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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것인가 ②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것인가 ②
지난 글 ▶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것인가 ①에서 통일 이후 북한 의사들의 자격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대로 통일 뒤 북한 의사들의 자격을 일거에 정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북한 지역의 의료 공백을 메꿀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에서 의사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통일이 됐다고 해서 의사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득권을 박탈당한 북한 의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의사들의 자격을 그대로 인정하면 남한 주민들이 북한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으려 할 것이냐의 문제가 생깁니다. 남한 주민들은 북한 의사들의 실력이 남한 의사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고 있는데, 의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북한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으려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 통합은 '컷'이 아닌 '디졸브'

여기서 잠시 방송 편집에서 나오는 '컷(cut)'과 '디졸브(dissolve)'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컷' 편집은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바로 바뀌는 방식을 말하는 반면, '디졸브' 편집은 한 화면이 조금씩 사라지고 다른 화면이 조금씩 등장하면서 화면이 바뀌는 방식을 말합니다. '디졸브' 편집은 다시 말해 첫 화면과 다음 화면이 겹쳐지면서 첫 화면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방식입니다. '컷' 편집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편집 방식이긴 하지만, '컷'과 '디졸브'를 대조해서 말할 때 '컷'은 단절을 의미하는 반면 '디졸브'는 첫 화면과 다음 화면을 이어주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여기서 '컷'과 '디졸브'를 언급하는 이유는 통합은 '디졸브'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입니다. 통일로 북한 사회가 새로운 정치 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인다 해도 북한 주민들의 삶은 꾸준히 지속되는 것인데, 통일이 됐다고 해서 전혀 다른 삶을 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맞춰 삶을 변화시키되, 그 변화는 '컷'이 아니라 '디졸브'처럼 점진적 변화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기존에 살아왔던 방식,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0106 안정식 취재파일용]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것인가 ② (사진=조선중앙TV)

● 북한 의사들의 자격 인정 어떻게 할까

북한 의사들의 자격 인정 문제를 '디졸브'식 접근이라는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통일 뒤 의사 시스템의 통합은 남한 주민이나 북한 의사들이 받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의사 시스템이 북한 지역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정착되게 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북한 의사들이 의료인으로서의 기득권을 유지하게 하되, 남한 주민들은 원한다면 남한 의사들을 상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남한의 의사 시스템이 북한 지역까지 파급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존 북한 의사들이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북한 의사 시스템은 점진적으로 소멸하고 남한 의사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디졸브'식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0106 안정식 취재파일용]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것인가 ② (사진=조선중앙TV)

● 북한 의사 자격 북한 지역에서만 인정되게

이런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북한 의사들의 자격을 인정하되 북한 지역에서만 인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북한 의사들이 기존처럼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되 북한 지역에서만 가능하게 하고, 한반도 전역에서 의료행위가 가능한 사람들은 남한 의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로 한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 의사들은 기존처럼 북한 지역에서 진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므로 기득권이 박탈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남한 지역에는 남한 의사 자격을 가진 사람만 존재하고, 북한 지역에는 남한 의사 자격과 북한 의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게 될 텐데, 어떤 의사를 찾아갈 것이냐는 주민들의 선택에 달리게 됩니다. 사실 북한 주민들은 그동안 북한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아온 만큼 북한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는데 거부감이 없습니다. 북한에서도 실력 있는 사람들이 의대에 가고 의사가 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의학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북한 의사들의 진료를 꺼려하는 것은 남한 주민들일 텐데, 북한 의사들의 자격을 북한 지역에 한정하면 남한 주민들도 진단과 치료에 있어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남한 주민들이 북한 지역에 갈 경우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것이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새로운 의료진 양성은 남한 시스템으로 이뤄지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남한 의사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의료 통합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의과대학의 고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는 졸업 뒤 과도기적으로 북한 의사 자격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새로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은 남한 시스템으로 교육받게 하고 졸업 뒤 의사고시를 거쳐 남한 의사 자격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도 의료 실력이 높은 남한 의사면허 소지자들을 선호하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시장원리에 따라 북한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 식 신규 의사면허 취득을 원하는 북한 의료진이 있다면 재교육의 기회를 부여해야 합니다. 본인이 추가적인 노력을 통해 남한 의사면허를 취득할 경우 그 자격을 인정해주고, 기존 북한 의사 자격으로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은 또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 북한 체제에서의 자격 대체로 인정하자

의료나 기술 전문직이 아닌 정치, 사회 부문의 직업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통합작업을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직업들은 재임용 절차를 거쳐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에 한해 선별적으로 기존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한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북한 체제에서의 자격은 대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기존 체제에서의 기득권은 최대한 인정해주되 점진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가 이뤄지게 함으로써 '컷'이 아닌 '디졸브'식 변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한 통합의 방향일 것입니다.
 
(사진=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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