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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동자도 아닌, 사업자도 아닌…플랫폼 종사자를 '제3의 존재'로 만든다면?

"지금 유일한 혁신은 '전화하셨죠 손님'에서 '앱으로 부르셨죠 손님'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뿐이다"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 이자벨라 카민스카)

4차 산업혁명과 기술 혁신의 중심에 '플랫폼'이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혁신이라는 이름 하에 법적, 제도적 보호대상이 아닌 존재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특히 지금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이라고 불리는 업종은 배달이나 운전기사처럼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노동 방식을 띄고 있습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도 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될 수 있을까요. 지난 1월 27일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노동법이론실무학회와 노동법연구소 해밀이 주최한 '플랫폼 노동의 노동법적 포섭' 심포지엄에는 플랫폼 노동 문제에 활발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전문가들이 나왔습니다.

타다 기본서비스, 어제 종료…기사들 '대표 고소

● 사용자가 '근로자 아니다' 증명해야

발제자로 나온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플랫폼 노동의 경우 사용자가 복수 기업으로 분산돼 법에서 규정한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예컨대 '타다'의 경우 승용차를 소유하는 건 렌터카 회사인 쏘카, 플랫폼을 운영하는 VCNC, 기사를 공급하는 파견업체로 나눠 택시업체가 하던 일들을 '인수분해'해서 법 적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플랫폼 종사자를 종속적 노동자와 독립 계약자의 경계에 있는 '회색 지대'로 만들면 결과는 어떨까요. 결국 플랫폼 노동자는 법적 보호를 상실할 위험에 처하고, 플랫폼 기업은 노동법을 회피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 권 교수의 주장입니다.

권 교수는 일하는 사람의 기본값을 '근로자'로 추정하고, 이를 깨뜨리고 싶은 당사자(사용자)에게 '근로자가 아니다'는 증명 책임을 지도록 입증책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플랫폼 종사자를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고, 기업이 근로자가 아님을 증명하도록 책임을 지는 법안이 통과된 바 있습니다. 독일 또한 지난해 플랫폼 노동 정책을 만들어 근로자성 판단 입증 책임을 완화했습니다. 플랫폼 종사자가 정황 증거만 제시하면, 입증 책임은 사업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 플랫폼과 혁신의 발원지,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실리콘 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플랫폼 노동의 발원지이기도 하고, 소송과 입법을 통해 플랫폼 노동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있었던 곳입니다. 이영주 노동문제연구소 解放(해방) 연구자는 이 곳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은 물류배송업체인 다이나멕스 배달기사들의 소송에서 ABC 테스트를 채택했습니다.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려면 기업이 세 가지 요건(A. 노무제공자가 기업의 통제와 지시를 받지 않는다. B. 노무제공자는 기업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외의 업무를 수행한다. C. 노무제공자는 관행적으로 기업과 독립적으로 설립된 사업에 종사한다.)을 모두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주 대법원 판단이 있은 뒤 2019년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이러한 ABC테스트의 확대 적용을 포함시킨 'AB 5' 법안을 통과했습니다. 그러자 우버와 리프트 등 플랫폼 기업들이 반발하면서 AB 5를 폐지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발의하고 거액을 쏟아부으며 홍보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 AB 5 법안 적용을 배제하는 대신(근로자에 포함시키지 않는 대신) 초과노동 제한, 의료 보조금, 치료비, 각종 보험을 제공하는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자도 개인사업자도 아닌 '제3의 지위'에 존재하며, 근로자에 포함시키는 것보다 각종 혜택들을 주는 게 당사자에게도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결국 2020년 11월 주민투표에서 플랫폼 기업 측이 승리하면서 플랫폼 종사자들은 AB 5 법 적용을 받지 않게 됐습니다.

이 연구자는 플랫폼 종사자를 '제3의 지위'로 만드는 방안이 이처럼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배달원에게 막말한 고객 논란

●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필요

박은정 인제대 교수 또한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와 플랫폼 종사자를 '제3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별도로 보호하는 방안을 비판했습니다. 플랫폼 종사자를 기존에 있던 근로기준법, 노조법상 근로자에 포함시키는 게 아니라 특별법을 통해 제3의 영역을 만들어낼 경우, 근로자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오분류의 문제가 항상 존재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 대해 공통적인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기본법에는 타인의 사업을 위해 주로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모두에 대해 최소한의 권리나 보호, 사회보장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2일 특고 · 플랫폼 종사자 등에 고용보험 단계적 적용 확대 방안을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제3의 영역' 만들어 보호하겠다는 정부…특고 노동자 20년 역사 반복하나

코로나19로 라이더 등의 업무 과중과 산업재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자 정부는 보호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21일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 제정도 준비 중인데 이르면 다음 달 국회에 발의될 예정입니다. 이 법안 초안에는 플랫폼 업체가 플랫폼 종사자들과 계약을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해지하면 과태료를 부가하고 계약 변경 전에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 플랫폼 종사자를 대상으로 사회보험을 적용하고 단체를 설립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 일방적인 해고나 계약 변경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일정 정도 노동법과 비슷한 수준의 보호를 담은 법안인데, 중요한 건 플랫폼 종사자를 일단 노동법상 근로자에서 배제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연구자들이 비판한 '제3의 지위'로 만들어 일정 수준 보호를 해주는 방식입니다. 보호 대책이 발표됐는데 정작 보호의 당사자인 양대 노총과 라이더유니온 등은 반대하고 나선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앞서 심포지엄에서 발제한 세 명의 전문가 모두 플랫폼 종사자를 제3의 존재, 새로운 신분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이 아니라 기존 노동법에 이들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명백한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존재로 잘못 분류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노동자가 아니라고 일단 뺄셈을 한 다음에, 몇 가지 보호받을 권리를 덧셈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사실 플랫폼 노동자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새로운 게 아닙니다. 참여정부 당시인 2006년 정부는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 사실상 근로자지만 근로자로 분류되지 못하지 못하는 몇 가지 업종들에 대해 '특수형태근로자'라는 제3의 범주로 만들어 보호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이후 10여 년간 '특고'에 대해 근로자냐 아니냐를 두고 계속 문제가 일어났고, 법원 판단도 사안별로 엇갈리는 등 혼란이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잘 알고 있을 정부가 또다시 같은 방식의 정책을 추진한다는 건, 정책 목표가 플랫폼 종사자의 보호에 있는지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 책임을 피하도록 확정시켜주는 데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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