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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여론 선도는 없고 여론 영합만 있다"…편향성 4위의 나라

논설위원 단상(斷想)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실에, 알 만한 사람이 던지는 독설이 더 아프다. 언론사에 재직하다 오래전 대학 교수로 전직한 지인 두 사람을 만났다. 중년의 남자들답게 처자식이나 스러져가는 건강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울 법한데, 어느 틈엔가 거창한 언론 비평으로 맥주 맛을 흐린다.

"요즘 언론 보면 예전에 그만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여론 선도는커녕 여론 영합으로 연명하는 게 언론이야? 이제 대한민국 언론은 끝났어!"

끝장난 언론에 아직도 붙어있는 나는 뭔가. 찝찔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독설에 기분이 꿀꿀해진다. 신문방송학에서 가르치는 언론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 선별과 의제 설정 기능이다. 언론이 선별하는 정보는 일반 대중에게 중요 정보로 각인되고, 특히 언론이 시각을 담아 비중 있게 다루는 주제는 대중의 판단과 가치 프레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의제 설정 기능이라 한다.

여기에 좀 더 거창하게 보태자면, 정보와 견해의 통로이자 경연장이라 할 수 있는 언론이 정확한 정보와 다양한 견해를 표출할 때 "사상과 견해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는 헌법 제21조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언론의 현실은 의제 설정, 다시 말해 여론 선도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보다는 오히려 극단적인 편향성에 영합하고 이를 부추기면서 헌법적인 공적 책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잘난 교수들의 불만이었다.

신문, 보도, 언론, 기자 (사진=픽사베이)

● 극단적 편향성의 나라, 편향성 순위 40개국 중 4위

안타깝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이를 방증하는 자료가 있다. 지난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 세계 40개국 언론 이용자의 행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 응답자의 44%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답해 40개국 평균 28%보다 16%포인트나 높아 조사 대상국 가운데 4위였다.

반면,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비율은 겨우 4%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다. 이어서 '특정 관점이 없는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52%이었는데, 이는 독일 80%, 일본 78%, 영국 76%, 미국 60% 등 선진국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인들의 뉴스 소비 성향이 외국, 특히 선진국들에 비해 이념적 편향성이 두드러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 편향적인 뉴스를 선호하는 뉴스 소비자의 탓일까, 아니면 편향적인 정보와 견해만 생산하는 언론의 탓일까.

이 조사에서는 여기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뉴스 전반에 대한 이용자의 신뢰도가 40개국 가운데 최하위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2016년 이후 5년째 말이다. 언론이 생산하는 정보를 믿을 수 없고, 언론사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기에 신뢰도가 바닥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신뢰도 바닥의 한국 언론들이지만, 아쉬운 대로 그들을 신뢰도 순으로 줄 세워보니까, 세간에서 이념적 편향성이 심한 것으로 평가되는 언론사 순으로 오히려 이용자들의 신뢰도가 가장 높았고, 중도 성향의 언론사들은 극단적 편향성을 가진 이용자 양쪽에서 모두 버림을 받아 신뢰도가 바닥을 기었다.

신문, 보도, 언론, 기자 (사진=픽사베이)

● 신뢰 상실 → 동일 성향 언론사 선택 → 여론 영합 뉴스 확대

결국 이용자들, 즉 국민들이 언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면서 각자의 이념이나 가치관에 맞는 언론을 찾는 현상이 가속되자, 언론은 다시 시청자나 구독자를 붙잡기 위해 편향성을 강화하면서 대한민국의 여론 시장이 극단화의 수렁에 빠진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에 이념을 잣대로 편을 갈라 갈등을 조장하고 그 갈등을 에너지로 생명력을 이어온 한국의 정치 행태가 기름을 부었을 테다.

건강한 정보와 상식에 바탕을 둔 언론의 편향성 혹은 경향성은 만약 질적·양적 측면에서 그 다양성만 유지된다면,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것이 이른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경합을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민주주의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87년 정치민주화 이후 한국의 여론 시장이 부닥쳐왔던 현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서로 다른 견해가 자유롭고 공정한 경합을 통해 민주적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정치 권력과 연대하는 다수 여론이 압도적인 힘으로 나머지 여론을 깔아뭉개는 방향으로 정책적 의사결정이 이뤄져왔던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나 진보할 것 없이 갈등을 에너지로 입지를 강화해 온 정치 권력의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이 국민들의 다양한 견해를 대변하기보다는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편 가르기를 조장하거나, 그에 편승해 '우리 편' 독자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경쟁하고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제 설정'이라는 언론 고유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언론인 출신 두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게 쉬운가. 잃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복원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신뢰의 속성이다.

신문, 보도, 언론, 기자 (사진=픽사베이)

그렇더라도 첫걸음이라도 떼야한다. 다만, 모든 언론에 천편일률적 기준을 적용해 다그치는 것은 또 다른 편향성의 함정을 만들 수 있다. 다양한 연구들을 보면,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들의 언론 규제 경향이 투 트랙임을 알 수 있다. 크게 볼 때 공영과 민영에 따른 차별 적용인데 주로 방송에서 뚜렷하게 구분된다.

우선, 정부 재정이나 공적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이른바 공영적 언론은 기본적으로 국민 전체의 부담에 의해 운영되는 만큼, 각계각층의 다양한 견해를 차별 없이 공정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헌법적 책무를 가진다. 이는 기관의 속성상 정부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정부나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다양한 이해와 견해의 공론장이 돼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국가는 공영적 언론이 헌법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독립적 운영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에 비해 민간 소유의 언론은 공영적 언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더 자유롭게 각자의 주도적 견해를 드러내되, 언론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사회적 책임에 근거해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더불어 반대 진영의 목소리까지 공정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수 십 년간 이어 온 선진국들의 언론 규제에 대한 기본 철학이다.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점진적 개선이 가능할까. 그러기에는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적 성향을 떠나 언론을 도구화하려는 정치 권력의 욕구가 여전히 강한데다, 좁은 시장에 난립한 언론사들의 생존을 위한 과당경쟁이 수그러들 조짐이 없다는 게 큰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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