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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제는 통일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연방제는 통일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남북이 남북연합 혹은 국가연합을 구성해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의 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장기간의 분단으로 이질화가 심화된 한반도의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통일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난 글( ▶ 한반도 통일 방안, '남북연합'을 다시 보다 ②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에서 연합 체제나 연방 국가의 통합이 반드시 순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고 역사적 실례들도 제시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국가연합이나 연방제가 남북의 현실에서 잘 작동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7개국의 연합체, 유럽연합

남과 북이 국가연합을 구성한다면 이는 단 2개의 구성국으로 이뤄지는 국가연합이 됩니다. 다수의 구성국으로 이뤄지는 국가연합과는 다른 환경인 것입니다.

남과 북의 국가연합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추론해보기 위해 국가연합의 대표 사례인 유럽연합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EU, 유럽연합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럽연합의 주요 의사결정은 약칭 '이사회'로 불리는 유럽연합 각료이사회(European Council)와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에서 공동으로 결정됩니다. 원래 이사회가 주요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유럽의회의 권한이 갈수록 강화된 결과입니다.

이사회의 경우 27개 유럽연합 회원국의 각료들이 모이는 모임으로 가장 표준적인 의사결정 방식은 '가중다수결제'입니다. 유럽연합의 가중다수결제는 시기별로 조금씩 변천해왔는데 2017년 4월 이후 바뀐 제도는 이렇습니다. 27개 회원국 가운데 55% 이상, 즉 15개국 이상의 지지를 얻고, 유럽연합 회원국 전체 인구수의 65% 이상을 대표하는 국가들의 지지를 받아야 안건이 통과됩니다.

일반적인 과반 의결이 아니라 55%나 65%와 같은 다소 희한한 숫자가 도출된 것은 대국(大國)들의 위상을 인정해 주면서도 대국과 소국(小國)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타협한 결과입니다. 유럽연합 회원국 인구 65% 이상을 대표하는 국가가 지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소국들이 연대해서 15개국 이상의 찬성을 만들더라도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대국들이 찬성하지 않는 한 안건을 가결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반면 대국들도 안건 통과를 위해서는 절반보다 더 많은 55% 이상의 국가와 전체 인구 65% 이상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소국들의 의견에 보다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 4월 이전의 가중다수결제에서는 각국별 의결 영향력의 차이가 명확했습니다. 유럽연합 각국이 이사회에서 갖는 투표권의 수가 아예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이 27개국(이 당시 27개국은 영국이 포함되고 크로아티아가 가입하기 전입니다)이었던 2007년의 경우 이사회의 전체 표수 345표 가운데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가 29표씩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반면 스페인, 폴란드 등은 27표씩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등이 4표씩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반면, 몰타는 3표 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차등적으로 표가 주어진 상황에서 안건 가결에는 3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345표 가운데 255표 이상(73.91%)이 찬성해야 하고, 27개 회원국 가운데 과반(14개국)이 찬성해야 하며, 회원국 전체 인구의 62% 이상을 대표하는 국가들의 지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독일, 프랑스 같은 대국에 가장 많은 투표권을 줌으로써 대국들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345표의 절반을 훨씬 넘는 255표 기준을 마련해 소국들의 지지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권한이 강화된 유럽의회에서도 나라별 의석수 차등이 적용됩니다. 2019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의 경우 28개국에서 751명의 의원을 선출했는데, 독일이 96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가 74명, 영국과 이탈리아 73명, 스페인 54명의 순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몰타, 에스토니아, 룩셈부르크 등은 각각 6명씩의 의원을 선출했습니다. 유럽의회는 초국가기구로서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돼 있지만, 의회의 구성에는 이사회에서처럼 개별 회원국의 인구와 국력차가 반영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각국이 1/N의 의결권을 나눠 갖고 과반으로 안건을 결정하는 단순한 방식을 택하는 대신 왜 이렇게 복잡한 의결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인구와 국력 차이를 감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가운데 2018년 기준 독일의 인구는 몰타 인구의 170배가 넘고, 2018년 기준 독일의 GDP는 몰타 GDP의 270배가 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몰타와 똑같이 1/27의 의결권을 갖는다면 독일 국민들이 납득하기 힘들 것입니다.

결국 유럽연합은 각국의 국력 차이를 인정해 대국에게 보다 큰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대국과 소국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제도를 발전시켜왔습니다. 국가별로 국력 차이가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국가별 영향력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국가연합으로서의 유럽연합을 유지하기 위한 토대였던 것입니다.

이는 국가연합이 초국가기구와 같은 결합도 높은 조직들을 통해 통합을 지향해가기는 하지만, 개별 구성국들이 자국의 국력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려하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국가연합은 현실적으로 유지되기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국가연합, 남북 현실에 적합한가

이제 남북 국가연합의 경우를 상정해 보겠습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남한의 인구는 5,171만 명으로 북한 인구 2,525만 명의 2.05배, 2019년 기준 남한의 명목 GNI는 1,935조 7,151억 원으로 북한의 명목 GNI 35조 5,616억 원의 54배 수준입니다. 남한의 국력이 월등한 만큼 남북이 국가연합을 구성한다면 남한이 상당 부분 북한을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남북 국가연합의 의결권 비중은 남한에게 보다 많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유럽연합에서 국력이 센 독일이 많은 의결권과 영향력을 가졌던 것처럼 남북한 간에도 남한이 목소리를 좀 더 낼 수 있는 구조로 가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한 국가연합에서 남한이 의결권을 더 가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이 그런 식의 국가연합을 수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처럼 많은 회원국들이 모인 형태라면 국력의 차이에 따라 의결권의 차이를 두는 것이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지만, 1 대 1로 결합되는 남북 국가연합에서는 국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차등권보다는 1 대 1의 평등권 논리가 더 우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통일방안에 등장하는 '남북연합'에서도 남북각료회의나 남북평의회를 남북 동수로 구성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1 대 1의 의결권을 갖는 방식으로 남북 국가연합이 구성된다면 운영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재정과 지원을 남한이 담당해야 하는데 의결 과정에서는 북한이 남한과 동등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세금을 내는 남한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국가연합 초기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는 수준에서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국가연합의 결합도가 높아져 재정 부담이 상당한 사안에 대해 의결이 이뤄지는 단계로 가면 불협화음이 표면화될 수 있습니다. 남한 지역 복지 지출을 늘리려는 남한 정부와 평등한 복지를 주장하는 북한 정부 간 이견이 생길 수 있고, 남한 지역 투자를 늘리려는 남한 정부와 낙후된 북한 지역 개발을 우선시하자는 북한 정부 간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남북이 동등한 의결권을 가져 재정의 거의 모든 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남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경우 남한 주민들이 이러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남한 주민들 사이에서 '돈은 우리가 내는데 혜택은 왜 북한이 보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국가연합에 대한 경제적 기여도와 의사결정권의 크기가 따로따로 가는 상황이 계속되면, 국가연합이 남북의 결합도를 높이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북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국가연합만 결성되면 반드시 통합이 진전되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90년 동안이나 연합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해체됐고, 오랜 기간 유럽연합의 구성원이었던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고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것은 국가연합이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향해 가도록 하는 장치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북이 모든 문제를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인내심을 가지고 풀어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적인 말이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다릅니다.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일이 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을 만들어야지, 시스템은 갖춰지지 않았는데 당사자들의 선의에만 기대어 문제를 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경제적 기여도와 의사결정권의 부조화 외에도 남북의 국가연합이 잘 작동하기 어려운 이유는 1 대 1의 결합인 경우 중재자 역할을 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국가연합을 구성하는 개별 구성국이 여러 곳인 경우 몇몇 구성국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회원국들이 중재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개별 구성국이 3개국만 되어도 두 나라가 대립할 경우 나머지 한 나라가 중재자 역할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남북 국기

하지만 1 대 1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남북 국가연합에서는 남북이 대립하면 이를 중재할 세력이 없습니다. 남북은 더구나 오랜 기간 동안 대결과 적대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 의견의 차이가 생기면 타협의 길을 찾기보다 남북 양쪽의 여론을 의식해 대결적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쪽의 이득은 다른 쪽의 손해로 해석되기 쉽기 때문에 한 쪽의 대승적 양보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이 27개국이나 되기 때문에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인지가 무 자르듯이 명확히 갈라지지 않아 정치적 타협을 할 여지가 많지만, 남북 국가연합처럼 1 대 1의 구조에서는 누구에게 이득이 되고 손해가 되는지가 명확히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의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연방제, 남북 현실에 적합한가

국가연합에 이어 연방제가 남북의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국가연합이 연방제 국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남북연합-국가연합을 거쳐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연방제 통일국가가 남북한의 현실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미리 말해둘 것은 여기서 언급하는 연방제를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고려연방제를 주장하면서 연방제를 북한의 논리라고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연방제는 이데올로기와는 관계없는 개념입니다. 미국이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연방제와 사회주의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연합에서 연방제로 나아간 미국, 독일의 경우 개별 구성국들이 대체로 비슷한 정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방국가라는 하나의 틀 안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은 70년이 넘는 분단 기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너무 큰 이질성과 발전 정도의 차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와 계획경제,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해 있는 상태입니다. 북한이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남북의 이질성이 심화되고 경제 격차가 현격한 상태에서 연방국가라는 틀 안에 유기적으로 묶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남북 각각 1개의 개별 구성국으로 구성된 연방국가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우려스럽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두 개의 구성국으로 이뤄진 국가연합이 통합보다 갈등의 장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남과 북의 연방 구성국 정부는 상호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연방정부에 참여하게 될 텐데, 거의 모든 정치, 경제적 자원을 남쪽 구성국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권한과 부담을 둘러싸고 상호 불만과 갈등이 고조될 수 있습니다.

연방국가가 대화와 타협의 논리로 잘 운영되지 못할 경우 남과 북 대립의 격화를 부르고 극단적인 경우 다시 분열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국가를 결성한 이후에도 내전을 겪었고, 역사상 연방이 해체된 경우도 있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연방정부나 기타 조직의 구성도 전문성과는 관계없이 남과 북 1 대 1의 비율로 구색 맞추기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경직성이 심화될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비능률이 만연해질 수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남북이 여러 개의 개별구성국을 만들어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남북을 각 도별로 여러 개의 개별구성국으로 나눈 뒤 여러 구성국이 합치는 방식으로 연방국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연방국가의 일반적인 창설 원리를 보더라도 남북을 각각 몇 개의 개별구성국으로 나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연방국가는 애초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개별 국가들이 공통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결합한 형태입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단위들이다 보니 중앙집권국가로 강하게 결합되기 어렵고, 따라서 개별 단위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주는 형태로 결합된 것이 연방국가인 것입니다. 당초 하나의 중앙집권국가로 존재해 왔던 구성단위를 연방을 구성하기 위해 여러 개로 쪼개자는 것은 앞뒤가 뒤집힌 발상입니다.

남한에서 지방자치제가 실행되고 있는 만큼 지방자치단체를 연방구성국화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와 연방국가의 개별구성국은 권한과 범위가 크게 다릅니다. 연방국가의 개별구성국은 각각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가지고 자치를 해나가는 조직으로, 외교와 국방 권한을 제외하고는 주권국가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권한을 보유하고 있어 지방자치단체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더구나 북한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개념조차 없는데, 북한 지역을 여러 단위로 나누어 독자적인 연방구성국화 하자는 것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또, 북한의 경제상황이 남한에 비해 현격하게 낙후된 상황에서 북한 지역 개발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지역 개발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 지역 정부가 상당한 독자성을 가지는 연방 체제하에서 북한 지역 개발과 남북한 통합작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을지도 우려스럽습니다.
 

중앙집권국가형 통일은 불가피한 선택

지금까지 국가연합과 연방제가 남북의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는 데 대해 살펴봤습니다. 남북연합이나 국가연합을 구성해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국가로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피상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지만, 남북의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 보면 그러한 구상이 실현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남북연합-국가연합-연방제 통일이라는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면 남북의 통일은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교류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통일의 계기가 왔을 때 정치적으로 하나의 통일체를 먼저 형성해놓고 남북 통합 작업은 통일정부의 주도로 조직적으로 실시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남한을 중심으로 북한 체제를 흡수하는 중앙집권국가형 통일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질성이 심화된 남북한 체제의 통일이 많은 충격과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지만, 그러한 부작용을 줄이자고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추진할 경우 남북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통일 과정 자체가 좌초될 수도 있습니다.

통일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줄이는 문제는 통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선택한 뒤 풀 문제입니다. 일단 정치적으로 하나의 통일정부를 구성한 뒤, 통일정부가 전체적인 국가 관리 차원에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추진해야 합니다. 어렵다고 돌아가면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길이라도 제대로 선택해서 가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통일 충격 완화할 장치 필요

하지만, 이질성이 심화된 남북한 체제의 통일은 많은 충격과 부작용을 수반할 것인 만큼, 부작용을 최대한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어떤 대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통일 과정에서의 충격과 부작용이 남북한의 이질적인 체제가 갑자기 합쳐짐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충격을 완화시킬 방법은 갑작스런 통합의 속도를 늦추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여건 하에서 인위적으로 통합의 속도를 늦추는, 다시 말해 남북 간의 한시적 분리를 통해 인위적인 소프트랜딩의 단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통일이 됐는데도 한시적 분리가 가능하겠냐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남북한은 독일과 달리 접경지역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분리가 가능합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에는 수많은 지뢰가 매설돼 있어 경의선과 동해선 통로와 같은 몇몇 육로 연결로만 통제하면 남북한 지역의 분리가 가능합니다. 해상을 통해 넘어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이 또한 해경 등으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큰 변수는 아닙니다.

남북 지역이 한시적으로 분리되면 남북 간 자유왕래는 한시적으로 제한됩니다. 통일로 인해 남북 지역 간 교류 접촉은 이전보다 늘어나겠지만 남북 주민 간 왕래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인적 왕래의 수준을 조절한다는 것은 통합의 속도를 정부가 조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국가 내의 한시적 분리 사례는 홍콩 특별행정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홍콩 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인 중국이 자본주의인 홍콩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시스템의 대표적 사례인데, 중국인들이 홍콩에 가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거주목적으로 마음대로 이전할 수도 없습니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이 탄압하면서 홍콩의 자치권은 유명무실화돼가고 있지만, 홍콩은 한시적으로 여타 중국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남북한 지역을 한시적으로 분리하면, 북한 지역도 이를테면 임시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의 이질성이 완화될 때까지 다른 시스템으로 관리하면서 중앙정부가 남북통합과 북한 지역 개발 작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남북 간 이질성이 완화되었다고 생각되면 한시적 분리를 끝내고 완전 통합 단계로 이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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