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피투성이 될 때까지 아시아계 폭행…9·11 생존자도 "이건 진짜 혐오범죄"

[월드리포트] 피투성이 될 때까지 아시아계 폭행…9·11 생존자도 "이건 진짜 혐오범죄"

충격적인 피투성이 사진…"의식 잃을 때까지 때렸다"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연쇄 총격사건으로 아시아계 혐오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도가 크게 올라갔지만, 이 와중에도 혐오 공격 자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주 금요일 발생했던 뉴욕 지하철 아시아계 폭행사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뉴욕 지하철 좌석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절해 앉아 있는 60대 스리랑카계 노인의 사진이 공개됐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 끔찍했습니다. 현장 목격자 조지 오크렙키 씨가 휴대폰으로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알려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9·11테러 생존자라는 특이한 사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건 관련해 얘기를 듣고 싶어서 이메일을 보내봤더니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해주겠다며 흔쾌하게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오크렙키 씨는 뉴욕시내로 지하철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문제가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물건을 훔쳐가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소동을 벌이는 일은 가끔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에는 자신도 익숙해졌지만, 지난주 금요일에 자신이 목격했던 일은 30년 뉴욕 생활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진짜 혐오범죄' 그 자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신이 처음 본 장면은 한 흑인 30대 남성이 종이 같은 걸 말아서 좌석에 앉아 있는 60대 아시아계 할아버지에게 던지는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더니 흑인 남성이 아시아계 노인 위에 올라타서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마구 때렸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놀랍고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어서 앞에 있던 자신이 몸을 던져 흑인 청년을 일단 떼어놨다고 합니다. 가해자는 달아났지만 피해자를 보니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CCTV가 지하철에 있을 테니, 오크렙키 씨는 일단 가해자를 잡는 것보다는 피해자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는 게 급선무였다고 판단했습니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어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서 머리에 지혈대로 감아줬습니다. 의식 불명의 피해자는 그 뒤로 중환자실로 입원했습니다(뉴욕 지역 일부 신문은 피해자가 다행히 의식을 찾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오크렙키 씨에게 왜 혐오범죄라고 봤냐고 물어봤더니 "그가 때리면서 'mother fxxxxxx Asian'이라고 외쳤다"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인종 혐오 욕설을 퍼부으면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폭행하는 장면을 봤는데, 어떻게 이게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고 반문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바로 맞은편 자리에 있었는데, 가해자가 백인인 자신은 그냥 두고 아시아계 노인을 공격했다는 것은 더욱 인종 공격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

9·11테러 당시 건물에 있었던 오크렙키 씨는 험한 일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폭행사건은 자신이 본 충격적인 진짜 혐오범죄였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진술했고, 뉴욕경찰은 가해자를 결국 붙잡아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무역 관련한 일을 하는 오크렙키 씨는 아시아 파트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뉴욕이라는 역동적인 도시에서 아시안들은 미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고 자신은 정말 좋은 아시안 친구들도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시아계를 이런 식으로 혐오하고 공격한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시아인 폭행

아시아 혐오 반대 시위 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아이 엄마를 이유 없이 주먹질하고 지나간 사람도 있었고, 시위대를 향해 위험하게 차를 몰아 뚫고 지나가며 욕설을 퍼부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아시아 혐오범죄가 폭증했다는 것은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전체적인 혐오범죄는 7% 줄어들었는데, 유독 아시안 혐오범죄만 149%나 폭증했다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집계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워낙 아시아계가 '묻지마 화풀이 범죄'의 표적이 되다 보니 공포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숫자로도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계 상인들 찾은 메릴랜드주지사 부부…유미 호건 "이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버지니아, 메릴랜드 일대에는 한국계 상인들이 많이 있지만, 메릴랜드는 Korean Way라는 도로가 있을 정도로 한국계 상인들이 밀집된 지역이 있습니다. 아시안 혐오범죄에 대해서 사건 초기부터 반대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냈었던 래리 호건 주지사가 유미 호건 여사와 함께 이곳에 현장 방문했습니다(한국계뿐만 아니라 중국계, 베트남계 등 다른 아시아계 상점들도 이곳에 밀집해 있습니다). 미리 지정한 일부 상점을 방문하며 상인들의 얘기를 듣는 방식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현장 방문 현장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다만 총기가 있는 미국답게 그런지 경호요원들이 사전에 동선 체크를 꼼꼼하게 하고, 경찰들이 미리 배치돼 보안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주지사가 움직이는 행사여서 그런지 카운티 군수는 물론 경찰 국장들까지 총출동했습니다. 상인들이 장사하면서 아시아계로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하소연을 하면, 주지사 부부가 이런 얘기를 듣는 모습 자체가 아시아계의 마음을 다독이는 괜찮은 정치적인 퍼포먼스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애틀랜타에서 아시아계 인사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정치인들이 이런 행동을 더 자주 하는 것이 정치권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

래리 호건 주지사는 아시아 혐오범죄에 대한 규탄 메시지를 발표하고 기자들에게 경찰 순찰 강화를 지시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유미 호건 여사도 기자들과 문답을 하면서 이번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고, 어떻게 아시아계들이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유미 호건 여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아시아계들이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김수형 취재파일용

선제 경고 날리는 흑인 커뮤니티…아시아계 대응은 어떻게?

봄방학이 다가오면서 마이애미비치에 몰려든 관광객 때문에 시 당국이 야간 통금을 걸고 최루탄까지 쏘면서 강제해산하는 장면이 미국에서 며칠에 걸쳐 대서특필됐습니다. 이런 팬데믹 기간에 마스크도 안 쓰고 잔뜩 모여 차 위에도 올라가서 신나게 뛰면서 노는 모습은 상식 있는 시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강제해산 방식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고 지역 흑인 커뮤니티 리더들이 미리 경고를 했습니다. 그런 장소에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인종이 흑인이다 보니 그런 얘기를 선제적으로 발산한 것입니다. 정부의 강제진압에 당했던 흑인들의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 느껴지면서도, 일단 흑인들이 불이익을 당한다 싶으면 바로 목소리를 내면서 경고를 하는 장면에서 저항 운동을 오래 한 흑인 커뮤니티의 관록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조지아 연쇄 총격사건을 계기로 아시아계 혐오 반대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체제 순응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시아계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다른 인종들에게도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현장 시위를 직접 가보니 열기나 규모 면에서는 아무래도 지난해 여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됐던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에 비해서는 크게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기가 생길 때마다 아시아계 리더들과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안다'는 우스갯소리가 인종 문제에 있어서는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없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