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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플랫폼법' 둘러싼 각계 입장…선의와 현실 사이

[취재파일] '플랫폼법' 둘러싼 각계 입장…선의와 현실 사이
● 플랫폼종사자 보호법 초안 입수

고용노동부는 늘어나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대책 중 하나로 '플랫폼종사자 보호법'(이하 플랫폼법)을 추진 중입니다. SBS는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보호법안 초안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단독] 플랫폼종사자법 초안 입수…"업무 배정, 평가 방식 알려야" (2021.02.23)

법안에는 플랫폼 기업에는 의무와 책임을, 플랫폼 종사자에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담겼습니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법률' 초안

● 라이더유니온·민주노총 "입법 반대"

플랫폼법 제정을 둘러싸고 각계의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먼저, 보호의 대상인 플랫폼 종사자 측이 오히려 반발했습니다. 플랫폼 업체 등에 소속된 배달기사 노조인 라이더유니온과 민주노총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기존의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확대해서 플랫폼 종사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플랫폼 종사자라고 했을 때 크몽(전문 프리랜서 매칭 플랫폼)부터 배달기사까지 하나로 묶을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광범위하게 묶어버리면 노동환경이 하향 평준화될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노동법이라고 하는 보편성을 가진 법이 우선이어야 된다고 저희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라이더유니온이 노조로 인정돼 배달기사들이 노조법 상 근로자로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알리는 것이 사실 노동부의 역할인데요. 그런데 이번 법안에는 플랫폼종사자가 노조가 아닌 애매한 협의회 같은 단체를 설립하도록 했습니다. 한국에서 노조법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데, 노조를 만들면 되지 왜 '제3의 단체'를 만들어야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실제 미국에서 우버 기업이 종사자들에게 쿠폰을 뿌리면서 업체 측을 위해 시위를 하는 종사자 조직을 만들었거든요, 그런 게 우려되는 거죠. 법안에 나오는 단체설립 조항을 오히려 기업들이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신인수 법률원장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일단 이 법은 '플랫폼 종사자'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제 3의 영역으로 플랫폼 종사자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법률을 만든 거죠.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자가 가장 문제 되는 영역이 배달기사, 퀵 서비스, 대리기사 이런 분들이거든요. 이들은 현행 노동법에 의하더라도 근로자로 봐야 됩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건 이 사람들을 어떻게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적용할 건지를 고민해야 되지 아예 생뚱맞게 특별법을 만들어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 근로기준법보다 높은 수준의 보호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보호만 하겠다는 겁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ILO나 OECD를 비롯해서 대부분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의 근로자에 어떻게 하면 포함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법률도 그렇게 만들고, 판례도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거꾸로 가는 거죠. 다른 선진국들은 어떻게 해서든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에 포섭시키려고 하는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법률은 근로자에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게 입법 방향이에요."

● "선의 믿어달라"는 정부

정부는 플랫폼법이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라며, 플랫폼법 입법의 선의를 믿어달라는 입장입니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플랫폼법 관련 토론회에 나온 고용노동부 실무자에게서 정부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한진선 고용노동부 디지털노동대응 TF 팀장
"플랫폼 종사자라고 했지만 이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요기요 배달기사, 타다 기사 등 현재 근로자로 상당 부분 인정되고 있는 추세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플랫폼종사자법이 노동법을 부정하는 게 아니고, 추가적인 보호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플랫폼법 3조에서는 근로기준법, 노조법 등 기존 노동법을 적용받는 종사자는 유리한 법이 우선 적용되도록 규정해뒀습니다."

"노동계 우려처럼 2007년에 추진된 산재보험법상 특수고용직 입법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특수고용직 입법 당시처럼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자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보호 장치를 깔아두기 위한 법안입니다. 오히려 '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법'을 염두에 두고 초점을 맞췄습니다."

● 플랫폼 기업 측…"의견 표명 자제"

스타트업 이익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법안에 대해 일부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체설립 조항을 삭제하고, 계약 해지 및 변경 시 통보 기간을 축소해달라는 내용 등이 담긴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SBS의 취재에 공개적인 의견 표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인 쿠팡 또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각 플랫폼마다 기업과 종사자의 관계는 천차만별입니다. 플랫폼 중 선두에 있는 기업 중 하나인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노사관계가 협조적입니다. '플랫폼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을 통해 노사 합의문을 도출하기도 하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배민은 플랫폼 배달업계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기업가의 선의에 따라 종사자의 노동환경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배달업체인 쿠팡이츠의 경우 최근 일방적으로 배달수수료를 3100원에서 2500원으로 인하했습니다. 마켓컬리에서는 저성과자 리스트를 만들어 종사자플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 소속 대리기사들은 노조를 만들어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업체 측은 중노위 결정에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기업에서 근무환경을 악화시켜도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플랫폼 종사자 중 다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노조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업체별로 일하는 환경이 들쭉날쭉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출발했습니다.

● 전문가 "희망과 염려 교차"

노동법을 전공한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에게도 의견을 들었습니다. 권 교수는 플랫폼 노동에 관해 활발하게 연구하고 의견을 내고 있는 전문가 중 한 명입니다. 권 교수는 노동계가 보이는 우려에 일리가 있다면서도 우선은 입법 자체는 '일보 전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희망과 염려가 교차하는 측면이 있어요. 희망적으로 보는 부분은 현재 상황에서 노동법의 보호범위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해 당장 어느 정도 수준의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려되는 건 당초 입법 취지와는 집행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분들이 오히려 보호 밖으로 밀려나는 하방압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부분입니다."

"법안 조문 중에서 단체설립에 관한 부분이 있습니다. 단체설립의 수준 자체가 협상권 정도를 인정하고 노조처럼 쟁의권이 없는 수준의 조항입니다. 이런 조항들은 잘못하면 당연히 노조로 인정돼야 할 단체들이 쟁의권을 행사할 수 없는 단체로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2007년에 특수고용직 관련 입법은 '제3지대, 회색지대'를 만든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플랫폼법은 '근기법, 노조법이 우선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유리한 법이 먼저 적용된다는 조항을 두고 있어요. 이런 점에서 플랫폼 종사자라는 지위를 만들어 노동법에서 배제하려 한다기보다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바닥에 하나의 새로운 보호의 층위를 추가하는 걸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에 앞서 현재 있는 노동법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적용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타다 기사 같은 경우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근로자로 인정됐잖아요.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당연히 근로자로 인정돼야 할 사람들을 '오분류'하는 걸 적극적으로 교정하는 게 선행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플랫폼법을 추진하기 앞서 이런 오분류를 조정하는 작업들이 선행되는 것을 전제로 저는 입법에 찬성합니다. 오분류가 조정되지 않는다면 노동계 우려처럼 이 법안은 플랫폼종사자를 노동법 밖으로 밀어내는 하방압력으로 기능할 겁니다."

● "초안일 뿐, 확정된 바 없다"는 정부

SBS가 플랫폼 종사자법 초안을 보도한 뒤, 고용노동부는 설명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보도한 법안은 "노사단체 및 전문가와 의견수렴 중인 단계"로 "구체적 내용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플랫폼 종사자법은 새롭게 제정되는 법인 만큼 한 번 '프레이밍' 되면 법률이 규정한 범위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논의가 됩니다. 고용노동부는 설명자료에서 밝힌 대로 신속하게 발의를 추진하기보다 노사단체 등 반대 의견들을 숙고해서 충실히 반영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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