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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간첩조작' 합신센터, 어떻게 바뀌었나…'차별화' 강조한 국정원

혹시, 국정원 조사를 받아 본 적 있으십니까?

대개는 드라마나 영화 첩보물에서나 접할법한 장면일 뿐이어서, 그런 경험은 없다고 답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그런 경험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북한이탈주민, 즉 탈북민들 얘기입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탈북민들은 국정원이 운영하는 조사·생활시설인 '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첫 남한 경험을 시작합니다. 보호센터의 전신인 '중앙합동신문센터'는 '간첩 조작 사건'의 오명을 가지고 있죠. 2014년 이후로는 위의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습니다.

보호센터는 국가보안목표시설 '가'급으로 분류돼, 일반인 통제가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을뿐더러 국정원 직원들조차도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은밀한' 곳입니다. 그런데 국정원이 23일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내부를 공개했습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여파로 2014년 한 차례 내부가 공개된 적이 있으니, 7년 만에 두 번째 공개인 셈입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렇듯 저 역시 이곳을 가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휴대전화와 노트북은 잠시 반납하고서야 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보호센터는 크게 6곳으로 나뉩니다. 탈북민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조사동, 본관동, 후생동, 여성 숙소동, 남성 숙소동, 그리고 다목적 체육관입니다.

제 3국 등을 거쳐 남쪽을 찾은 북한 주민들은 국정원과 접촉한 뒤 이곳 보호센터로 들어옵니다.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생활실'인데, 숙소동에 있는 개별 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생활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센터에서 명찰용으로 쓸 사진을 촬영합니다. 사진관보다는 딱딱한 일반 사무실 같은 환경입니다. 다음 관문은 휴대 물품 검사실입니다. 여기서는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몇 가지 물품을 거르기 위해섭니다. 우선 탈북민 상당수가 신변 보호용 주머니 칼을 소지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센터에 제출해야 합니다. 탈북 과정에서는 자신을 보호하는 용도로 소지했겠으나, 시설 내부에서는 가지고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국정원의 설명입니다. 다음으로 북한 의약품들도 상당수 걸러집니다. 우리 기준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성분들이 담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검색대 주변에는 북한 의약품 등이 예시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약 병이나 상자 모양에 '이소플라본', '개성고려인산인단', '홀렌짐알약'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의 생활실

이 과정을 거치면 각각 공간을 배정받게 됩니다. 취재진에 공개된 북한이탈주민들의 공간은 2인용 남자 숙소(12평)와 4인용 여자 숙소, 고위급 탈북민 숙소 등이었습니다. 국정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조사 내용이 공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 1인실을 사용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소통 차단 등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는 1인실에 강제로 배정하는 관행은 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나 공간을 혼자 사용하고 싶은 경우에는 1인실 사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여성 숙소는 4인용과 6인용 등으로 비교적 더 넓은 편이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80%가 여성이라는 것이 국정원의 설명인데, 수용 규모도 남성 숙소에 비해 더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녀 방 모두 각각 화장실과 텔레비전, 달력, 옷장 등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머무는 기간은 최대 90일입니다. 달력에 엑스표를 쳐가면서 나갈 날을 기다리는 모습도 연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이런 방 대부분에 침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침대를 두었으나 이탈주민 상당수가 침대보다는 온돌에 익숙한 편"이어서 현재는 치운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화장실 벽은 반투명 유리 재질로 성인 기준 목까지는 불투명한 상태였습니다. 그 윗부분은 흐릿하게나마 얼굴 실루엣 정도가 노출이 될 것으로 보였는데, 국정원 관계자는 노약자 등이 쓰러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고혈압 환자나 유아의 경우 위험할 수 있고, 욕실에서 다친 경우도 있었다고 현장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고위급 출신이 입소할 경우에는 이들과는 다른 공간에 머물게 됩니다. 별도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고위급은 무역회사 지사장급, 보위부 중앙과장급 정도입니다. 혹은 '고급 정보'를 가진 경우에도 이 방에 배정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둘러본 방과 달리 고위급 숙소에는 소파와 침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공간은 과거, 생활과 조사를 분리하지 않는 이른바 '생활 조사실'로 쓰이면서 인권침해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는 곳입니다. 국정원은 이런 비난을 고려해 현재는 생활과 조사를 분리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생활조사실일 때 설치되어 있던 CCTV 2대는 철거한 상태라고 소개했습니다.

숙소 별로 살펴봤는데, 가족이 탈북한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남녀 분리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가족을 별도 동으로 배정하기도 한다고 국정원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영유아와 같이 탈북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자녀의 나이가 6세 미만인 경우에는 어머니나 아버지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의 조사실

다음은 조사실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취재진이 조사실에 들어가자 벽에 걸린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사실 내에 테이블은 2개가 마주 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조사관과는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은 상태로 탈북 경위 등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되는 겁니다. 국정원은 조사실 문을 유리문으로 바꿨기 때문에 폐쇄적인 느낌이 줄었고, 진술 녹음 및 녹화는 원하는 경우에만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탈북민 대부분의 경우는 녹음 및 녹화를 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 조사가 진행되는 것은 입소 이후 2-3주 뒤부터라고 합니다. 전염병이나 질병 검사 등을 하면서 안정기를 거친 뒤 대략 5일에서 10일간 조사를 진행한다는 설명입니다. 조사는 오전과 오후 합쳐 하루 6시간, 이 시간 동안 국정원은 '위장 탈북자'를 찾아내기 위한 행정조사를 진행합니다. 탈북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탈북자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이후 위장 탈북 사례로 적발된 이들은 180여 명인데, 탈북민에게 제공되는 정착금 등을 목적으로 했다고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취재진과 동행한 박지원 국정원장은 굳이 무리한 조사가 아니어도 위장 탈북을 가려낼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국정원이 설명한 방식은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양강도 혜산에서 탈북했다고 주장하는 A 씨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A 씨가 위장탈북자라면 그 지역의 식료품 공장 등 큰 시설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탈북 경로를 설명하다가 강을 건너는 과정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조사관은 강의 폭을 묻습니다. A 씨가 강폭이 가령 300미터라고 대답했다면, 국정원 내부 자료를 이용해 실제 강 폭을 측정합니다. 오차 범위를 감안하되, 턱없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 것만 가지고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강 폭이 얼마인지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이런 취지로 반문하자 국정원은 해당 동네의 지형지물까지 검증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고, 어떤 도랑이 있고, 어떤 골목이 있는지까지 확인하는데, 직접 살아보지 않았다면 못 배길 수준으로 구체적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정원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 내부 정보는 이날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은 과거 '간첩조작' 사건의 그늘을 의식한 듯 현재 보호센터에서 간첩수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간첩이 의심될 경우에는 외부 수사기관에 통지해 수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보호센터는 2014년 이후 수사부서에서 분리된 상탭니다. 박지원 원장은 다만 "간첩이 있으면 잡는 게 국정원"이라면서 보호센터가 간첩 수사를 병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간첩 관련 업무를 방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박 원장은 국가보안법에 관련해선 "국정원 입장은 폐기가 아닌 존치와 개정"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의 생활용품 지급실

취재진에게 추가로 공개된 공간들은 생활용품 지급실과 급식실, 컴퓨터실, 음악실, 도서실, 유아놀이방, 의무실 등입니다. 생활용품 지급실은 남성에게는 27종 45점, 여성에게는 29종 52점의 물품을 제공합니다. 체육복과 셔츠, 화장품, 비누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곳에서 조사를 마치고 탈북민 시설인 하나원으로 옮겨갈 때에는 남성의 경우 양복 1벌 정도가, 여성에 대해서도 취향에 따른 의복이 제공된다고 국정원은 전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다소 '레트로', '복고풍' 의상이 많은데 이탈주민 상당수가 이런 류의 느낌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급식실은 제3 급식실까지, 여러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탈북민들이 많이 들어온 상황까지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10명이 채 못 되는 이들이 머물고 있어선지, 텅텅 빈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급식실 한 편에는 "빵, 우유는 받은 날 모두 드세요. (그렇지 않으면) 배앓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탈 주민들에게 보다 친숙한 단어를 쓰려고 하고 있다고 국정원은 밝혔습니다. 음악실을 마련한 것은 북한에서 악기 연주를 흔히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컴퓨터실에서는 타자 연습 등을 주로 하고, 도서실에서는 요리 서적 등을 빌려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의 의무실

보호센터 내 의무실에는 가정의학과 외에 산부인과 전문의, 치과 전문의 등 10여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증 치료의 경우에는 이곳에서 불가하기 때문에 외부 협력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이곳에서 실제 출산을 한 사례도 있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임산부가 있을 경우 되도록 조기에 하나원으로 보내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박지원 국정원장은 자신의 지시로 이곳을 공개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 직원조차 자주 가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개 이유는 사실 간명합니다. '간첩 조작'하던 과거 합신센터와는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내고 싶어서입니다. 박 원장은 과거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2014년부터 올해까지 보호센터에서 조사받은 7천6백여 명 중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등 인권침해가 확인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의 '홍보' 의도가 명약관화하다는 점에서 이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인권침해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따라 매우 달리 평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당국이 조사한 기준과 실제 탈북민의 체감 정도는 다를 수 도 있습니다. 또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는 것이 인권침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며, 매뉴얼이 있다고 해서 능사는 아닙니다. 성폭력과 2차 가해로 피해자가 자살한 공군 사례에서도 매뉴얼은 잘 갖춰져 있었으니 말입니다.

다만,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탐방기'를 남기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보호센터'가 워낙에 음지에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탈주민들로서는 당연하게 거치는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노출된 정보는 여전히 매우 적습니다. 은밀한 공간에 대해서는 언제나 견제가 필요합니다.

국정원이 7년 만에 보여준 것들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국정원은 2014년 이후 해 온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혹 이 설명과는 다른 경험을 했던, 혹은 하게 될 이탈주민이 있으시다면 제보를 주셔도 좋겠습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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