼서, 그런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국내에 와 있는 아프간인 분들한테 혹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 네, 탈레반이 예상보다 빨리 카불을 장악하면서, 여기 와계신 분들도 정말 급박하게 탈출하게 됐는데요. 한 편으로는 한국에 왔다는 안도감, 다른 한 편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연함과 두려움 이런 감정이 교차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을 곧 만나뵙고 직접 말씀을 들어보고, 또 용기를 드리고 싶고요. 본인들이 생각하는 미래 설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후에 제가 도움 드릴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전 자체도 사실 외교부 등 정부가 추진하긴 했지만 이 분들도 정부를 믿고 따라와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서로 어떤 같은 믿음이 있고 신뢰가 있으면 충분히, 문화권이 다른 나라에서도 조화롭게 잘 지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본인들이 원하는 뜻을 잘 성취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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